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많은 美캘리포니아 "기후변화 위험 숨겼다" 석유기업에 소송

[뉴욕=AP/뉴시스] 1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화석연료 종식 촉구 시위가 열려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이날 전 세계에서 60만 명 넘게 참여한 화석연료 종식 행진이 열려 뉴욕에서는 북미 전역의 청소년 활동가, 원주민 지도자, 뉴욕 풀뿌리 지도자, 기후 활동가 등 7만5천여 명이 참여했다. 2023.09.18.

올해 유난히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 소식이 많이 들리는 가운데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엑손모빌, 쉘, BP 등 대형 석유기업 기업들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수십년간 화석연료가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치명적인 폐해를 은폐해 온난화 대응을 지연시켰고 그로 인해 대형 산불 등 자연재해를 유발했다는 비판에서다.

AP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고등법원에 '화석연료 의존의 위험성에 대해 허위정보를 유포하고 사실을 은폐했다'며 이들 석유재벌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피고에는 엑손모빌, 쉘, BP 외에 코노필립스, 쉐브론, API 등이 포함됐다.


캘리포니아주는 무려 135페이지에 달하는 소장을 통해 석유업계가 1950년대 초부터 화석연료 연소가 기후에 미치는 재앙적인 영향을 알고 있었고, 주정부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간은 촉박했다고 주장했다. 주정부는 석유기업들이 진실을 호도해 지구 온난화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 지연됐고 이로 인해 캘리포니아에 가뭄, 대형 산불, 태풍 등 수십억 달러(수조원)의 피해를 입힌 만큼 피해 복구에 사용될 기금을 조성할 것을 요구했다.

[모하비 국립보호구역=AP/뉴시스]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미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국립보호구역의 조슈아 나무들이 '요크산불'(York Fire)로 불에 타고 있다. 지난달 28일 발생해 서울 면적의 절반가량을 태운 '요크산불'은 높은 기온과 강풍을 타고 네바다주로 넘어가고 있다. 2023.08.01.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50년 이상 '빅 오일' 기업들은 우리에게 화석연료가 지구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거짓말을 해왔다. 캘리포니아 납세자들이 이 비용을 부담해선 안되며, 오염원들이 책임을 지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소송에 대해 밝혔다.

이번 소송은 지난주 캘리포니아주가 석유 기업들을 비롯해 주요 '오염원들'이 제품 공급 및 사용과 관련된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고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가운데 제기됐다. 지난달 몬태나주에서는 청소년들이 주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기후소송에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며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살 권리"를 인정받기도 했다. 그간 미국에서 수십건의 기후 소송 중 원고의 손을 들어준 판결은 몬태나주 법원이 최초다.


유엔(UN)과 콜럼비아대학교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2017년에서 2023주년 여름 사이 약 5년 간 기후 관련 소송이 2배로 늘어났다. 대부분 미국에서 제기된 소송이다.

밀라노-비코카 대학의 정치지리학 교수인 마르코 그라소는 캘리포니아주의 이번 소송을 두고 화석연료 산업이 기후 피해자들에게 지불해야 할 재정적 의무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대담한 조치라고 밝혔다. 그는 "다른 단체들도 이미 같은 이유로 화석 연료 회사를 고소했지만, 이 소송은 캘리포니아의 기후 위기에 대한 역할, 지위 및 취약성을 고려할 때 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쉘 기업 로고/사진=머니투데이 사진DB

미국에서는 석유 및 가스 등 화석연료 기업들을 상대로 한 소송이 정치적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민주당 성향이 강한 캘리포니아주는 현대 환경운동의 발상지이면서 미국에서 7번째로 큰 석유 생산지이다. 산불, 폭염에 시달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뉴섬 주지사는 2030년까지 1990년 수준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태양열 발전, 기타 청정 에너지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그레그 애봇 텍사스 주시사를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은 이 같은 소송이 산업에 해를 끼치고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관련 기업들도 핏대를 세우고 있다.

API는 "미국의 기반 산업과 그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무가치한 소송"이라고 성명을 통해 일축했다. 기후 정책은 의회가 토론하고 결정할 문제이지 법원에서 사법적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쉘 역시 저탄소 미래로의 전환을 지지하나 법정은 기후변화 문제를 다룰 장소가 아니라고 밝혔다.

UCS(Union of Concerned Scientist·참여 과학자 모임)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1986년 이후 미국 서부와 캐나다 남서부에서 발생한 산불로 불에 탄 전체 면적의 37%가 화석연료 및 시멘트 생산과 관련된 탄소 배출 때문일 수 있다.

한편 17일(현지시간) 뉴욕에서는 '기후 주간'(Climate Week)을 맞아 화석연료 종식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려 7만5000명이 행진했다. 이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며 새로운 석유 및 가스 프로젝트 승인을 중단하고 '기후 비상 사태'를 선포할 것을 촉구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전세계 54개국에서 화석연료 사용에 반대하는 500여개 시위가 마련돼 60만명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