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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법이 관치를 바꾸는 데 걸리는 시간, 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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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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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뭐죠. 증권 같은데 하시면 안 됩니다."

2000년초 새로운 투자 상품이 등장하면 금융당국 관계자는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곤 이 말 한마디로 정리했다. 상품은 조용히 사라졌다. 혁신도 함께 묻혔다. 작은 씨앗조차 뿌릴 수 없었다.

나름 근거는 존재했다. 증권거래법 등 자본시장과 관련된 6개 법에 열거된 상품만 가능한, '열거주의' 때문이었다. 새로운 금융상품이 등장할 때면 허용 여부, 규제 여부 등이 논란이 됐지만 열거주의의 문턱은 높았다.

2007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을 제정하며 '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로 전환을 선언한 배경이다. 자본시장의 혁신은 새로운 금융상품의 탄생에서 출발한다. 포괄주의는 혁신을 키우기 위한 전제다.

단, 혁신은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투자자 보호를 할 것인가'. 자본시장법의 답은 간단, 명료하다. 다양한 금융상품을 포괄주의로 포섭한다. 그러면서 투자자 보호책으로 증권신고서 제출, 투자설명서 제공 등의 의무를 부여한다. '혁신과 투자자 보호'의 한 세트다.

#2007년 제정된 자본시장법은 2009년 2월 시행되는데 실제 '포괄'보다 '열거'에 가깝게 운용된다. 법적 근거가 사라진 이상 금융당국은 먼저 전화하지 않는다. 대신 개별 회사가 상품을 만들 때마다 문의한다.

전화의 주체만 달라졌을 뿐 과정은 같다. 돌아오는 답은 애매하다. 모호한 답은 사실상 금지의 메시지다. 혁신을 전제로 한 법은 완성됐는데 새로운 상품은 등장하지 못한다. 10년 넘게 포괄주의로 포섭한 상품이 전무하다니.

현실은 다양하다. 2015~2016년 저금리 시대에 "연 10% 이상 고수익" 등의 간판을 내건 상품 하나가 등장한다. 수익형 부동산이다. 호텔, 콘도 등을 투자자가 시행사로부터 객실별 소유권을 분양받고 호텔 위탁운영사와 위탁운영계약(임대차 계약)을 맺어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당시 국회 입법조사처는 '수익형 부동산'을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의 하나(투자계약증권)로 보고 증권신고서(분양계획신고서) 제출, 투자설명서 제공, 등 증권투자와 동일한 투자자 보호 규제를 적용하라고 조언한다. '형식(form)'보다 '실질(substance)'이라는 미국의 사례까지 소개해준다.

금융당국은 증권성 판단 대신 '유사수신행위' '허위 과장 광고' 등을 통한 우회 제재를 꾀한다. '포괄'로 포섭하지 않으니 투자자 보호도 놓친다.

# 혁신의 간판으로 인식되는 '금융 샌드박스'도 사실상 도피처다. 다양한 혁신 노력을 '인정'하는 데 머문다. 혁신의 발목을 잡지 말라고 하니 못 이긴 척 규제를 유예해주는 식이다. 혁신을 허용하면서도 밑바탕엔 시혜주의가 깔렸다.

포괄주의를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대신 슬쩍 피해간 결과다. '혁신+투자자 보호'의 세트가 아닌 반쪽만 남는다. 혁신을 인정받아 샌드박스에 들어가면 투자자 보호를 덜 해도 되는 것처럼 인식된다. 결국 조용히 규제의 틀을 씌운다.

이런 가운데 2022년 4월 20일, 금융당국이 놀라운 결정을 내린다. 조각투자 플랫폼 '뮤직카우'의 상품을 증권으로 규정한 것. 혁신상품이 증권이니 투자자 보호를 위해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간단한 내용이다.

자본시장법의 포괄주의 취지에 따라 포섭한 첫 사례로, 획기적 변화다. 적잖은 언론이 '규제'에 방점을 찍었지만 본질은 혁신을 위한 금융당국의 위대한 발걸음이다. 금융당국이 '조각투자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는 세심함을 보여줬는데 사실 복잡할 필요가 없다. 증권이면 투자자 보호 장치(증권신고서 등)를 만들고 발행하면 간단하다.

금융당국이 전화기를 들 이유도, 금융당국에 허락성 문의를 할 필요도 없다. 포괄주의가 첫발을 떼는 데 15년 걸렸지만 지금이나마 첫 단추를 꿴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 혁신은 이렇게, 관치와 멀어지며 시작된다.

[광화문] 법이 관치를 바꾸는 데 걸리는 시간, 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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