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한비자를 다시 읽다

소설류처럼 대충 한번 읽고 지나가는 책도 있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또 듣듯이 늘 책상머리에 두고 읽고 또 읽는 책도 있습니다. '한비자'도 그런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권력에 관한 한, 권력의 생리에 관한 한 한비자처럼 제대로 꿰뚫어본 책은 없습니다.
　
한비자는 권력은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군주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권력 가운데 하나라도 잃게 되면 신하는 그것을 백배로 휘두른다고 경고합니다. 군주의 재앙은 사람을 믿는 데서 시작된다고도 합니다. 아내나 혈육의 친분이 있는 자식도 신뢰할 수 없는데 누굴 믿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권력을 지키는 데는 '내부방비'가 제일 중요하다는 게 한비자의 지론입니다.　
　
한비자는 경계해야 할 신하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총애하고 귀하게 여기는 신하일수록 군주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합니다. 상을 내리고 칭찬을 해줘도 노력하지 않고, 벌을 주고 비난을 해도 두려워하지 않으면 제거하라고까지 합니다.
　
한비자에는 군주를 섬기는 신하 입장에서 주의하고 경계해야 할 점도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충성스런 말일수록 군주의 귀에 거슬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죽임을 당하고 굴욕을 피할 수 없게 되는 만큼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군주가 잘못을 했더라도 이를 외부에 공개하면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비자는 '군주의 역린(逆鱗)'은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용이 유순해서 길들이면 탈 수도 있지만 턱 밑에 거꾸로 난 비늘, '역린'을 건드리면 사람을 죽여 버리듯이 군주를 설득하려 할 때도 역린을 건드리진 말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산수유와 개나리 목련이 활짝 핀 이 좋은 봄날 동양의 마키아벨리, 권모술수의 대가라는 한비자를 다시 꺼내 든 것은 전적으로 집권 한달 만에 본격화된 여권 내부의 권력싸움 덕분입니다.
　
최근 있었던 예상 밖의 금융감독기관장 인사도 여권 내부 권력싸움의 결과물이고 몫 나누기라고 하니 궁금증이 더 커졌습니다. 총선이 끝나면 본격화될 공기업 사장 물갈이 인사와 협회 등 유관기관장 인사, 심지어 민간 금융기관장 거취에까지 여권의 권력향배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현실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형님 세력과 2인자 그룹, 직계 소장파 그룹이 대선 승리 한달 만에 이렇게 싸우는 것을 보면 권력은 나눠 갖는 것이 아닌 게 분명합니다. 혈육과 혈육 이상으로 신뢰한 핵심 측근들의 쟁투를 보면서 대통령은 '내부방비'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고 총애하는 측근일수록 멀리해야 하는 이유를 알았을 것입니다.
　
대통령 형의 총선 불출마를 주장한 핵심 2인자 그룹은 총선 승리를 위한 충성스런 고언이라 해도 대통령을 설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겠지요. 이 일이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린 건 아닌지 후회하고 있을 수도 있고요.
　
7월 전당대회까지 점점 고조될 여권의 권력투쟁이 궁금합니까. 어느 줄을 잡아야 지금 자리를 보전할 수 있을지 걱정됩니까. 누구를 쫓는 게 변방의 자리라도 차지하는 데 도움이 될지 알아야겠습니까. 그렇다면 한비자를 한번 더 읽으십시오.
　
다만 이 사실은 잊지 마십시오. 권모술수의 대가 한비자 역시 진시황의 책사이자 동문수학한 친구 이사의 모략으로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또 이사도 시황제를 도와 천하통일이라는 대업을 달성하지만 모함을 받아 허리가 잘리는 형벌로 비명에 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게 권력입니다. 이게 역사의 장대한 드라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