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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친구’ 잃은 임재범, “아내의 웃는 모습이 유일한 낙”

로커 임재범, 투병 6년만에 아내와 사별…1999년 뮤지컬 보고 반해 2년 뒤 한달만에 결혼

m-뮤직Q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입력 : 2017.06.13 17:39|조회 : 18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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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친구’ 잃은 임재범, “아내의 웃는 모습이 유일한 낙”
‘포효하는 로커’ 임재범(55)은 대외적으로 기인이자 마초로 평가되기 일쑤였다. 음악하면서 그에게 맞았다는 사람도 여럿이고, 방송 도중 그가 무단이탈해 녹화가 중단되는 곤욕을 치른 방송 관계자들도 적지 않다. 각종 종교를 마스터한 기인의 꼬리표도 추가됐다. 그는 예술인으로서 적지 않은 흠결과 오해를 남기며 그렇게 대중에게 인식됐다.

그가 숱한 편견과 오해의 그늘에서 비로소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 2011년 MBC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출연이었다. 방송과 영영 담을 쌓을 것 같았던 ‘천재 로커’가 자존심 구기고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낸 것만으로 음악계는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방송에서 온몸에 한을 가득 싣고 노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픈 아내를 위해서 병원 치료비를 마련하고 싶었다.” 이기적인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족을 위해 희생의 말을 내뱉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임재범은 2001년 결혼한 아내 송남영 씨가 결혼 10주년을 맞은 2011년 갑상선 암을 선고받고 제거했지만, 간과 위로 전이됐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다. 그는 방송 전까지 저작권료 100~200만 원 정도로 근근이 살아야 했다. 딸과 놀이동산에 갈 땐 어김없이 버스를 탔고, 가족과 장을 볼 때도 돈에 맞춰 물건을 골라야 했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결혼 이후 그는 마초의 흔적도, 기인의 열정도 모두 버렸다. 그는 오로지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에만 충실했다. 그는 당시 “총각일 땐 싫은 건 무조건 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라졌다”며 “아내와 딸이 나를 변화시켰고 아내가 웃는 모습을 보는 것, 딸을 즐겁게 해주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라고 말했다.

결혼 전까지 임재범은 친한 친구가 없었다. 그와 함께 연주하거나 음반에 참여한 뮤지션 중 ‘임재범’, 그리고 그의 가족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는 속내를 털어낼 준비가 돼 있는데도, 선입견이나 소문만으로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음악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와 오랫동안 연주를 함께한 A 뮤지션은 “그의 보컬 실력이나 음악적 취향은 알지만, 가족 얘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실제 임재범의 가족사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탤런트 손지창은 이복동생이고 아버지 임택근(전 MBC 아나운서)에게도 호칭을 제대로 부른 기억이 없을 정도다. 어린 시절, 그는 혼자 특이하게 행동하는 걸 좋아해 다른 이와 소통하는 데 부족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폭행설 등이 이어질 땐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고 토로했다.

임재범은 2011년 데뷔(1986년 ‘시나위’로 데뷔) 25주년 인터뷰에서 “그 시절의 ‘나’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조금 더 일찍 소통하지 그랬니?’라고 말했을 것”이라며 “소통을 위해 스스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2011년 리메이크 음반 '풀이' 낸 로커 임재범.
2011년 리메이크 음반 '풀이' 낸 로커 임재범.

1999년 뮤지컬 ‘하드록 카페’를 보고 출연 배우인 지금의 아내에게 반하지 않았다면 임재범은 늘 ‘혼자’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그로부터 2년 뒤 우연히 식사를 같이하면서 한 달 만에 그녀와 결혼했다.

결혼 이후 그에게 아내는 친구였고, 동반자였고 삶의 희망이었다. 마초라는 인식도 선입견에 불과했다. 그는 집안일도 아내와 반반씩 나눠서 했고, 딸이 태어나고 3년간 집에서 돌보기도 하는 자상한 아버지의 면모를 어김없이 드러냈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뒤 뮤지컬 ‘명성황후’, ‘페임’, ‘겨울나그네’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누린 아내 송씨는 투병 이후 늘 아낌없는 사랑을 베푼 남편이 유일한 친구이자 희망이었다.

결혼 10주년에 터진 아내의 투병 소식에 맞춰 방송에서 아내를 위해 혼신으로 부른 노래가 끝날 때마다 임재범은 아내를 걱정하며 기도했다. 아내는 그의 가창이 1위를 찍을 때마다 아픈 몸을 이끌면서도 더 큰 목소리로 응원했다. 남편이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지난 몇 년간의 시간에서도 투병 중이던 아내는 남편의 손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2011년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임재범이 국내에서 제일 큰 공연장에서 에릭 카멘의 ‘올 바이 마이셀프’(All By Myself)를 부르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많이 울었어요. 힘든 가정환경, 무심한 부모 때문에 상처받으며 혼자 보낸 지난 세월이 야속했거든요. 하지만 신께선 고통을 줄 때 기회도 함께 준다고 생각해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은 신이 주신 가장 큰 기회입니다.”

12일 별세한 송씨의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차려졌다. 발인은 14일.

김고금평
김고금평 danny@mt.co.kr twitter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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