'남북경협주' 아난티가 15년 매달리던 금강산 '손절'한 이유

아난티 금강산 리조트 골프장. /사진제공=아난티

토종 럭셔리 리조트·골프장 운영업체 아난티 (6,120원 ▼40 -0.65%)가 10년 넘게 '계륵'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금강산 리조트 사업을 정리한다. 옛 사업인 금강산 리조트를 정리하고 남해·기장, 제주도까지 발을 뻗고 있는 국내 럭셔리 플랫폼을 확장해 미래사업에 집중한단 계획이다.

북한 관련 악재가 터질 때마가 주가가 요동치는 등 제대로 운영도 못해본 금강산 사업이 득보다 실이 크단 판단이 작용했다. 현 정부에서 보낸 화해의 제스처에도 북한이 통제 되지 않은데다, 차기 정부에선 남북관계가 더 경색될 수 있단 관측도 나오는 만큼 발 빠르게 '손절'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아난티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507억원 규모로 잡힌 금강산 관광특구에 보유한 골프장(18홀)과 리조트(96실) 자산을 손상 처리할 계획이라고 12일 밝혔다. 아난티 측은 "앞으로 국내, 그리고 더 나아가 아난티가 선택한 해외에서 브랜드를 확충하는 데 집중하겠다"며 금강산 사업 정리 이유를 설명했다.
운영도 못해보고 애만 태운 금강산 리조트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2019년 금강산관광지구를 시찰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한 모습. 이날 보도에 따르면 김 총비서는 해금강호텔, 금강산호텔, 고성항골프장, 고성항출입사무소 등 남측에서 건설한 시설물에 대해 지적했다. /사진= 뉴시스, 노동신문 캡처

아난티는 10년 넘게 금강산 리조트로 고생해 왔다. 1987년 피혁제조업체로 시작해 2004년 레저시설과 골프장 개발·운영으로 사업 방향을 바꾼 아난티는 2008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북한에 레저 시설 깃발을 꽂은 업체로 주목 받으며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168만㎡(약 50만평) 부지에 약 850억원을 들여 18홀 골프장과 96실의 콘도미니엄 등 온천리조트로 이뤄진 금강산 아난티를 완공하면서다.

아난티가 독특하게도 관련 업체들처럼 여행·레저주가 아닌 '남북경협주'로 묶이는 이유다. 하지만 오픈을 앞두고 우리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 군인에게 피살 당하는 사건으로 제대로 운영도 못하게 됐다. 해당 시설들은 '남북 사이 투자보장에 대한 합의서'에 따라 재산권이 보장돼 있지만 2010년 북한이 자산 동결조치를 취하며 관리가 전혀 안되는 상황이다.

이후 아난티는 리조트 운영은 커녕 재산권도 행사하지 못한 채 10년 넘게 냉가슴을 앓아왔다. 단순히 리조트 운영을 못할 뿐 아니라 북한 관련 안보 이슈가 터질 때마다 주가가 휘청거리며 다른 사업에도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실제 2019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금강산 관광 남측 시설에 대해 "남루하기 그지 없다"며 철거를 지시했을 때 아난티에도 파장이 적지 않았다.


다만 아난티는 이 같은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그간 대북사업 의지를 직·간접적으로 표현하며 금강산 리조트 재개를 추진해왔다. 금강산에 투자한 비용도 적지 않을 뿐더러 남측에서 처음으로 북한에 진출한 레저사업자란 점에서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총비서가 만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정부 차원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행한 것도 기대를 갖게 하는 요소였다.

실제 아난티는 2018년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며 관심을 끌기도 했다. 중국 투자사와 관계가 깊고 글로벌 진출 전략을 검토하는 시점에서 조언을 받기 위해 선임했다는 게 공식입장이었지만, 대북 투자에 높은 관심을 보이던 짐 로저스의 성향을 고려하면 금강산 사업 여부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500억 포기하고 1조3000억 지킨다?

아난티 남해 전경. /사진제공=아난티

하지만 최근 아난티 내부에서 더는 북한 사업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전날 미국 내 북한전문매체 NK뉴스가 북한이 금강산 관광지구 내 우리 측 자산인 고급 골프장·리조트 시설을 철거 중인 정황이 보인다고 보도한 게 직접적인 방아쇠를 당겼다.

아난티 입장에선 금강산 리조트로 부담을 질 이유가 없는 게 사실이다. 북한 관련 이슈가 나올 때마다 이름을 올린다는 점에서 브랜드 가치가 손상되거나 진행 중인 사업이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4월 한반도 위기설'이 나오는 등 차기 윤석열 정부에서 남북관계에 난항이 예상된다는 점에서도 금강산 리조트로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많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아난티는 남해와 부산 기장 리조트로 럭셔리 골프·리조트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서 지난해 2200억원의 매출액에 597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지만, 북한 리스크로 기업가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단 분석이 나온다. 이는 향후 리조트·골프 플랫폼 확대를 위한 투자 등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아난티는 남 상황에서 오는 6월 강남구 논현동에 아난티 앳 강남을 오픈하고 내년 기장 오시리아 관광단지에 16만㎡에 달하는 '빌라쥬 드 아난티'를 선보이는 등 국내 여행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여행 1번지인 제주도 내 묘산봉 관광단지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 참여를 결정 지었고, 해외 진출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난티 관계자는 "금강산 사업이 종료돼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면서도 "현재 아난티가 보유한 총 자산이 1조 3000억원이 넘고, 운영 중이거나 추진하는 플랫폼이 7개나 되는 상황에서 500억 원 정도 되는 자산에 의해 브랜드 가치가 지속 손상받는 것보단 정리하고 게 올바른 길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국내 그리고 더 나아가 아난티가 선택한 해외에서 브랜드를 확충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