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개발자 꿈 이루려면 '여자'라는 틀 깨야"

이해민 구글코리아 프러덕트매니저./ 사진=구글코리아

“여자가 개발자를 꿈꾼다고 하면 애 낳고 애 키워야지 무슨 개발이냐고 해요. 20년 전 제가 들었던 얘긴데, 지금도 변한 게 없죠.”

한국 여성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맏언니’로 통하는 인물이 있다. 구글코리아 최초 PM(프로젝트매니저) 이해민 매니저다. 9년 넘게 구글에 몸담고 있는 이해민 매니저는 구글 내 여성 개발자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다. 자신의 집에서 진행하는 소규모 여성 개발자 모임 등 다수의 여성 개발자 모임에서 ‘멘토’ 활동도 펼치고 있다.


이 매니저는 “여자 개발자는 대학에서 한 번, 결혼하며 한 번, 출산 후 한 번 등 총 3번의 위기를 겪는다”며 “위기의 순간마다 누군가 옆에서 힘이 돼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각종 모임을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구글에서 잘 나가는 개발자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그 역시 여러 번의 위기를 겪었다. 첫번째 위기는 대학에서였다. ‘자동화 공장’을 만들고 싶다는 꿈 하나로 서강대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지만 전공 공부가 만만치 않았던 것. 본격적인 전공공부가 시작되는 2학년 초까지도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전과까지 고민했다. 주변에서는 개발자 일이 고되고 시간에 쫓긴다며 이 매니저를 회유하기 바빴다. 여자에게 적합하지 않은 직업이라는 것. 그는 “미국은 여성 컴퓨터 전공자 비중과 여성 개발자 비중이 동일하지만, 한국은 여성 개발자 비중이 전공자 대비 60% 수준으로 줄어든다”며 “주변의 지지가 없는 상황에서 어려움에 봉착하게 포기하게 될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두번째 위기는 결혼 후에 찾아왔다. 졸업 후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 입사,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 등 대형 프로젝트를 이끌었지만 배움에 대한 갈증이 솟아났다. 미국 유학을 결심했지만 신혼인 이 매니저를 응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를 낳고 가족의 미래를 계획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반대 이유였다. 이 위기는 다행히 ‘장학금’을 받게되면서 풀 수 있었다.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이 매니저가 내린 결론은 ‘여자’라는 틀에 갇히지 말자는 것이다. 여자라서 생기는 장점도 단점도 없다는 것. 다만 한국 사회가 정한 ‘여자의 롤’ 등 사회적 통념에 영향을 받는 순간 단점이 생긴다는 것이 이 매니저의 지론이다.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여성 개발자들 스스로가 자부심을 갖고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매니저가 바쁜 시간을 쪼개 여성 개발자 커뮤니티 모임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어떤 한 문제에 대해 고민할 때 사회적 문제인지 개인의 문제인지를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최근 여성 개발자들이 출산 후 복직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이 역시 사회적 문제로 함께 목소리를 높여 상황을 풀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