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리고 뚫려도 우리 회사 화이트해커는 0명?

"핸드폰만 주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인터넷엔 거의 모든 개인정보가 노출돼 있어요. 어디 살고, 재산은 얼마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먹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나절 만에 알아내는 게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한 현직 해커의 말이다. 금융기관과 인터넷쇼핑몰, 게임업체, 포털 등 기업이 수집한 개인정보가 여러 차례 유출되면서 개인의 신상정보는 마치 모두가 접근·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나 마찬가지가 됐다.


KB국민·롯데·NH농협카드 고객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개인정보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정보보호를 '부수적인 서비스'나 '비용부담'으로 인식해 투자에 인색한 현실에서 유사 사건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보호전문가들은 기업의 정보보호에 대한 안이한 인식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보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2012년 국내 정보보안산업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정보보안제품과 서비스의 주된 수요처는 금융(29.8%), 공공(24.1%), 서비스(23.8%), 제조(22.3%) 업종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금융업종만 들여다봐도 실제 기업들이 정보보호 영역에 대한 투자에 얼마나 인색한지를 가늠할 수 있다. 고객정보가 대량 유출된 KB국민카드의 경우 '정보보호부'를 별도로 두고 1994만 여명의 고객정보를 관리하는 데 15~20명의 정보보호 인력만을 확보하고 있다.


2010년 기준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5개 카드사 정보보호 예산은 총 13억2700만 원 정도다. 이번에 개인정보 대량유출 사고가 발생한 KB국민·롯데·NH농협카드 3사의 정보보호 부문 예산도 지난해 대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이 금융위원회로부터 제출 받은 '금융회사별 IT보안 예산현황' 자료에 따르면 회사별 IT부문 예산 중 정보보호 예산 비율이 BC카드는 2012년 12.68%에서 지난해 7.30%로 줄었다. KB국민카드도 11.35%에서 8.12%로, 롯데카드도 8.50%에서 7.48%로 예산 비율이 급감했다.

오희국 정보보호학회 회장(한양대 교수)은 "이제 은행거래의 90% 이상은 고객과 대면하지 않고 하는 서비스인데 정보기술(IT)에 대한 투자와 보완은 걸음마 수준"이라며 "사고가 나면 담당자를 해고하고 마는 게 아니라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권뿐만 아니라 중소 일반제조 및 서비스기업으로 갈수록 상태는 심각하다. IT(정보기술) 보안관제 서비스를 대행하는 A업체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은 특히 비용부담 때문에 정보보호 전문가를 직접 두지 않고 대행하는 경우가 비일지배하다"고 전했다. 사실상 고객정보 보호가 필요함에도 비용부담 때문에 관련 서비스를 대행하거나 직접 관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 중소업체 정보보호전문가도 "중소기업의 경우 분야를 막론하고 자체적으로 정보보호전문가를 두는 경우가 거의 전무하다고 보면 된다"며 "고객정보가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 필요성이 있다 하더라도 인건비 등 여러 가지 한계 때문에 직접 관련 전문가는 고용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정보보호전문가를 꿈꾸는 청년층을 위한 인재양성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최선우 IT뱅크 정보보안전문가 컨설턴트는 "정보보안전문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많지만 이론과 실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 많지 않다"며 "정보보호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관이 많지 않다"고 전했다.

오 회장은 "결국 정보보호에 대한 투자는 의사결정권자의 투자가 중요하다"며 "정보보호를 강화하는 게 당장 기업의 단기 실적에는 기여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인력 양성과 시스템 마련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