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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아재들의 '성희롱'에 면죄부는 없다

[the L]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상사의 강요에 성희롱 거부 못하는 '요구특성 효과'…성적 농담 즐기는 아재들의 착각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입력 : 2018.02.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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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아재들의 '성희롱'에 면죄부는 없다

2007년 1월4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 한나라당의 강재섭 대표와 황우여 사무총장이 주재한 신년맞이 오찬 기자간담회 자리였다. 당시 OO일보가 연재하던 성인 소설 '강안남자'가 화제에 올랐다.

강 대표가 갑자기 OO일보 기자를 찾기 시작했다. "OO일보 어딨어? 요새 조철봉(강안남자의 주인공)이는 왜 그렇게 안 해? 옛날에는 하루에 세번씩도 하더니. 요새는 '오늘은 한 번 하나?'하고 보면 또 안 하고. 그렇게 안 하면…"

여성이라면 불쾌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발언이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옆에 있던 기자가 제지하고 나섰다. "대표님, 여기자들도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번은 해줘야지, 한번은. 너무 안 하면 철봉이 아니라…낙지지" "대표님! 여기까지"

강 대표는 화제를 바꿨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여기자들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간담회가 끝난 뒤 일부 기자들이 당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날 오후 강 대표의 성희롱 발언이 온라인 매체를 중심으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강 대표도 처음부터 성희롱을 하려고 마음 먹은 건 아닐 것이다.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려는 의도였을 터다. 그러나 누군가 성적 수치심이 느꼈다면 그 자체로 성희롱이다. 다른 사람들이 듣는 곳에서 벌어진 성희롱은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다. 문제는 이런 식사자리 또는 술자리 성희롱이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묻히길 반복한다는 점이다. 강 대표 사건도 그 자리에 기자들이 있었기에 알려졌을 뿐 그렇지 않았다면 여느 때처럼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서지현 통영지청 검사의 폭로를 계기로 곳곳에서 성추행 피해 사실을 털어놓는 '미투'(#Me Too)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피해자들을 응원하는 '위드유'(#With You) 열풍도 거세다. 그러나 신체적 접촉이 수반된 성추행 못지 않게 피해자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기는 게 언어적 성희롱이다. 빈도로 따지면 성추행을 압도한다.

대개 식사자리 또는 술자리에서의 사내 성희롱은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부장이 음담패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내가 재밌는 퀴즈 하나 낼까? 좀 야한 건데 말야" 옆자리의 과장이 만류한다. "부장님, 여직원들도 있는데 좀···" 그러나 부장은 듣지 않는다. "괜찮아. 다 큰 성인들인데 뭐. 김 대리 괜찮지?" 여성 대리는 마지못해 부장의 기분을 맞춰준다. "네 그럼요. 부장님." 면죄부를 받은 부장은 신나게 음담패설을 이어간다.

과연 정말 괜찮을까? 성적 수치심을 느낄 게 분명한 이야기를 그는 왜 용인했을까? 심리학에선 이를 '요구특성 효과'(Demand Characteristics)로 설명한다. 심리학 실험에서 피실험자가 무의식적으로 실험자가 요구하는 대답을 하는 현상을 뜻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마틴 오른(Martin Orne) 교수가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누군가 어떤 대답을 기대하며 질문을 할 경우 상대방은 그에 부응하는 대답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시쳇말로 하면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정도 되겠다.

자신에 대한 인사권과 평가권을 쥔 부장이, 그것도 다른 동료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괜찮지?"라고 물었을 때 "아뇨. 싫습니다. 하지 마세요"라고 할 수 있는 직원이 얼마나 될까? "괜찮지?"라는 질문 자체가 강요일 뿐 아니라 예비적 성희롱에 해당하는 이유다.

적잖은 중년 남성들이 자신이 주재하는 자리에서 웃음을 주고 분위기를 푸는 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야하더라도 재미있는 농담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 착각이다. 누구도 그런 기대를 걸거나 의무를 부과하지 않았다.

만약 "이런 농담은 해도 괜찮을까" 고민이 된다면 "내 딸에게 이 이야기를 해도 될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딸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라면 여성 동료들 앞에서도 해선 안 된다. 정 웃기고 싶은데 야한 농담 말곤 할 이야기가 없다면 차라리 말장난식의 '아재개그'를 하길 바란다. 적어도 소송 당할 일은 없다.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8년 2월 8일 (05:00)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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