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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야 미안! 인생을 낭비해서

[김재동의 틱, 택, 톡]

김재동의 틱, 택, 톡 머니투데이 김재동 기자 |입력 : 2013.07.12 19:47|조회 : 1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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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MBC 휴먼다큐 ‘사랑-해나의 기적’
/사진= MBC 휴먼다큐 ‘사랑-해나의 기적’
장례식에 사용된 해나의 사진. /사진= 유해진PD 블로그
장례식에 사용된 해나의 사진. /사진= 유해진PD 블로그
내가 영화 ‘빠삐용’을 ‘주말의 명화’인가 어디서 처음 본 것은 30년도 훨씬 더 된 옛날얘기다. 사춘기가 덜 끝났던지 한창 아는 체하고 젠 체하고 싶던 시절이었다. 현학(衒學)의 유혹에 빠져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 이러구러 평입네 떠들어야 직성이 풀렸었다.

어쨌거나 ‘빠삐용’에선 독방에 갇혀 기진한 스티브 맥퀸의 꿈이 인상깊었다. 승마바지에 납작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한껏 멋을 부린 스티브 맥퀸이 심판관들에게 따진다. 내 죄가 뭐요? 심판관이 답한다. “인생을 낭비한 죄(The crime of a wasted life)!” 스티브 맥퀸의 시선이 흔들리고 중얼거린다. “유죄요” 그 멋진 표현을 앞세워 한동안 친구들을 들볶았었지 싶다.

‘해나의 기적’이란 프로그램에 주목한 것은 선천성 기도 무형성증으로 입에 삽관했음에도 불구하고 근사하게 웃고있는 아기의 사진때문이었다. 프로는 보지못한채 관련 기사만을 읽으며 안타까와했고 다행스러워했다. 줄기세포 기도 이식수술에 성공했단 기사와 사탕을 입에 대고 있는 아기의 사진을 접하고는 안도의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7일 아기가 끝내 사망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해당프로그램은 8일 밤 11시20분에 ‘안녕! 해나’라는 제목으로 추모방송을 했다.

그제서야 브라운관에서 만난 해나. 기사로 읽을 때보다 한결 생생하게 다가온 해나는 참으로 의젓하고 참으로 어여쁜 아기였다. 숨쉬지도, 냄새를 맡지도 못하는 코는 앙증맞았고 폐에 연결된 관외에 아무것도 넣어보지 못하고 아무런 소리 역시 내어보지 못한 입은 행복하다고, 즐겁다고 시원한 웃음을 짓는다. 대신 영민해진 귀는 아빠의 영어와 엄마의 한국말을 모두 다 알아듣고 흑진주처럼 또랑한 눈망울은 사랑으로, 안타까움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일일이 찾아내 위로해준다.

줄기세포 기도 이식수술이 성공한 후 처음 사탕을 접한 해나의 모습은 감동이었다. 냄새를 맡으라면 사탕을 코에 뭉갠다. 맛보라면 혀를 내미는 대신 입술과 이로 한번 물고만다. 하지만 오렌지사탕의 냄새를 맡았고 오렌지의 맛을 느꼈다. 소리내는 법을 못배워 표정으로 대신하는 모습. 너무나 놀랍다는 듯 눈을 한번씩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기의 모습은 차라리 경이로왔다. 그렇게 코로 숨을 쉬고 맛을 보고 냄새를 맡고.. 하지만 해나가 누린 호사는 너무 짧았다.

식도와 기도가 붙어 다시 수술을 받아야했으며 수술중 심장이 멈췄다. 뇌에 고인 피로 혈전이 생겨 혈전제거수술도 두차례 받아야했다. 35개월을 살면서 35개월을 앓았다. 그 조그만 몸에 전신마취가 몇 번였나. 순간순간 닥쳐오는 질식의 고통은 또 어떠하며. ‘그래, 살아 이렇게 괴로울 바엔 차라리..’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시간으로 11일 새벽 3시 30분에 해나의 장례식이 치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는 게 참으로 무료한 참이었다. 술자리서 맞장구치고 각을 세워보지만 사실은 대부분 ‘건성’이다, 장맛비는 구질구질하고 해가 쨍 나면 그 열기는 또 짜증스럽다. 매체들이 쏟아내는 이슈들은 ‘그렇구만’ 심드렁하고..

해나가 내 시간을 대신 살아본다면 어떨까, 얼마나 놀라움의 연속일까 생각해본다. 어느 날 마주친 심판관이 “인생을 낭비한 죄”라 추궁한다면 나 역시 ‘유죄’를 인정해야 될 것이다. 사탕하나에 놀라워하던 해나의 표정이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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