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가업승계 딜레마 파고든 KKR

사모투자펀드 운용사 KKR(Kohlberg Kravis Roberts)은 대기업들이 가업승계 과정에서 겪는 곤란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투자기회를 찾는데 탁월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국내 2위 대기업인 현대기아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이 이노션 지분 매각 문제로 어려움을 겪자 KKR은 인수자를 자처하며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KKR의 주축은 원래 미국 IB(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바이아웃 팀으로 유명했다. 베어스턴스의 이 팀은 미국 내 패밀리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기업들의 딜을 몇 차례 성사시키면서 해당 영역에 큰 투자 기회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 기업의 특징은 잘 망하지 않는 견고한 사업구조를 갖고 있지만 가업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자식들이 사업을 접고 현금화를 원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베어스턴스 팀은 이런 틈새를 포착해 망하지 않을 좋은 사업에 투자하면서 대부분의 자금을 차입으로 충당해 수익률을 높이는 전략을 썼다. 차입매수(Leveraged Buyout) 형태로 딜을 하면 투자금 대비 많게는 10배에 가까운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에 이들의 유명세는 해가 갈수록 더해졌다. 이 팀은 무패에 가까운 성적을 올렸지만 이후 베어스턴스가 성과급을 충분히 주지 않자 독립해 KKR을 탄생시켰다.



KKR은 국내에선 2009년 오비(OB)맥주를 인수해 시장에 첫 발을 내딛었다. 당시 2조원이 안 되는 가격에 롯데그룹을 물리치고 지분 100%를 인수했는데 현재 오비맥주의 가치는 5조원을 호가한다. KKR은 이에 앞서 2008년 어피니티 에퀴티 파트너스(AEP)가 국내 차 부품사 만도 (34,550원 ▲250 +0.73%)를 매각할 때도 유력 인수자로 등장했었다.

KKR은 당시 만도를 실제로 인수하려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만도가 과거 한라그룹 계열사로 형제기업인 국내 현대기아차에 제품을 주로 납품하고 있어 공급물량을 보증 받지 못하고 인수할 경우 기업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인수를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만도는 한라그룹이 되찾아갔고 KKR은 당시 한국 내에서 딜을 하려면 국내 대기업 가문과 관계를 쌓고 이들의 내면과 정서를 파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으로 보인다.


심기일전한 KKR은 5년 만에 현대기아차와 다시 마주할 기회를 찾았다. 올해 7월 이후 정몽구 회장과 정몽구재단이 이노션 지분 10%를 내놓자 국내외 십여 개 PEF 운용사들이 관심을 기울였고 KKR도 이 딜에 의지를 가졌다.

거래의 잠재 후보들은 이노션이 국내 2대 대기업인 현대기아차의 오너일가 기업이고 그룹으로부터 여전히 많은 광고물량을 지원받고 있어 지난 성장처럼 앞으로도 커나갈 가능성이 많다고 여겼다. 대부분의 잠재 원매자들은 2~3년 후 이노션이 IPO(기업공개)하는 과정에서 투자금에 이익을 덧붙여 회수할 수 있다는 예상으로 거래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다수 원매자들의 예상과 달리 정몽구재단이나 현대기아차는 매각 지분에 대해 어떤 보증도 해줄 수 없었다. 여기에 지분이 10%당 1000억원 안팎에 거래돼야 정몽구 회장의 8400억원 사회환원 약속이 지켜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대부분의 PEF 운용사들은 고평가를 부담스러워했다.

정 회장의 지분이 20%를 2000억원에 인수한 뒤 3~4년 내에 IPO를 기약할 수 없다면 큰 자금이 묶이는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비근하게 모간스탠리 프라이빗에퀴티는 2006년 이후 2038억원을 현대기아차 계열사인 현대로템에 투자하고 상장 후 자금회수 기회를 노렸지만 7년이 지난 현재도 전체 원금은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KKR은 국내외 PEF가 우려하는 문제를 해결할 사실상 유일한 존재였다. 글로벌 운용사인 이들은 올해만 284억 달러(약 30조원, 4위)의 자금을 시장에서 조달했다. 아시아 시장을 이끄는 수장은 한국인 2세 조셉 배(Joseph Y. Bae)는 오비맥주 인수의 성공을 기초로 국내 자산의 확대를 노리던 중이었다. 특히 지난해엔 아시아팀의 일부를 서울 시내 모처에 한국팀으로 파견해 투자기회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었다.

KKR은 다른 경쟁자들과 달리 이번 이노션 10%와 차후 매각될 10% 외에 정의선 부회장이 보유한 40% 지분도 매각될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구 회장의 지분은 사회 환원 약속으로 시장에 출회됐지만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은 현 정부의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근절이 강화되면서 매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KKR은 이노션 경영권 지분을 가지고 10년간 공동경영이 가능한 능력을 갖췄다. 차후 이 회사를 설립한 정성이 고문과 협의해 최소한 IPO를 통한 자금회수도 가능할 것이라 보고 있다.

KKR은 정몽구 회장 일가와 관계를 정립할 경우 이노션 뿐만 아니라 현대기아차 계열사들의 내부거래에도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머잖아 정몽구 회장에서 정의선 부회장 체제로 승계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그룹은 최근 제철 관련 계열사를 통합하면서 지배구조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대모비스와 기아차가 중심이 되는 정의선 부회장 위주의 지배구조가 유력하게 전망된다.

결과적으로 KKR은 국내 2대 대기업 오너가의 가업승계 과정에서 나타난 딜레마를 해결해주며 자신들도 다른 투자 기회를 찾을 이 거래의 유일한 대안으로 평가된다. 매각 주관사인 골드만삭스는 이런 배경에서 KKR을 인수자로 섭외했고 조만간 결실이 맺어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