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도 자산"은 옛말…이자 무서워 빚부터 갚았다

새해 들어 은행 가계대출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한 달 은행 가계대출 잔액이 4조원 넘게 쪼그라든 것이다. 급격한 금리 인상 등으로 이자 부담이 커진 사람들이 여윳돈이 생기면 투자보다는 서둘러 빚부터 갚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은 4조6000억원 급감했다. 한은이 통계치를 작성한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이 크게 줄어든 영향으로 분석된다. 실제 은행 기타대출 잔액은 지난달 4조6000억원 줄었다. 개인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등 강화된 대출규제와 고금리에 따른 이자 부담으로 차주들이 대출 상환에 나선 결과다.

또 지난달 지급된 명절 상여금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과거 초저금리 시기에는 여윳돈을 주식 투자 등에 활용한 것과 달리 금리가 크게 오르자 이 돈을 투자보다는 빚 갚는 데 쓴 것이다.

여기에 매달 증가 흐름을 보여왔던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도 주춤하며 가계대출 감소세를 거들었다. 주담대는 한은 통계 작성 이후 연간 기준 처음으로 은행 가계대출 잔액이 감소(-2조6000억원)한 지난해에도 20조원이나 증가했지만 이번에는 전월과 같은 잔액을 유지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전세가격 하락 등 요인으로 전세자금 대출이 전월 대비 1조8000억원 줄어든 영향이다.


다만 한은은 지금과 같은 주담대 안정세가 이어질지는 계속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금리가 높아지고, 부동산 경기 부진으로 현재로선 주담대 신규자금 수요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이주비 대출 수요가 있을 수 있고 봄 이사철을 맞아 전세자금 대출이 다시 늘 수 있기 때문에 주담대 감소세 내지는 잔액이 유지되는 추세가 계속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빚을 갚는데 우선순위를 두면서 은행 예금은 썰물처럼 빠지고 있다. 지난달 은행 예금은 45조4000억원 감소했다. 이자가 거의 없는 수시입출식예금에서 59조5000억원의 뭉칫돈이 빠져나간 영향이다. 2002년 1월 한은 통계속보치 작성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금리 상승세가 둔화하고 있지만 차주들이 느끼기에는 여전히 높은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며 "여윳돈으로 기존 대출을 상환하는 동시에 새로 대출을 받는 경우는 줄면서 가계대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달 은행 기업대출은 13조3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말 계절적 요인으로 일시상환됐던 운전자금이 재취급되면서 대기업대출이 6조6000억원 증가했다. 중소기업대출은 부가가치세 납부 관련 자금수요 등으로 1조3000억원 늘었다. 반면 개인사업자대출은 높은 대출금리 등 요인으로 9000억원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