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車, 한전부지 놓고 14년만에 정면 승부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한국전력이 서울 삼성동 본사 부지를 올해 경쟁입찰을 통해 매각한다고 밝힌 17일 오후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한국전력 본사 부지가 보이고 있다.<br><br>한전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본사 부지 7만9000여㎡를 입찰 자격 제한없이 최고가를 제시한 곳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2014.7.17/뉴스1

삼성이 삼성자동차 지분을 르노에 넘기고 자동차 사업에서 철수한지 14년만에 국내 재계 서열 1·2위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다시 정면으로 맞붙는다.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 한국전력 부지를 놓고 벌이는 한 판 승부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강한 입찰참여 의지를 밝혔다. 삼성그룹도 물밑에서 입찰참여를 준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감정가만 4조원에 육박하는 부동산 사업가치에 기업의 자존심이 얽히며 대격돌이 예상된다.


한전은 강남 최고 상권인 삼성역 인근 축구장 12개 규모로 형성된 본사부지 및 사옥에 대해 지난 27일 공개입찰을 선언했다. 무조건 최고가를 적어내는 컨소시엄이 땅의 주인이 된다. 단독입찰의 경우 유찰된다. 외국계는 50% 이상 투자할 수 없고, 두 차례 유찰되면 투자제한이 없어진다.

◇삼성도 참여 가닥, 재계 1~2위 자존심 격돌=가장 큰 관심사는 삼성그룹의 참여 여부다. 삼성그룹 한 핵심계열사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삼성그룹도 한전부지 입찰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입찰참여 여부에 대한 공식발표 시점을 미루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한전부지에 관심이 크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삼성의 참여가 확정 발표되면 인수단가가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것에 대해서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일찌감치 입찰참여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양 그룹은 옛 현대그룹 분할 전엔 전자와 건설, 중공업 등 전방위에서 경쟁구도를 형성했다. 이건희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한 삼성그룹의 자동차사업 진출은 두 재벌 간 경쟁의 정점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2000년 삼성차 지분을 르노에 매각했다. 현대 역시 같은 해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그룹이 분열조짐을 보이기 시작해 결국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 현대산업개발 등으로 쪼개졌다. 이후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 간 경쟁은 카드 등 극히 일부 사업군에 국한됐다. 양 그룹 후계자 간 돈독한 친분이 조명될 정도로 관계가 평온했다.

하지만 이번 한전부지를 놓고 벌이는 양 그룹의 대결은 2000년 이후 14년만에 가장 격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 측은 한전부지의 감정가를 3조3346억원으로 책정했다. 여기에 개발비용과 기타 부동산 추가 매입가격 등을 감안하면 관가는 한전부지 개발 사업이 무려 10조원에 달하는 메가프로젝트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매각에 대해서는 한전에 일임하고 있지만 공공기관 부채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빠르게 매각작업을 진행하자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전 관계자는 "유수 대기업들의 참여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력의 삼성에 명분의 현대차=현대차그룹이 먼저 명분 선점에 나서며 경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현대차는 글로벌기업 위상에 비해 협소한 양재동 사옥문제와 연인원 10만명이 방문하는 자동차 산업 중심의 랜드마크 건설계획 등을 부각시키며 당위성을 설파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한전부지의 상징성을 감안해 최대한 공공성에 입각한 개발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지역에 강한 부동산 개발 의지를 갖고 있는 삼성도 적극적으로 나설 공산이 크다. 최근 삼성전자 실적부진 우려가 제기되지만 누가 뭐래도 최고의 현금부자다.
한전부지 인근 감정원부지를 2011년 매입하며 연계개발에 대한 의지도 보일만큼 보였다. 삼성그룹 한 관계자는 " '삼성동'을 현대차에 뺏긴다면 무형의 타격이 크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농반진반으로 말했다.

현재로서는 외국계 자금의 참여가 변수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샌즈그룹은 내국인 카지노 허용을 전제로 참여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져 실질적으로 낙찰 가능성이 높지 않다. 중국 녹지그룹이나 프랑스 브이그 등도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부지개발을 위해 서울시와 '2인3각' 수준의 협업이 필요함을 감안하면 역시 낙찰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관가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