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정의선 '블록딜' 무산…지배개편 재추진 방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현대글로비스 (191,300원 ▲300 +0.16%) 주식 매각(블록딜)이 결국 무산된 가운데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승계 이슈도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에 있는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227,000원 0.00%) 주가가 크게 조정을 받으면서 그간 시장에서 거론돼 온 유력한 경영 승계 시나리오가 어그러진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그러나 '현대글로비스 보유지분 매각 후 현대모비스 지분확보'란 방향성은 확인됐다는 점에서 정 회장 부자가 현대글로비스 주식 매각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방향은 그간 시장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순환출자 구조로 얽혀 있는 데다 정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도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현대모비스가 현대차 지분 20.78%를, 현대차는 기아차 지분 33.88%를 보유하고 있다. 기아차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16.88% 갖고 있다.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등 다른 주요 계열사들은 현대모비스가 주요 주주다. 현대모비스가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해 있는 셈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문제는 현대모비스를 포함한 그룹 주요 계열사에 대한 정 부회장의 지배력이 극히 취약하다는 점이다.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31.9%를 보유하고 있지만 현대모비스 주식은 없다. 정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보유지분 가치를 활용해 현대모비스 주식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승계 작업이 이뤄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시장에서 거론된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째는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합병 시나리오다. 현대모비스를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분할한 뒤 두 회사를 합병하는 방안이다. 합병 시나리오는 정 부회장이 지주회사 지분 확보를 통해 손쉽게 그룹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여러 법적 제약과 기존 주주들의 반대 가능성이 걸림돌로 지적돼 왔다.

이 때문에 정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보유지분을 매각한 후 기아차나 다른 계열사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주식을 사들일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정 부회장의 보유지분이 많은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꾸준히 오른 반면 현대모비스 주가는 반대로 움직이면서 두 회사의 시가총액 차이가 좁혀졌다"며 "두 가지 방안이 유력한 시나리오로 떠올랐던 배경"이라고 말했다.

실제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지난 해 초 21만원대에 불과했으나 정 회장 부자의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 사실이 알려진 전날 기준으로 30만원까지 올랐다. 반면 현대모비스는 지난 해 4월 32만원대였으나 한전 부지 고가 인수 논란 등으로 최근 23만원대까지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은 전날 전격적으로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매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정 회장 부자가 보유 중인 현대글로비스 지분 43.39% 중 13.39%를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키로 하고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에게 인수 의사를 타진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해 초 정부가 대기업 집단의 일감 몰아주기를 줄이기 위해 개정한 공정거래법 등 정부 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선을 그었다. 정 부회장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기자들과 만나 "경영권 승계와는 무관하다"고 했다.

시장의 해석은 달랐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승계 작업의 신호탄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하지만 시장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결국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현대글로비스 주식 매각 계획이 무산되면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당분간 숨고르기에 들어갈 전망이다.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주가 조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블록딜 실패로 현대글로비스는 이날 하한가를 맞았다. 반면 현대모비스는 12% 이상 급등했다.

업계 관계자는 "'합병'이든 '주식처분'이든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선 기본적으로 현대글로비스 주가를 올리고 현대모비스 주가는 내리는 게 유리하다"며 "시장 상황을 보면 당분간은 두 가지 시나리오가 추진될 동력을 얻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그러나 정 회장 부자가 큰 폭의 주가 할인율과 주식처분에 따른 양도소득세(약 2500억 원 수준)를 감수하고 블록딜을 추진한 만큼 언제든 재추진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 부자의 현대글로비스 주식매각 의지만큼은 확실히 확인된 셈"이라며 "시장 상황이 나아지면 어떤 식으로든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다시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