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지점장서 보일러 기능사로… '재취업 성공기'

"환갑이 다 된 나이에 무슨 기술을 배우느냐" "이력서만 2000통 넘게 보냈습니다" "화려했던 옛 기억은 모두 지우고 지인을 찾아가 취업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불혹(不惑)을 훌쩍 넘긴 중장년층의 재취업의 길은 역시 험난했다. 은행지점장에서 보일러 기능사로, 최고경영자(CEO)에서 야간경비원을 거쳐 다시 회사원이 되기까지 눈물겨운 성공담이 쏟아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가 지난 1월 중순부터 3월초까지 공모한 재취업 성공스토리에 담긴 사연들이다. 일자리 희망센터는 16일 총 7편의 당선작을 선정해 시상했다.

◇ 은행 지점장서 보일러 기능사로=이만호(59세)씨는 2010년 10월 정년퇴직을 2년 앞두고 30년간 근무한 은행에서 지점장을 끝으로 명예퇴직대열에 합류했다. 이후 계약직인 지점감사직으로 2년간 더 근무한 이후 인생1모작을 마감했다.

퇴직후 전국을 돌며 배낭여행하면서 잠깐의 여유도 가져봤지만 막상 퇴직을 하고 나니 ‘이제부터 무얼 하며 살까?’하는 생각이 항상 마음을 짓눌렀다.


우연히 동네 자전거가게에서 자전거를 수리하던 중에 점포사장으로부터 “내가 이 자리에서 40년간 경영해 온 것도 다 기술덕분예요”라는 조언을 듣고 기술을 배워 다시 취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앞으로 30년간 인생2막을 잘 보내려면 반드시 기술이 필요하겠구나’라고 깨달음 때문이었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2011년 3월부터 직업전문학교에서 보일러기능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지만 용접 실습을 하다 옷을 태우기까지 하는 등 실수를 연발, 나이 어린 학생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나이 들어 무슨 기술을 배우느냐?”며 주위에서 비아냥거렸고 등산·골프·낚시 등 여러 사회모임에서 유혹도 많았지만 기술학교와 도서관으로 달려가곤 했다.

이렇게 어렵게 보일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지난 2년 동안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공조냉동기능사, 에너지산업기사, 전기기능사 등 7개의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격증이 재취업을 보장해 주지는 않았다. 전경련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를 방문해 전문컨설턴트와 상담도 하고 중장년 채용박람회에 달려가기도 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이씨는 지난 2월 국민은행 본점 시설과 보일러기능사 채용에 최종 합격했다.

이 씨는 “자신이 과거에 무슨 일을 했다든지, 월급을 얼마 받았다라는 생각을 버리고 눈높이를 낮추고 준비하면 미래가 보인다”고 강조했다.

◇ 이력서만 2000곳, 자기개발 소홀해선 안돼=이성주(42세)씨는 유명 핸드백 제조업체에서 해외무역 전문가로 일했다. 하지만 사업 부진으로 2012년 9월 경영지원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이전 직장의 경력까지 합치면 해외무역 분야에서만 12년간 잔뼈가 굵은 탓에 새 업무에 적응이 힘들었고 결국 사표를 쓰고 말았다.

한참 일할 나이인 40세에 일할 곳을 잃어버린 이씨는 설상가상으로 만기가 도래한 은행대출금 상환에 퇴직금을 모두 소진했고, 아내도 직장을 그만둬 온가족이 길거리로 나앉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실업수당만으로 생계를 꾸리기가 어려워 자녀 결혼자금용으로 만든 통장마저도 해약하고 부모님에게 드리는 용돈도 삭감해야만 했다. 계획했던 둘째의 임신도 미루는 등 생활비를 줄이는데 허리끈을 졸라맸다.

2000곳이 넘는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서류전형 조차도 통과하기가 쉽지 않았다. 연이은 실패로 이씨는 사무직으로의 복귀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좌절감과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자신감을 잃고 무력감으로 점점 위축돼 가던 중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전경련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이씨는 컨설턴트와 상담을 통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해외영업분야로 한 우물을 파기로 했다. 고민 끝에 당장의 구직활동 보다는 8주과정의 국제무역사 자격증 과정을 수강하며 본인이 갖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 발휘, 미래를 개척하기로 방향을 바꿨다.

구직활동을 시작한 지 10개월만인 2013년 10월, 중소무역회사로부터 면접제의를 받았다.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면접관에게 잘 전달했고, 마침내 최종 합격했다.

◇대기업 해외법인장, CEO에서 야간경비까지=김진인(56세)씨는 대기업에서 해외법인장과 사업팀장을 지내면서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로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운영중인 프로젝트가 실패하자 과감히 퇴사하고 중소기업으로 이직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쌓은 경험을 중소기업에서 활용하기란 현실의 장벽이 너무 높았고 이직한 회사의 경영악화까지 겹쳐 또다시 회사를 떠났다. 다행히도 두 번째로 이직한 솔루션업체에서 프로젝트에 성공, 회사를 정상화시킨 공로가 인정돼 별도법인의 CEO로 취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광도 잠시 내부경쟁자들의 시기와 질투로 결국 오너로부터 토사구팽을 당하는 처지가 됐다.

거듭되는 실패를 만회하고 싶은 욕심에서 갖고 있던 주식을 모두 판 1억원으로 시스템 개발 컨설팅 회사를 창업했지만 인지도가 없는 중소기업을 운영하기란 쉽지 않았고 무리한 계약으로 사업을 진행하다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당장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야간경비로 재취업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우선 자존심부터 버리기로 했다. 여러 곳에 입사원서를 냈고 지인을 찾아가 재취업을 부탁했다. 그러던 중 유사업종을 운영하는 옛 직장동료의 도움으로 어렵게 현재의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김씨는 매일 거울 앞에서 “새벽 3시에 깨어나 일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 못하면 당신은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좌우명을 되새기고 있다.

수기공모를 총괄한 양금승 협력센터 소장은 “중장년들이 치밀한 자기계발과 끊임없는 도전으로 재취업에 성공한 사례를 읽고 깊이 감동받았다”며 “이번 성공수기가 인생2막을 시작하려는 중장년들이 재취업 준비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를 줄이는데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협력센터는 2011년부터 ‘전경련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를 운영, 지난해말까지 4000명 이상의 중장년 구직자들을 재취업시켰다. 40세 이상의 구직자는 누구나 희망센터를 통해 재취업 지원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