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0조 원전시장 잡자" 한미 원전동맹 첫발…주도권 누가?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과 패트릭 프래그먼 WEC(미국 웨스팅하우스) 사장이 이달 8일 서울 서초구 한국전력에서 해외원전시장 공동 진출을 위한 협력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전력공사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한 '한미 원자력발전 동맹(이하 한미 원전동맹)이 첫발을 뗐다. 세계 최고수준의 시공 및 운영 경험을 갖춘 한국전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 등 '팀코리아'와 원전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웨스팅하우스(WEC)가 해외 원전시장 공동 진출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한 협력 의지를 확인했다. 향후 협력 방안이 보다 구체화되면 체코,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등 신규 원전건설이 추진되는 국가를 중심으로 공동 수주전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지는 미지수로 남아있다.

'한미 원전동맹' 상견례…WEC 사장단, 한전·한수원 비공개 면담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강당에서 한미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5.21/뉴스1

9일 한전과 한수원에 따르면 WEC의 패트릭 프래그먼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개빈 류 아시아 지역 사장, 김정은 한국지사장 등 사장단은 8일부터 10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아 정승일 한전 사장, 정재훈 한수원 사장 등과 잇따라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면담에 이어 WEC 사장단은 현재 운영 중인 신고리 3·4호기와 건설중인 신고리 5·6호기를 방문해 한국형 원전의 운영 및 건설 역량을 확인했다.


한-미 양국 원자력산업계를 대표하는 기업 간의 이번 만남은 지난 5월 21일 한-미 정상 간 합의한 양국간 해외원전시장 협력강화 약속의 후속 조치 성격이다. 당시 양국 정상은 △미국 주도의 제3국 SMR(소형모듈원자로) 역량강화 프로그램(FIRST) 참여 △한미 원전기술 이전 및 수출 협력 관련 양해각서(MOU) 체결을 통한 시장진출 등 협력 강화 △제3국 원전시장 진출 방안 구체화 △조속한 한미 원자력 고위급위원회(HLBC) 개최 등에 합의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공동 기자회견에서 "신형 원자로 및 SMR의 개발과 수출 증진을 위해 양국 원전 산업계가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면담에서 양측은 해외원전시장 공동 진출을 위한 협력강화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정승일 한전 사장은 전날 WEC 사장단과의 면담에서 "해외 대형 원전시장에서 공동진출을 위한 협력모델을 개발하고 그 외 다양한 분야까지 협력을 확대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이날 진행한 면담에서 "한국의 우수한 사업관리 능력, 기술력 및 공급망과 WEC가 가진 강점이 결합한다면 더욱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전과 한수원은 이번 회담이 WEC와 포괄적 협력 의지를 다지고 협력의 기본원칙을 확인하는 등 실질적 협력의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향후 WEC와 공동 워킹그룹 또는 위원회 구성 등을 통해 해외 원전사업 협력을 보다 구체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원전업계에서도 이번 면담을 계기로 양국 기업간 실질적 원전분야 협력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940조 원전시장 정조준...한미 대표 기업들간 신경전

체코 두코바니 원전 부지 전경/두코바니(체코)=김훈남 기자

한전과 한수원은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고 국내 원전산업 생태계를 회복시키겠다는 윤석열정부의 약속에 부응하기 위해 WEC와의 협력체계를 더욱 공고히 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발간한 '미국 원자력 경쟁력 회복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원전 건설 시장규모는 2030년 최대 94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전 세계적으로 건설계획이 세워진 원전은 총 95기로, 현재 가동 중인 원전 439기의 21.6%에 달한다.

사실 한미 원전동맹은 양국의 필요로 의해 맺어졌다. WEC는 전세계 원전의 절반 이상을 지은 기업으로, 원전 관련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면서 미국과 WEC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그 사이 WEC는 도시바에 매각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이후 2018년 캐나다 사모펀드 브룩필드에 인수됐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원전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으면서 WEC도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선 WEC의 기술을 이전받아 원전 강국으로 거듭난 한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의 지원사격을 필요로 한다.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를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지역에서도 신규 원전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이미 본격화된 체코 두코바니 원전 입찰의 경우 미국의 지원사격을 받는다면 한국의 독자수주가 유력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폴란드와 사우디의 경우 WEC와의 공동수주 등 협력의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프로젝트당 수십조원의 자금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인 만큼 기업간 실질적 협력을 위해선 풀어야할 문제가 많다. WEC가 주장해온 한국형원전(APR1400)의 원천 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IP) 문제를 비롯해 설계와 시공을 누가 주도할 것인지 등도 예민한 문제다. 당초 이번 면담에 앞서 WEC와 한전 등이 서명할 예정이었던 해외원전시장 협력 공동선언문이 돌연 취소된 것은 주도권을 둘러싼 신경전의 결과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이번 WEC 사장과의 면담을 통해 WEC와 포괄적 협력 의지를 다지고 협력의 기본원칙을 확인하는 등 실질적 협력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향후에도 기업간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상호협력 및 양국 원전산업 발전에 기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