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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예송논쟁만 벌일 것인가[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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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2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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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노인이 사망했다. 병원은 노인 옆에서 보호자로서 간병을 하고 치료비도 일체 부담한 배우자에게 사망진단서를 발급하고 장례절차를 밟게 했다. 그런데 어느날 망자의 아들 측에서 연락이 왔다. 연고가 없는 사람에게 사망진단서를 발급해 가족도 모르게 장례를 치르도록 했다며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배우자는 사실혼 관계였다. 법적으로는 남남이었다. 의료법에 따르면 환자가 사망한 경우 환자의 존비속,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존속, 형제자매에게만 진단서를 발급해줄 수 있다.

장례식장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사망진단서나 사체 검안서를 제출해야 한다. 병원 의료진은 오래전부터 환자 입원 약정서에 보호자로 등록돼 있던 이가 연고자라고 생각하고 장례를 신속하게 치를 수 있게 진단서를 발급했다. 그러자 그동안 연락을 끊고 지낸 아들이 부친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되자 병원을 걸고넘어진 것이다.

병원으로서는 당장 법적인 가족에 연락이 되지 않았을 경우 사망자를 무연고자로 구청에 신고했어야 한다. 지자체는 행정조회를 통해 가족을 파악한 뒤 연락을 취해 시신 인계 동의 여부를 묻는다. 그런 절차가 완료되고 가족이 시신 인수를 포기했을 경우에만 사실혼 배우자가 비로소 장례를 치를 수 있다. 그런 절차를 밟지 않은 병원은 형사적·민사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종합병원의 사례를 접하고 대형병원답지 않은 초보적인 실수라고만 생각하고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인구 고령화와 가치관 변화로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바뀌어 다양한 가족 형태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연고'의 의미는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최빈사망연령(2015~2019년)은 남자 85.6세, 여자 90세다. 45년 전보다 남자는 19세, 여자는 9.1세 높아졌다. 또 통계청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연간 이혼 건수를 뜻하는 조이혼율은 2021년 2.0으로 한 세대 전인 1991년 1.1의 2배에 가깝다. 1970년 0.4의 5배다. 부모를 가족이 부양해야 한다는 의견은 통계청이 첫 조사를 한 2008년 40.7%에 달했지만 2022년 조사에서는 19.7%로 절반 이하로 떨어질 정도로 가족의 역할에 대한 인식은 급속도로 변했다. 배우자와 90살 언저리까지 해로하면서 자녀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눈을 감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는 얘기다.

물론 상속과 보험금 청구 등 재산관계 설정에 혼란을 막기 위해 현 제도의 근간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사망 당시 아무리 가까이 지냈던 사람이 옆에 있더라도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이 아니라면 '무연고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도 답답하다. 사회는 급격히 변했지만 아직 사실혼이 얼마나 되는지, 무연고자 사망이 얼마나 많은지 제대로 된 통계 하나 만들어내지 않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고령화 속도와 가족형태 변화 등을 감안할 때 이처럼 제도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는 계속 불거질 것이다. 무연고자 사례는 그중 작은 문제일 뿐이다. 인구사회학의 측면에서 우리의 미래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에 따른 수많은 문제들을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는 노력이 없다면 갈등과 충돌은 갈수록 격해질 수밖에 없다.

이태원에서 안타깝게 희생된 젊인이들에 대한 애도와 추모를 실명을 공개하면서 할지 가리면서 할지를 놓고 정치권과 일반사회가 극심하게 분열된 것을 보면 죽은 왕의 어머니가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할지를 놓고 당파가 죽기살기로 대립한 조선시대 예송논쟁이 떠오른다. 예송논쟁이 있던 때는 조선 인구 10분의 1 가까이가 굶어죽었다는 경신대기근 전후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추모 논란보다 더 심각하게 사회가 논쟁하고 중지를 모아갈 대상이 많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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