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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즐기는 詩와 畵…가을엔 남도로 떠나볼까

어디로? 여기로! 머니투데이 해남·광주=이경은 기자 |입력 : 2017.10.21 08:31|조회 : 6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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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간 바위 아래 띳집을 지으니,
그 모르는 남들은 웃는다고 한다마는,
어리석고 어두운 뜻에는 내 분수인가 하노라.

보리밥 풋나물을 알맞게 먹은 후에,
바위 끝 물가에서 마음껏 노니노라.
그 남은 나머지 일이야 부러울 게 있으랴.

잔 들고 혼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니,
그립던 임이 온들 반가움이 이러하랴.
말씀도 웃음도 없어도 못내 좋아하노라.
(후략).

국문학 역사상 시조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조선시대 문인, 고산 윤선도 선생(1587~1671)의 '만흥' 중 일부다. 고산이 56세 되던 해인 1642년(인조20),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고향인 전남 해남에서 산중생활을 즐기며 지은 작품이다. 화려하거나 세속적이지 않고 자연 속에 어우러져 여유를 즐길 줄 아는 풍류가 느껴진다. 하루하루 분주한 삶 속에서 하늘 한 번 올려다보는 일도 드문 우리네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 같은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

바쁜 일상에서 잠시 비껴서서 마음의 안식을 찾고 싶다면 선인들의 노래한 멋과 예술을 느낄 수 있는 남도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 12~13일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예향’이라 불리는 전남 해남·광주로 예술기행을 떠났다.

고산의 사당(왼쪽)과 녹우당에 우거진 숲(오른쪽)/사진=이경은 기자.
고산의 사당(왼쪽)과 녹우당에 우거진 숲(오른쪽)/사진=이경은 기자.


윤선도가 노래한 자연 속 삶…사철 푸른 숲에 안긴 '녹우당'

우리나라 서남해의 끝자락 해남의 연동마을에는 고산이 살았던, 해남윤씨 어초은파의 종갓집이 있다. 듬직한 덕음산이 고택을 품에 안은 듯 뒤를 지키고, 주변에는 동백나무와 비자나무, 대나무,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여름에는 이들이 뿜어내는 실록이 장엄한 자연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가 하면 가을에는 입구를 비롯해 고택 곳곳에 심어진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융단처럼 쌓아놓는다. 자연에 둘러싸여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고택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자연을 벗 삼은 삶을 노래했던 고산의 풍류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에는 '녹우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녹우'는 늦봄에서 여름 사이에 풀과 나무가 푸를 때 내리는 비를 말하는데, 이때는 대지의 모든 생물들이 녹색으로 물드는 시기다. 푸르다는 것은 사대부의 지조나 절개를 의미한다. 고산이 그의 시조에서 노래한 소나무와 대나무의 상징이 그러하듯, '녹우당'은 사계절 푸른 이 고택의 모습과 사대부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담은 이름이다.

고산의 시(詩)와 더불어 '녹우당'에서 만날 수 있는 멋은 공재 윤두서 선생(1668~1715)의 그림(畵)이다. 고산의 증손자인 공재는 조선 후기에 문인화가로 활동하며 풍속화와 진경산수화를 최초로 선보인 인물이다. 특히 그의 자화상은 서양화법을 도입한 사실주의 작품 중 최고로 평가받으며 국보로 지정돼 있는데 '녹우당'에서 만나볼 수 있다.

미황사 전경(왼쪽), 미황사 자하루미술관 전면에 장식된 조병연 작가의 작품(오른쪽) /사진=이경은 기자.
미황사 전경(왼쪽), 미황사 자하루미술관 전면에 장식된 조병연 작가의 작품(오른쪽) /사진=이경은 기자.

달마산을 병풍삼은 아름다운 절 '미황사'

장대한 달마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미황사에 이르면 탄성이 절로 난다. 남도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리는 달마산의 빼어난 산세가 절의 운치를 더해준다. 미황사의 자하루 미술관에는 연중 미황사의 아름다움에 취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천 개의 돌에 각기 다른 모습의 부처를 표현한 조병연 작가의 작품이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 화선지와 한지에 먹으로 그려낸 수묵화,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려낸 유화 등 전통예술과 현대미술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월봉서원/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월봉서원/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스물여섯 나이차 뛰어넘은 조선시대 사상로맨스…'월봉서원'서 재회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편지를 통한 아름다운 사상논쟁이 있었다.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은 13년 동안 12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단칠정에 관한 학문적 논쟁을 펼쳤다고 한다. 이들의 건강한 논쟁은 우리나라 성리학의 수준을 크게 끌어올리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무려 스물여섯이었다. 쉰여덟의 대학자였던 퇴계, 갓 과거에 급제한 서른 두 살의 신출내기 선비였던 고봉은 서로의 나이와 지위에 구애받지 않고 안부를 묻거나 정치와 처세, 집안일 이야기까지 주고받는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고 한다. 세대별, 이념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 으르렁 거리는 현재 세태를 뒤로 하고 두 선비의 사상로맨스와 재회할 수 있는 곳이 광주광역시 광산구 너브실 마을에 위치한 '월봉서원'이다.

자연에서 즐기는 詩와 畵…가을엔 남도로 떠나볼까

너브실 마을에 들어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이안당(怡安堂)'이다. '즐겁고 편안한 집'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ㄱ'자 형태의 고풍스러운 한옥이다. 지난해 7월부터 월봉서원 지역전통관광자원화사업과 연계해 전통문화카페인 다시(茶時)카페를 운영해 오고 있다고 한다. 선비문화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인 차(茶) 문화를 몸소 체험해 볼 수 있다. 잠시 멈춰서야 할 때, 일상의 회복이 필요할 때, 이곳의 아늑한 정원을 찾아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가 마음에 안식을 줄 것이다. 너브실 마을에서 기른 식재료들을 맛볼 수 있는 남도 밥상 차림은 '멋'에 '맛'까지 더해주는 꿀맛이다.

이안당에서 나와 돌담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고봉을 모신 사당의 '정안문'과 만난다. '정안문'은 '조용하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서원의 뒤편을 둘러싼 백우산을 따라 오르면 고봉의 묘소가 자리해 있다. '철학자의 길'이라 이름 붙은, 녹음이 우거진 산책로를 걷다보면 자연의 이치와 어긋나지 않으며 늘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했던 선비들의 정신을 생각해보게 된다.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7년 10월 19일 (08:31)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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