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실패)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기업들

/ 그림=김현정 디자이너

“실패한 혁신(failed innovation)보다 더 큰 잘못은 놓친 혁신(missed innovation)이다.”

USC대학의 제라드 텔리스(Gerard Tellis) 경영학 교수는 기업이 혁신의 위험을 고려할 때 일반적으로 ‘실패(Failure)’라는 결과만 떠올릴 뿐, ‘놓친 혁신(missed innovation)’이라는 더 큰 잘못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놓친 혁신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 출처=Unrelenting Innovation (2013), 제라드 텔리스 지음

그는 혁신과 관련해 ‘성공’(sucess)과 ‘잘못’(error)이 각각 2개씩 존재한다고 말한다. 성공적인 런치(successful launch)와 성공적인 스크린(successful screen), 그리고 실패한 혁신(failed innovation)과 놓친 혁신(missed innovation)이 각각 그것이다.(옆 그림 참조)

혁신과 관련한 ‘성공’엔 투자한 혁신 제품(기술)이 시장에서 대박난 ‘성공적인 런치’와 투자했더라면 시장에서 크게 실패했을 텐데 사전에 잘 걸러서 투자하지 않은 ‘성공적인 스크린’이 있다.

반대로 ‘잘못’은 신제품(기술)을 개발했지만 시장에서 인기를 끌지 못해 결국 버려진 ‘실패한 혁신’과 투자했더라면 대박을 낼 수 있었을 텐데 미리 포기한 ‘놓친 혁신’이 있다. 텔리스 교수는 실패한 혁신을 Type I 잘못으로, 놓친 혁신을 Type II 잘못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경영자는 2가지의 잘못 가운데 겉으로 드러나는 Type I 잘못에만 신경을 쓸 뿐, 정작 더 큰 잘못인 Type II 잘못엔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Type II 잘못은 당장 손실로 반영되지 않는 기회손실이기 때문이다.

Type I 잘못은 그동안 쏟아 부은 투자액 전부가 재무제표상에 당장 손실로 보고되고 또 창피나 명예 실추 같은 명성에 금이 가는 일이 뒤따른다. 반면 Type II 잘못에 따른 기회손실은 미래에 결정되는 데다 당장 회계장부에 반영되지도 않고, 명예 실추와 같은 창피를 당하는 일도 없다. 더군다나 누구의 책임인지 따지기도 어렵다.

따라서 경영자는 자연스럽게 Type II 잘못 보다는 바로 겉으로 드러나는 Type I 잘못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다 보면 신제품(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에 더 까다로워지고 결과적으로 실패는 줄어든다. 그러나 혁신 투자를 줄이면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 많은 신제품(기술)을 미리 포기하게 되어 Type II 잘못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텔리스 교수는 기업이 Type I 잘못(=실패)을 줄이려다 몇 배나 큰 Type II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고 경고한다. 즉, 벼룩(=실패)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Type II 잘못의 기회손실을 혁신을 포기한 뒤 줄어든 기업가치와 혁신을 성공시킨 경쟁사의 늘어난 기업가치의 합계로 측정했다.

예를 들어, 최근까지 글로벌 모바일폰의 리더였던 노키아(Nokia)는 Type II 잘못으로 2007년~2012년 사이 기업가치가 87%나 감소하며 약 950억달러(약 110조원)가 줄어들었다. 노키아의 ‘놓친 혁신’의 기회손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키아가 터치스크린(touch screen) 혁신 기술을 포기한 사이 애플은 아이폰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기업가치를 무려 1천950억달러(약 210조원)나 끌어 올렸다.

2000년대 중반까지 스마트폰의 리더였던 블랙베리(BlackBerry)도 터치스크린 혁신을 거부하면서 노키아와 비슷한 규모의 Type II 잘못에 따른 기회손실을 입었다.

한때 글로벌 인터넷 검색시장에서 리더였던 야후(Yahoo!)도 페이지랭크 검색(pagerank search)이라는 혁신에 주춤하는 사이 구글(Google)에게 인터넷 검색시장의 1위 자리를 내주었고, 결국 야후의 기업가치는 2005년~2012년 동안 270억 달러(약 30조원)가 줄었다. 반면 구글은 이 기간동안 약 980억달러(약 120조원)나 기업가치가 올라갔다.

한때 글로벌 가전업계의 리더였던 소니도 LCD TV의 혁신을 포기하면서 1996년~2006년 사이 기업가치가 60억 달러(약 7조원) 줄었다. 반면 삼성전자는 LCD TV 혁명에 성공하면서 기업가치가 무려 1천440억달러(약 160조원)이나 증가했다.(여기서 삼성전자의 기업가치 증가는 단지 LCD TV의 혁신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애플과 구글의 기업가치 증가도 마찬가지다.)

노키아나 블랙베리, 소니의 경영자는 Type II 잘못의 기회손실이 이렇게 클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Type I 잘못(=실패)을 줄이려다 모두 초가삼간을 태우고 만 것이다.

슬픈 일은 기업이 혁신을 한번 놓치면 두 번 다시 재기가 불가능한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점이다. 노키아는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됐고, 블랙베리는 CEO가 교체되면서 매각설이 끊이질 않고 있다. Type II 잘못은 기업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할 만큼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