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봇 vs 인간…컬링 경기 해보니

컬링로봇/사진=과기정통부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깜짝 은메달을 딴 일명 ‘컬벤져스(컬링+SF영화 어벤져스)’ 여자컬링대표팀과 ‘컬링로봇팀’이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8일 오후 경기도 이천 대한장애인체육회 훈련원 컬링장. 인공지능(AI) 컬링 소프트웨어(SW) ‘컬브레인’을 탑재한 컬링로봇 ‘컬리(Curly)’팀과 강원도 고등부팀(춘천기계공고)의 1엔드 경기가 한창이다. 세계 최초 인간 대 로봇 컬링 대결이다. 컬리팀은 주장인 ‘스킵로봇’과 ‘투구로봇’으로 이뤄졌다. 대표팀 리드 김영미의 혼신의 빗자루질(스위핑)을 연출할 ‘스위핑 로봇’은 올해 개발 예정이어서 이날 경기에선 빠졌다.


연구자들이 붙여준 ‘컬리’의 별칭은 ‘영미봇’. 대표팀 주장 김은정이 김영미를 향해 외친 ‘영미~’를 따서 붙였다.

실제 컬링 환경과 유사한 컬링 시뮬레이터/사진=과기정통부

컬리는 고려대, 울산과학기술원, 엔티로봇 등 8개 기관으로 이뤄진 고려대 컨소시엄 60여명의 연구원이 공동개발했다. 겉으론 단순해 보이지만 스톤을 잡는 로봇집게, 빙판 위에서 안정적으로 주행할 수 있는 구동력 제어 기술, 로봇 간 네트워크 구축 등 정밀제어·센서·통신기술 등이 총망라된 로봇이다.

1엔드 시합. 투구로봇이 빙판 끝 정중앙에 위치했다. 이어 반대편 하우스에 선 스킵로봇이 몸을 일으키더니 헤드 부분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경기상황을 촬영했다. 상대방 스톤 위치 등을 찍은 영상은 총 1321개 경기(1만1000개 엔드, 16만 투구샷) 내용이 수록된 국제컬링경기 기보를 통해 딥러닝 학습한 AI ‘컬브레인’에게 전달됐다.


스킵로봇은 라인을 보고 던질 위치, 투구 궤적 등을 파악하는 게 주임무다. 빙판 상태까지 모두 고려해 투구에 필요한 힘과 방향, 스톤 컬 회전제어 등의 전략을 수립한다. 개발을 주도한 고려대 뇌공학과 이성환 교수는 “컬브레인은 실제 컬링과 유사한 컬링 고속 시뮬레이션 기술, 광선 투사를 이용한 스톤 충돌 예측 기술 등을 적용한 착점 확률분포 등을 통해 빙질의 상태를 예측한다”고 말했다.

투구로봇은 20kg 스톤을 가뿐히 밀었다. 하우스로 스톤을 미는 동작인 딜리버리는 안정적 자세가 관건. 로봇팀은 미끄럼 방지 제어 기술로 자세를 유지한다. 호그라인까지의 제한된 거리에서 최대 3.5m/s 속도로 스톤을 힘있게 밀어내기도 한다. 국가대표팀의 평균속도와 같다.

스톤이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5~6초. ‘퉁’ 소리와 함께 인간팀의 스톤이 하우스 밖으로 튕겨나가자 관중석에선 “와~”하는 함성이 터졌다. 컬리팀은 백발백중인 백더블 테이크 아웃(한번에 상대편 스톤 2개를 쳐내는 샷)을 해내며 ‘신들린 샷’도 선보였다. 경기 관계자는 “스톤이 1cm만 어긋나도 끝에선 40cm가 틀어진다”며 로봇의 정교한 투구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컬리팀의 플레이는 1엔드 후반부터 흔들렸다. 1엔드 1점을 내준 로봇은 2엔드 들어 자신의 스톤을 맞춰 하우스 밖으로 내보내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스톤을 미는 실수를 연발했다. 주최측은 로봇이 원하는 위치에 스톤을 놓는 드로우(Draw) 성공률은 65%, 상대방 스톤을 밀어내는 테이크아웃 성공확률은 90%에 가깝다고 했지만 막상 경기에선 이 같은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인공지능 컬링로봇 경기 시연 모습/사진=과기정통부

컬리팀은 대회 중반 빽빽하게 들어찬 인간팀 스톤 3개를 한 번에 쳐내며 역전의 발판을 닦는 듯했으나 투구로봇의 잦은 오작동과 마지막 투구는 가드를 세우는 치명적 실수를 범했다.

그렇게 약 30여분간 로봇과 인간의 사투는 마무리 됐다. 결과는 절묘한 샷을 수차례 이끌어낸 인간팀의 3대 0 판정승. 강원도 고등부팀은 경기 후 “로봇의 공격 스킬이 다양해 당황스러웠다”며 “경기 내용 측면에선 로봇의 승리”라고 말했다. 경기를 주최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훈련기간이 짧아 로봇이 충분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승패를 떠나 기술을 더욱 업그레이드해 컬링을 배우는 일반인 및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훈련지원 등에 로봇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컬리팀은 이날 오전 사전 리허설 경기에서 1대 0으로 승기를 잡은 바 있다. 고려대 컨소시엄 관계자는 “오후 본대회때 관계자와 취재진, 관중들이 많이 몰리면서 경기장 온도가 상승해 빙질에 영향을 미친 점이 패배 원인 중 하나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