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인사에서 대통령이 된 그의 저력이 美 대통령을 눌렀다

머니투데이

공영희 부장

가을이 깊어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하늘은 높고 푸르다. 하늘을 보며 시린 마음을 달래라고 그러는지, 일상에 식상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라고 하늘이 은총을 내리시는지도 모른다.

깊은 가을과 같이 온 낙엽의 색깔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발에 밟히기가 아까울 정도다. 발에 밟히기는커녕 바람이 불어 낙엽이 날리면 마치 가을꽃이 돼 아스팔트길을 수놓는다.

러시아에서도 가을이 되면 플라타너스의 커다란 잎이 낙엽이 되어 거리에 장관을 이룬다. 특히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의 교정은 낙엽이 많이 쌓여 이불솜을 밟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다. 아무리 감정이 무딘 사람이라 해도 모스크바 대학 넓은 교정에 깔린 낙엽들을 보면 사람이 설렐 정도일 것이다. 나무들은 옷을 벗어가고 벗어버린 옷은 추하지 않게 세월의 흐름과 자연의 섭리를 알게 해준다.

지난 주 미국 경제 잡지<포브스>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을 뽑았다고 발표되었다. 그것도 2년 연속이었고 미국 대통령을 제치고 1위에 뽑혔다는 뉴스를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세상이 이렇구나, 이런 거구나 하며 긍정도 부장도 할 수 없었다. <포브스>가 푸틴을 선정한 이유가 "아무도 푸틴을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아무도 악하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했단다.

필자는 사실 러시아에 살 동안 상당 기간 푸틴이 집권했기에 아주 익숙한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모스크바 출신이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었고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그의 출신지가 엄청 부상되었다. 그리고 그의 각료들을 대거 몰고 와 모스크바 출신들에게 연일 비아냥을 샀다. 그래도 그는 끄덕 않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아주 열렬히 사랑하며 정부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름도 없었던 무명 인사가 '보리스 엘친' 북극곰의 총리를 시작으로 러시아 대통령이 되자 러시아 사람들은 놀라면서 그의 신상에 대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온 말은 옛 소련 시절 모든 사람을 공포에 떨게 헸던 KGB 요원이었다는 것이었고 그 사실은 오랫동안 회자됐다.

그가 대통령직에 선출되자 러시아는 생기를 찾은 것처럼 움직였다. 그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횟수가 많아졌는데 필자가 특이하게 봤던 것은 의자에 점잖게 앉은 모습(일반인이 생각할 때 한 나라 원수들의 모습)이 아니라 항상 책상에 팔을 얹고 상체를 앞으로 약간 내밀면서 도전적인 모습과 팽팽한 눈으로 인터뷰를 했고 상당히 직설적이고 신념에 찬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국내외 굵직한 사건들이 터지면 지체 없이 처리하고 러시아를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이 보여지는 인물이었다.

과거 KGB 출신답게 자국을 위해 일하는 속도와 추진력이 대단했다. 그리고 자신의 대통령 임기가 끝나자 선뜻 자신이 데리고 있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직에 올려놓았다. 그 때부터 푸틴이 다음 대통령을 준비한다는 말이 있었고 그 말은 사실로 적중했다. 메드베데프가 존재감 없이 미온적인 모습이었다면 푸틴은 강력한 러시아를 외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필자가 잊을 수 없는 사건은 2010년 한국에서 열렸던 G20 정상 회담 때 한국을 찾았던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이 한·러 정상회담을 청와대에서 가졌을 때 필자의 두 딸(바이올리니스트-송원진, 피아니스트-송세진)이 양국 대통령 앞에서 차이콥스키의 음악으로 연주를 했었기 때문이다.

회담이 끝나고 양국 정상이 연주장에 도착했을 때는 얼굴들이 긴장되어 있었는데 필자의 딸들이 유창한 러시아어로 러시아식인사를 하고 말문을 트자 러시아 대통령은 금새 얼굴이 밝아지며 긴장을 푸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연주가 끝나자 곧 바로 다가와 반갑게 악수를 청하며 훌륭한 러시아어와 연주를 칭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메드베데프가 대통령 임기를 끝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러시아에서도 부정선거라고 말들이 많았지만 언제든지 세상사는 온갖 말과 설들이 난무하고 개인이나 국가나 다같이 적과의 동침은 필수로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많은 러시아인들은 푸틴을 자신들의 강력한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석유와 에너지회사를 국영화시켜 경제대국으로 발전시키고 서방세계에 러시아의 힘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는데 반해 부자들에게는 적이 많다. 그는 또 유도 5단의 무술자에 독실한 정교회 신자이기도 하다. 해마다 연말이면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는데 푸틴과 대주교는 자리를 같이 해 의식이 끝날 때까지 몇 시간을 같이 있는 걸 보고 놀라기도 했다.

얼마 전 크림사태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는 그는 상당히 지혜롭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필자가 크게 웃었던 일은 올 해 초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전에서 오륜기 중 미주 대륙의 상징이 켜지지 않았던 사건이다.

하필이면! 사람들은 모두 실수라고 비하했지만 필자는 '아하, 푸틴은 그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테크닉적으로 실수할 나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계속되는 예술적인 진행은 모든 음악을 러시아 최고의 클래식 음악으로만 사용해 러시아의 품격있는 위대함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푸틴은 이 실수를 보고 어떻게 생각했으며 책임자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그의 러시아 사랑이 자신들만을 위한 이기심보다는 세계의 평화를 위해 더 좋게 더 많이 사용되어 진다면 진정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의 영향력 있는 1인자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