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의 판소리-뮤지컬넘버 도원결의…'적벽대전'의 변주

정동극장은 올해 첫 공연으로 이달 1일부터 26일까지 창작 판소리 공연 '적벽'을 선보인다. /사진=정동극장

"하늘이시여, 사람이시여…뜨거운 형제의 맹세!"(적벽, '도원결의' 중)

유비, 관우, 장비의 부채가 한데 모이고 결연한 맹세는 노래로 울려퍼진다. 세 사람의 '합창'은 극의 비장함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때는 한나라 말엽, 위(魏)·촉(蜀)·오(吳) 삼국이 황금권좌를 둘러싸고 격돌하던 시기다. 유비, 관우, 장비는 도원결의를 맺고 제갈공명을 찾아 삼고초려한다. 유비 연합군은 조조를 상대로 적벽대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지만 관우는 옛정을 생각해 조조를 놓아준다.

북을 든 고수와 한 명의 소리꾼이 등장하는 전통 판소리 공연의 틀은 깨진지 오래다. '적벽' 무대에서는 20여 명의 배우들이 소리와 춤을 겸한다. 고수는 한 명이지만, 고수의 북 장단에 피리, 태평소 등 전통국악기와 드럼, 베이스 등 서양악기가 섞이면서 풍성하고 웅장한 무대 음악을 만들어낸다.

'적벽'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적벽가'를 재창작한 공연이다. 한나라 말엽을 배경으로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부터 적벽대전까지의 내용을 다룬다. /사진=정동극장

정동극장의 올해 첫 공연인 '적벽'(3월1일~3월26일)은 지난해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학생들이 선보인 작품 '적벽무'를 정식 계약해 무대에 올린 것이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 가장 난이도 높은 '적벽가'를 재창작했다. 적벽가는 센 소리가 많아 어지간한 공력이 없으면 의미 전달이 어려운 작품이다.


'적벽'은 판소리 합창을 통해 소리의 폭발력과 극적 효과를 높였다. 다만 어려운 한자어들의 합을 맞춰 가사 자체의 전달력을 높이는 일은 숙제로 남는다. 이외에도 주요 인물들의 독창과 뮤지컬 '송쓰루'(Song-through·대사 없이 노래로 진행되는 형태) 등 다양한 노래 기법을 통해 흥미로운 무대 구성을 이뤄냈다.

'적벽'은 판소리에 뮤지컬 및 무용적 요소를 결합한 창작 작품이다. 모든 배우들이 역할의 큰 차등없이 연기, 소리, 춤을 선보인다. /사진=정동극장

"적벽이 춤을 추고, 불이 춤을 추고, 두고 온 고향 생각, 그리움이 흐르고 흘러 적벽의 춤이 되는 구나. 화살 맞아 춤을 추고, 불을 맞아 춤을 추고, 칼을 피해 춤을 추고, 창에 찔려 춤을 추고…"(적벽, '적벽대전' 중)

소리뿐만 아니라 움직임도 변주를 거듭한다. 공연 내내 현대무용과 아크로바틱, 격투기를 섞어놓은 듯한 군무가 쉴새없이 휘몰아친다. 동선은 일사분란하게 모였다 흩어지며 변화한다. '적벽'에서 배우의 움직임은 행위를 넘어 무대이자 배경, 그리고 소품이 된다.

특히 조조와 유비 연합군의 전투 장면은 압권이다. 배우들은 물을 건너는 수군이 되었다가, 말을 타고 돌진하는 기마병이 되었다가, 궁수가 되어 화살을 날리기도 한다. 판소리의 주요 소품인 '부채'는 바람과 불, 칼과 활 등을 표현하며 군무를 세밀하게 장식한다.

삼국지 적벽대전처럼 유명한 소재를 좋은 공연으로 옮기기 위해 때로는 '과유불급'을 감내하고서라도 과감한 도전을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적벽'은 판소리, 뮤지컬, 무용 등을 활용한 화려한 예술적 변주를 통해 75분간의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