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美금리·가계빚 '삼중고'…한은 8개월째 금리동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앞서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제공=뉴스1

한국은행이 23일 열린 2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시장 예상대로 1.25%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지난해 6월 금리인하(1.50%→1.25%) 이후 8개월째 동결기조를 이어갔다.

이번 결정은 대내외 경제 여건을 고려할 때 한은이 선제적 금리조정이 어려운 현실을 반증한다.

무엇보다 경제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예측 불가 정책 행보를 보이는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연내 추가 금리인상 시그널을 계속 보내고 있다.

향후 미국과 중국의 통상전쟁이 본격화되면 우리나라 수출도 타격을 받을 수 있고, 하드 브렉시트(영국 EU와의 완전한 단절), 프렉시트(프랑스의 EU 탈퇴) 가능성은 국제금융시장을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는 위험 요인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에 비기축통화국인 우리나라는 이 같은 대외여건 변화를 주시해야 하는 운명이다.

앞선 미국 금리인상기는 국내 경기가 나쁘지 않아 그나마 버텼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정치적 불안으로 경제심리가 크게 악화된 데다, 높은 불확실성으로 기업들도 대규모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다.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자 증가로 가계 소비여력이 줄어들 가능성도 높다.

지난 1월 금통위에서 국내 경기만 본다면 추가 금리인하를 할 만한 상황이라는 의견을 밝힌 금통위원이 있을 정도다. 그만큼 올해 국내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더 내리기엔 부담이 크다.

우선 미국과 금리격차가 줄어들 경우 자본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외환건전성이 예년보다 개선됐다고 하나 3700억달러 외환보유액이 위기 상황에 충분히 대처하기에 부족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4월 미국 재무부 환율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원화가치 절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금리정책 추진이 어려울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도 한은 통화정책 운용에 걸림돌이다.

지난해말 가계부채 규모는 1344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3개월 전보다 47조7000억원(3.7%), 1년 전보다 141조2000억원(11.7%) 각각 늘어난 것이다. 분기, 연간 기준 가계부채 증가액 모두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정부가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한자릿 수로 줄이겠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한은이 추가 대출 수요를 늘리는 금리인하를 선택하기 쉽지 않다. 반대로 가계부채 증가율을 낮추기 위해 금리인상을 할 경우 이미 가계로 흘러간 대출의 이자부담이 커진다.

가계부채 문제에 있어서도 통화정책을 펴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셈이다.

다수 국내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은 당분간 한은이 대내외 경제상황을 관망하면서 금리동결 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신성환 금융연구원장은 “경제가 좋지 못한 상황에서 시장금리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한은 입장에서는 당분간 금리를 올리기도 어렵고 내리기도 어려운 상황 같다”며 “다만 장단기 금리차가 굉장히 커질 경우 기준금리를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는 한은이 답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해외 투자은행(IB)들은 연내 추가 금리인하 전망이 많다. 특히 모간스탠리는 한은이 올해 세 차례 금리인하로 연말 기준금리가 0.50%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 통화정책 전망이 상당히 엇갈린 상황이다.


이에 따라 시장은 이날 이주열 총재 기자회견에 주목한다. 특히 최근 국내 경기와 가계부채 문제 등에 대해 이 총재가 어떤 견해를 밝힐지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