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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경, 낯선 얼굴로 증명한 연기력

머니투데이
  • 조이음(칼럼니스트) iz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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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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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 말해요'서 사연 많은 캐릭터로 연기변신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사랑이라 말해요’(극본 김가은, 연출 이광영)의 심우주(이성경)의 얼굴에선 좀처럼 생각을 읽을 수 없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터지고 눈물이 흐른다는 10대 시절, 어느 모텔을 바라보며 제 아버지의 외도를 의심할 때까지만 해도 우주의 얼굴에는 불안과 초조가 가득했다. 하지만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순간, 우주는 서서히 제 얼굴에서 표정을 지운다.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우주가 한 선택이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고, 우주는 꿈도 잃고 가족도 지키지 못한다. 이와 함께 그 누구에게도 제 생각을 들키지 않겠다는 듯, 그렇게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다.


어쩌면 무모했을 우주의 선택은 상흔만을 남긴다. 엄마의 여고 동창과 바람난 아버지는 결국 돈 되는 것들을 모조리 챙겨 들고 집을 나가고, 충격받은 엄마는 암을 얻어 고향에서 투병한다. 다섯 가족이 단란하게 살던 집엔 어느새 우주의 삼 남매만 남는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르고, 아버지의 부고가 들린다. 꿈을 잃고 그 자리에 복수심만을 채워 살던 우주는 화려한 복장으로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찾는다. 불륜 상대가 상복을 입고 저를 맞이하자 우주는 온갖 말들로 모멸감을 선사한다. 그런 우주에게 불륜 상대는 당당하게 우주 남매의 추억이 깃든 집을 비워달라고 맞받아친다. 이후 무너진 우주에게 들려온 소식은 희자가 집을 처분한 돈을 아들의 사업에 보탰다는 것. 이에 우주는 희자의 아들 동진에게 접근해 제가 당한만큼만 돌려주겠다는 또 하나의 복수 계획을 세운다. 여전히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심우주를 연기하는 이성경에게선 좀처럼 볼 수 없던 무심하고 버석한 얼굴로.


지금껏 이성경은 밝고 명랑하고 씩씩했다. 적어도 시청자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은 배우 이성경의 모습은 그러했다. 데뷔작인 SBS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연기한 오소녀는 초반 반항기만 넘치지만, 여러 인물들을 통해 점차 따뜻함을 배우고 특유의 색으로 주변을 물들였다. 이후 MBC ‘역도요정 김복주’, SBS ‘닥터스’ ‘낭만닥터 김사부’ 등 다양한 작품에서 발랄하고 통통 튀는 캐릭터를 총천연색으로 소화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이야기마다 향하는 방향도, 연기하는 캐릭터도 각기 달랐지만, 이성경은 데뷔 초반부터 안정적인 연기력을 바탕으로 특유의 에너지를 뽐내며 시청자의 기대를 받았고, ‘로코퀸’으로 명성을 쌓았다. 그와 연기 호흡을 맞춘 한 배우는 인터뷰에서 이성경에 대해 “극한 상황을 만나도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긍정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했으니, 지금껏 만난 밝고 명랑하고 씩씩한 캐릭터들의 근원은 이성경 자체였을지 모른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그의 이름만 들어도 “파이팅 해야지”라며 기운을 북돋워 줄 것 같은데, 어쩐 일인지 ‘사랑이라 말해요’를 통해 마주한 이성경은 낯설다. 파이팅은 고사하고 표정 없는 얼굴로 등장해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더니, 이해하지 못할 상황에 저를 내몰고 괴롭힌다. 둘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맏이이자 가장으로의 역할을 하며 살아온 우주를 두고 언니 혜성과 남동생 지구조차 ‘하고 싶은 말은 다 표현하고 사는 인간 사이다’로 알고 있을 정도다. 정작 우주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하지 못하는, 진짜 제 속내는 들여다보지 못하는, 무늬만 사이다인 어설프고 서툰 사람이다. 꿈을 내던지고 인생의 목표로 선택한 복수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예기지 못한 감정을 만나면서 무뎌지고 서서히 무너진다.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내내 저기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그 서사를 이끌어가는 이성경은 그리고 그의 연기는 가뿐하고 산뜻하게, 담백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이유를 알아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첫 화를 잠시 잠깐만 보고 있어도 금방 와닿는다. 전작들과 다른 이성경이 말이다. 극의 분위기나 캐릭터의 진한 감정선과는 별개로 연기에서 힘이 빠진 이성경이 참 반갑다.


‘사랑이라 말해요’를 통해 이성경은 연기적 성장을 제대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성경스러운’ 캐릭터를 넘어 더 많은 가능성까지 제시한다. 제작발표회 당시 “내 감정대로, 느껴지는 대로 온전히 들여다보면서 연기했는데 감독님이 믿어주셨다. 굳이 힘을 줘서 (캐릭터를) 표현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만들지 않아도 되는 톤과 캐릭터였다. 자유롭게 연기했다는 걸 끝나고 나서 체감했다”던 그의 말이 떠오른다. 애써 힘을 주고, 만들어 표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완성된 캐릭터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색으로 제 성장을 증명한다. 표정은 지우고 감정은 감추려 노력하는 우주가 된 이성경은 낮게 깔린 목소리, 투박한 말투, 공허한 눈빛으로 우주를 표현한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밝은색 눈동자와 새하얀 피부는 이성경의 매력이자 장점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강렬하게 남았을 그의 첫인상은 시청자에게 그를 각인시키는 데 도움이 됐을 터다. 하지만 배우에게 있어 변신이란 숙명이자 숙제. 안정적인 선택만 이어진다면 시청자는 배우에게도 지루함을 느낀다. 연기자로 데뷔한 이후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잘하는 것’을 잘해온 이성경은 ‘사랑이라 말해요’를 통해 제게 주어진 숙제 하나를 착실하게 완성 중이다. 준비된 다음 작품 외에, 그가 선택할 또는 그를 선택할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랑이라 말해요’의 처음 플레이 버튼을 누를 때만 해도 이성경의 낯선 얼굴이었다. 매주 수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지금은 짠해서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고, 응원해 주고 싶은 심우주다. 그래서 마지막 회를 보고 난 뒤엔 낯설지 않을 심우주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꾹 찍어주고 싶을 것 같다. 아울러 데뷔작을 마치고 진행된 인터뷰 당시 “배우 이성경보다 캐릭터로 기억되고 싶다”던 말도 기억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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