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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는 장군에게 맡겨도 국가채무는 경제전문가에 맡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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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고은 기자
  • 2019.06.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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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한국은행 부산본부장, '국가채무비율' 논쟁에 부쳐…"재정지출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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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한국은행 부산본부장. /사진=뉴시스
#지난달 국가재정전략회의를 계기로 나랏빚 논쟁이 한참이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게 논쟁의 핵심이다. 차현진 한국은행 부산본부장(<b>사진</b>)이 국가채무의 본질을 묻고, 과거 역사를 따지며 '40%' 논쟁의 무의미함을 꼬집는다. 핵심은 재정이 얼마나 짜임새 있게 쓰이느냐에 있다고 강조하고, 그를 위한 고민거리를 던진다. 지난 14일 온라인 매체 '피렌체의 식탁'에 기고한 차 본부장의 글을 매체와 저자 동의를 얻어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다음은 차 본부장의 기고문 전문.

지난 5월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던진 질문을 시작으로 적정 국가채무비율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대통령의 질문은 간단했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가 재정건전성의 마지노선이라는 근거가 뭔가?”

그날 기획재정부 참석자들은 “미래 세대에 큰 부담을 지우지 않아야 한다”는 당위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은 적이 없었으니 가급적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했다고 보인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대답이다. 연역적 사고로 훈련된 변호사에게 귀납적 성격의 답변은 마음에 들 리 없다. 과거의 경험에서만 해답을 찾게 되면,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고 감탄할만한 음식 앞에서도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엄마 젖만 먹던 아기가 이유식에 기겁하듯이.

적정 국가채무비율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40~60%, 세계은행은 77%, 그리고 국제결제은행(BIS)은 85%, 하버드대학교의 로고프 교수는 90% 등 나름대로의 모형에 따라 적정 수준을 제시한다. 하지만, 워낙 차이가 심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치른 유럽 각국의 사례를 감안한 것이라서 우리나라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획재정부 참석자들은 전쟁이 아닌 통일을 대비해서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고 보인다.

그러나 국가채무는 워낙 정치적 현상이라서 경제전문가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가들이 전투는 장군에게 맡겨도 국가채무는 경제전문가에게 맡기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채무에 관한 논쟁은 어느 나라에서나 뜨겁다.

적정 국가채무비율을 앞세우는 사람들은 미래 세대에 부담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이미 14%를 돌파하여 고령사회로 진입했기 때문에 그런 두려움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다수의 늙은 세대가 소수의 젊은 세대에게 짐을 떠넘기는, 부도덕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채무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제기되는 것이 세대간 채무부담(intergenerational debt burden)이다. 18세기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은 미국은 죽은 사람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미국이 죽은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다음 세대에게 빚을 넘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헌법에 국채발행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레이건 대통령도 1981년 1월 취임사에서 “국가채무의 누적은 틀림없이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 재앙을 가져온다”고 상기시키면서 건전재정을 다짐했다. 그러나 취임 당시 1조 달러의 국가채무는 그의 재임기간 중 3조 달러로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인식된다. 그가 늘린 국가채무 덕분에 냉전이 종식될 수 있었다는 것이 미국 시민들의 보편적 정서다. 젊은 세대가 고생한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미국인들이 레이건을 원망하지 않는 이유는, 국가채무는 동시대의 국민이 다른 국민에게 빚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채무의 대물림이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 국가채무 논쟁을 거친 거의 모든 나라에서 한결같이 내리는 결론이다.

국가채무 규모를 걱정하는 것은, 개인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데서 오는 아주 오래된 공포감일 뿐이다. 아버지가 옆집에서 돈을 빌리면 가족의 빚이 늘어나지만, 부부끼리 또는 부자간에 돈을 빌리면 가족의 빚은 늘어나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끼리 돈을 빌려도 동네 전체의 빚은 늘어나지 않는다. 링컨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링컨은 남북전쟁 중 엄청나게 늘어나는 빚더미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나 빚을 더 늘리는 데 주저하지는 않았다. 1864년 초 의회에 국가채무를 더 늘려줄 것을 부탁하면서 “시민이 시민에게 빚을 지는 훌륭한 장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진 빚 때문에 위축될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가 게티즈버그가 아닌 맨해튼에서 연설했다면 틀림없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채무를 감당하는 국가는 영원할 것입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레이건의 국가채무가 냉전을 종식시켰다면, 링컨의 국가채무는 내전을 종식시켰다. 둘 다 위대한 빚이었다(지금 필자가 죽은 미국 대통령을 빌려서 살아 있는 우리나라 대통령을 칭송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국가채무는 전쟁 때문에만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학교, 도로, 항만, 공항을 짓고, 치안을 유지하고, 가난한 사람을 돕다 보면 돈이 모자란다. 세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서 채권을 발행하게 된다. 결국 나라살림을 꾸려나가면서 세금을 더 걷는 방법 대신에 택하는 것이 국가채무를 늘리는 방법이다.

만일 지금 세금을 더 걷어 학교, 도로, 항만을 더 짓는다면, 다음 세대는 틀림없이 훨씬 안락하고 편안한 시설을 누리게 될 것이다. 결손가정이나 최빈층 자녀들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소득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 일들이 더해져서 생산성이 향상되면, 경제도 좋아진다. 그런 행운은 앞선 세대의 납세부담에서 나온다. 당대에 별로 누리지도 못할 사회간접자본과 국가 서비스를 위해서 세금을 더 내는 세대들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즉 세금을 통해 사회간접자본을 늘리는 것이야말로 세대간 불평등을 부추긴다. 세대간 불평등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국가채무를 늘리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다 보면, 국가채무를 늘리는 것이 최고의 경제정책인 것처럼 들린다. 물론 아니다. 세금을 거두건 채무를 늘리건, 정부가 별로 생산적이지 못한 데 돈을 쓰면 경제가 망가진다. 어느 정부나 돈을 쓸 때는 인력양성, 구조개혁, 기술혁신을 내세우지만, 계획과 집행이 따로 놀게 되면 체력을 탕진하여 대가를 치르게 된다. 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해 집행한 자금이 경제체질을 오히려 망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재정지출을 급작스럽게 늘려서는 안 되는 현실적인 이유는, 재정지출도 학습능력의 법칙이 따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갑자기 용돈을 늘려주면 엉뚱하게 지출하듯이, 정부도 갑자기 지출규모가 늘어나면 어디에 쓸 것인지 당황하게 된다. 지금 경제부처의 장관들은 젊은 시절 요즘처럼 재정자금을 집행해 본 경험이 없다.

최근 수년간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은 빠르게 상승하여 유래 없이 수준에 도달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을 18%포인트 이상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취임할 때 30.9%였고, 퇴임할 때는 49.7%였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110%를 넘은 적도 있었으므로 경천동지할 일이 아니었다. 그에 비해서 현재 우리나라는 사상 최고 수준에 와 있다. 의도와 달리 재정지출이 비효율적으로 집행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당장 국가채무비율을 낮출 수도 없다. 경기가 침체되고 있어서 현실적으로 어렵다. 경제가 착실히 성장하여 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이 낮아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군인 출신의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8년의 임기 내내 무모하게 국가채무를 줄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세금을 열심히 거뒀다. 그 덕분에 그의 임기말 2년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국가채무가 없었던 기간이다. 그러나 그의 임기가 끝나는 동시에 최악의 경제난이 시작되었다. 그 다음 정부는 경제를 살리느라 국가채무를 더 늘려야 했다.

이미 늘어난 국가채무를 인위적으로 줄이겠다고 의욕을 부리는 것은, 이미 울타리를 넘어간 양을 찾아서 산을 헤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무모한 노력이다. 차라리 남아있는 양떼를 잘 키우고 늘리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양의 숫자가 늘어난다. 국가채무도 그런 식으로 시간을 걸려 해결하는 것이 정답이다.

국가채무 문제의 해결에 때를 기다리는 것이 무책임한 태도는 아니다. 오히려 매우 신중하고 책임 있는 자세다. 국가채무는 실제보다 과장되어 평가되기 때문에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정부가 국방, 치안, 교육, 보건, 복지,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는, 외부효과(external effect) 때문이다. 좋은 직업훈련과 좋은 교육을 통해 덕을 보는 것은, 양질의 노동력을 공급받는 기업이다. 좋은 치안과 의료시스템, 안정된 복지서비스를 통해 사회가 건강을 유지할 때 덕을 보는 것도 기업이다. 결국 국민 모두가 국가채무의 수혜자다. 정부는 그것을 위해 재정적자를 마다하지 않는다.

국가채무는, 정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간을 위한 사업의 결과다. 국가채무를 줄이는 것은, 정부가 정부답기를 주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가채무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순간, 교육은 나빠지고, 치안은 불안해지고, 직업교육은 부실해진다.

중요한 것은 국가채무 규모나 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느냐 마느냐가 논란이지만, 그 수준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일본의 국가채무비율이 220%를 넘는다고 하지만, 일본은 외환시장 개입비용을 재정이 담당한다. 우리나라도 일본식으로 계산하면, 즉 한국은행 통화안정증권을 국채로 간주하면 국가채무비율이 이미 40% 중반을 훌쩍 뛰어넘는다.

중요한 것은 재정지출의 견실성이다. 자금조달방법보다는 사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은, 민간부문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근 50년 전 발표된 모딜리아니밀러 정리(Modigliani-Miller Theorem)가 그것이다. 정부의 살림살이도 마찬가지다. 재정지출이 얼마나 짜임새 있느냐가 알파요, 오메가다.

그러므로 모든 정부는 장기적 시계에서 집행계획을 잘 짜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국가재정전략회의가 그런 노력의 하나다. 그런데, 신통치 않다. 한국은행이 국민계정통계의 기준년도를 개편하는 바람에 지난해 경상GDP가 불쑥 튀었고, 그 바람에 국가채무비율은 뚝 떨어졌다. 대통령을 모시고 중장기 재정전략을 짠다는 모임에서 한 달 뒤 분모(경상GDP)가 조정된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았으니, 국민들이 오히려 머쓱해진다. 장기계획은 더 치밀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미국의 후버 댐은 대공황을 벗어나려고 허겁지겁 지은 것이 아니다. 대공황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10년 이상 준비하고, 설계했다. 그래서 뉴딜정책의 가장 성공적 상징물로 남아 있다. 그 웅장한 계획을 착실히 진행한 사람이 바로, 대공황을 방치했다고 비난을 받는 후버 대통령이다. 그리고 그 과실은 그를 낙선시킨 루스벨트 대통령이 차지했다. 좀 억울한 일이지만, 정치는 원래 그런 것 아닌가! 국가대계는 그런 자세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여야 정치인들이 당장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합심해야 한다.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무모한 재정집행은 피해야 한다. 납세자들의 관심도 온전히 재정지출의 효율성과 유효성에 모아져야 한다.

국회에서 예산을 심의할 때 쪽지예산이 횡행하는 한, 재정지출은 효율성을 갖기 어렵다.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가 조급하게 진행되면, 낭비가 되기 쉽다. 역사적으로 그런 일은 그리 드물지 않았다.

짜임새 있는 예산은 어떻게 만들까? 말할 것도 없이 국회의원들의 양식과 자질이다. 거기에 더하여 365일 예산에 관해 토론하고 심의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회계연도가 시작되기 18개월 전부터 행정부에서 작업이 시작되어 9개월 전에 대통령이 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한다. 행정부는 2년 뒤를 내다보고, 의회는 대략 8개월의 심의기간을 갖는다. 한 번쯤 참고해 볼 만한 제도다.

국회가 예산심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회계연도를 바꾸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9월이 되면, 국정감사 하랴 예산심의 하랴 국회가 엄청나게 바빠진다. 시간에 쫓긴다. 국제적으로 보면, 회계연도가 1월부터 시작되는 나라는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은 양력설을 쇠면서도 회계연도 시작이 4월이고, 중국은 음력 설을 쇠면서도 그 시작이 1월이라는 점이다. 예산심의에 내실을 기하기 위한 기교다.

우리나라는 1956년 회계연도를 달력과 맞췄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회계연도의 시작이 4월인 때도 있었고, 7월인 때도 있었다. 만일 정부가 회계연도를 조정하면, 한국은행과 수많은 공기업도 예산집행과 편성 관행이 덩달아 바뀐다. 사회 전체적으로 파급효과가 크다. 생각을 유연하게 하면, 답이 보일 수 있다.

오래전 미국에는 이런 도넛 광고가 있었다. “인생이 힘들 때 무엇을 보고 살아가든, 도넛만 잘 보세요. 구멍에 한 눈 팔지 말고(As you wander on through life, brother, whatever be your goal, keep your eye upon the donut and not upon the hole.)”

재정지출이 도넛이라면, 국가채무는 도넛의 구멍이다. GDP대비 국가채무비율도 텅 빈 개념이다. 대통령의 원론적 질문에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재정지출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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