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는 도로명 주소...서울시민 80% "집 주소 몰라요"

(서울=뉴스1) 이준규 기자, 배상은 정윤경 인턴기자 =

서울시내 곳곳에 설치된 도로명 주소 표지판들. News1

100년 동안 사용해왔던 지번 주소를 대체하기 위해 지난 7월 정식 도입한 '도로명 주소'.


정부는 2012년 1월1일부터 고지서와 장부 등 공적영역에서 도로명 주소를 전면적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시행 한달을 앞둔 상황에서 시민 10명 중 8명이 자기집 주소를 모르는 등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바뀐 자기 주소 아는 시민 13.6% 불과

뉴스1은 최근 종로과 강남 지역에서 시민 66명을 직접 만나 도로명 주소에 대한 설문을 실시했다.


이들 시민 중 도로명 주소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62명(94%)이다. 그러나 이들 중 "우리집 주소를 알고 있다"고 답변한 사람은 9명(13.6%)이다. 특히 50대 이상은 13명 중 1명(0.08%)에 불과했다.

SNS를 통한 조사 결과도 바슷하다.

대학생인 장봉근(23)씨가 지난 4일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5일 현재응답자 26만6460명 중 3만3853명(12.7%)만이'바뀐 주소제도를 알고 있으며 집 주소도 안다'고 답했다. 바뀐주소제도에 대해 알고 있지만 자신의 주소를 모르는 사람은 21만758명(79.1%),주소제도가 바뀌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2만1849명(8.2%)으로 나타났다.

◇도로명 주소제도에 대한 '부정적' 입장도 50% 넘어

도로명 주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시민도 50%가 넘어 정확한 정보의 제공과 홍보가 시급한 실정이다.

66명의 응답자 중 34명(61.5%)이 도로명 주소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고, 10명(15.1%)이 '모르겠다'고 답변해 10중 8명 가까운 시민들이 긍적적이지 못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응답자들은 도로명주소에 대해 정확한 지식과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모(31·서울시 송파구)씨는 "정말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나중에 경제가 좀 나아지면 하지 왜 하필 힘들 때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조모(26·서울시 강남구)씨는 "새 주소를 알아야 될 필요성을 못느낀다. 왜 바꾼건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안암동에 사는 이모(22)씨는 "새 주소를 만들어서 주민들의 편의를 도모하기보다 '이런 것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느낌"라고 말했고,엄모(30)씨는 "서울시에서 홍보하고 있는 사업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새 주소에 대한 것은 보지 못했다"며 "시민이 자기 집 주소를 알기 어려워서야 되겠느냐"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특히 50대 이상의 응답자는 도로명 주소제에 대해 한결같이 "헷갈리고 복잡하다"며 불편함을 토로했다.

◇도로명 주소에 대한 홍보 강화 절실

도로명 주소에 대한 정부의 홍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응답자도 있었다.

구로동에 사는 장모(33)씨는 "주소가 바뀌는 것 자체는 크게 신경쓰이지 않는데 왜 바꿔야 하는지 이유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주소가 왜 바뀌는지에 대한 설명도 충분치 않다"고 비판했다.김모(26)씨와신모(26·서울시 강남구)씨도 "왜 바꾸는 지 이유를 모르겠다""장점을 확실히 설명해주었으면 좋겠다"고말하는 등 정부의 설명과 홍보를 접하지 못한 응답자가 많았다.

이때문에 본격적인 제도 시행을 앞두고 보다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도로명 주소제도에 대한 홍보 비용이 부족해 보이지는 않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에 따르면 정부가 새 주소를 알리기 위해 사용한 홍보비는 2009년 29억3000여만원에서 2010, 2011년에는 100여억원으로 증가했다.

행안부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개그맨 신동엽씨를 홍보대사로 위촉해 지상파 방송광고, 지하철역과 같은 공공장소에 포스터 부착 등 1년여 간 홍보를 해왔다.

그럼에도 행안부가 발표한 새 주소에 대한 만족도는 2009년 68.9%에서 2010년 46.3%로 22.8% 하락했다.

안모(30)씨는 "홍보는 많이 하지만 실질적으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택배기사들도 바뀐 주소를 말하면 모른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기영 행안부 주소정책과장은 "방송,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한 홍보 성과가 떨어져 내년에도 사업비가 소폭으로 감소할 예정"이라며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홍보를 강구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밝혔다.

정부가 새 주소에 대한 기존 방식의 홍보에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김 과장은 "홍보예산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에게 새 주소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야 한다"며 "내년부터는 공공요금과 금융사, 통신회사 등에서 발송하는 각종 고지서에 새 주소를 표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주민들이 병용기간 동안 각종 생활영역에서 필요한 공적장부들을 눈으로 직접 보다 보면 점차 새 주소에 익숙해 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종원 YMCA 시민사회개발부 부장은 "'주소'라는 것은 기술적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 삶의 일부"라며 "행정적으로 단기간의 목표를 세워놓고서 그에 맞춰 일시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의 삶 속에 새로운 주소가 스며들기에 병용기간 2년은 부족한 시간"이라며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주소의 성격상 완전히 자리 잡는데 한 세대가 걸릴지도 모를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정부에서 시민참여 없이 일방적인 홍보를 한 것이 시민들에게 주소 변경이 깊이 와닿지 않은 이유 중 하나"라며 "지금이라도 시민들의 동참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