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여 만에 1320원 넘긴 환율, 이대로 1400원까지?

(서울=뉴스1) 조태형 기자 = 15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달러·원 환율은 전날에 비해 14.0원 오른 1326.1원으로 마감했다. 코스피 지수는 전날 대비 8.66포인트(0.37%) 상승한 2330.98, 코스닥은 3.69포인트(0.48%) 하락한 762.39을 기록했다. (다중노출 촬영) 2022.7.15/뉴스1

원/달러 환율이 1350원을 넘어 1400원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 환율상승이 미국 중앙은행(Fed)의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 가능성과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 따라 확산하고 있는 경제침체 우려 등에 기인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 달러화 초강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이에 따라 금융업계에서는 다음주로 예정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방한에서 한미 통화스와프가 의제로 올라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7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올 초 1200원 수준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 15일 종가 기준으로 1326.1원까지 뛰었다. 지난 12일 1312.1원 이후 3거래일 만에 연고점을 갈아치운 것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남아있던 2009년 4월29일 1340.7원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금융투자업계 등의 전문가들은 미국의 금리인상, 위안화·엔화·유로화 가치 절하가 맞물리면서 달러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미국의 생산자·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미국이 추가 자이언트스텝을 넘어 1% 금리 인상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앞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달 15일 0.75%의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시장에선 오는 26~27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75%~1%의 추가 금리 인상을 예상한다. 이처럼 미국이 계속해서 금리를 올리면 상대적으로 원화의 가치가 떨어진다. 이 경우 외국인 자금 유출, 에너지 등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무역수지 악화 등의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유로화와 엔화 등 주요국 통화 가치 하락도 달러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지난 13일 유로화의 가치가 1유로당 0.9998달러를 기록하면서 20년만에 가장 낮은 수치로 기록됐다. 유럽중앙은행은 그동안 경기침체를 우려해 -0.50%의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가 벌어지면서 유로화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유로화가 공식 출범한 2002년 이후 최저 수준이며 올해만 유로화의 가치는 11.8%나 떨어졌다.

일본과 중국의 금리 인하 등의 통화 완화 정책도 달러 강세의 주된 이유로 꼽힌다. 지난 14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139.39엔까지 올라가는 등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엔/달러 환율이 139엔대를 기록한 것은 1998년 9월 이후 24년 만이다. 일본은 물가 상승보다 성장 하방 압력이 더 심각한 상황으로 수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우리 경제가 '엔저의 함정'에 빠질 것을 우려했다. 김 교수는 "엔/달러 환율이 147엔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며 "이정도 수준까지 올라가면 원/달러 환율도 1400원선까지 올라야 엔화 대비 원화 가치가 방어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대로 원/달러 환율이 내려가면 원화 대비 엔화 가치가 현재 100엔 당 950원대에서 800원까지 떨어져 일본 제품의 수입, 일본 여행이 늘어 무역수지 적자를 초래한다"며 "정부는 환율 관리 이외에도 수출 확대를 위한 정책적 고민도 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외환당국은 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스무딩오퍼레이션(미세조정)에 나서고 있지만 환율 방어에 역부족인 모습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를 열고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1.75%에서 2.25%로 한번에 0.5%포인트(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또한 외한당국이 원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달러 매도에 나섰다. 3월 39억6000만달러, 4월 85억1000만달러, 5월 15억9000만달러 등 4개월간 234억9000만달러를 사용했지만 환율을 계속 올랐다. 외환당국은 외환시장의 쏠림현상 발생 여부를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특정 원/달러 환율 수준을 목표로 두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한·미 간 통화스와프를 활용한 환율 관리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보이고 있다. 통화스와프는 협정을 국가간 맺은 현재의 환율에 따라 필요한 만큼 상대국과 돈을 교환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최초 계약 때 정한 환율로 원금을 재교환하는 거래를 뜻한다. 우리 외환당국입장에선 기축통화를 필요할때 인출할 수 있게 되는 만큼,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이 생기는 셈이다.

한국은 미국과 통화스와프로 원화 급락을 막은 전례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8년 10월 30일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이 전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전 거래일(1427원)보다 177원 떨어졌다. 2020년 3월 19일에는 미국과 6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당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3.1% 떨어졌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지금과 같은 원화 가치 하락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며 "한미 양국간 통화스와프가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고 시장에도 의미있는 시그널(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통화스와프를 하지 않는다면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까지 도달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오는 19일 방한하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양국간 금융 안정, 시장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양국 재무장관 면담에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문제를 다루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 참석한 추 부총리는 15일(현지시간)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양국 간 금융안정, 시장에 관한 협력 방안을 폭넓게 얘기하면서 정책을 공조할 방안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문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담당하는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지난번 한미정상회담 때도 나왔지만 통화스와프는 연준 관할이라고 재무당국자가 말한 바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