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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진의 증권반세기] 끝날 줄 모르는 탐욕에 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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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0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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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 나의 인생] (6) 제2파동과 첫 시련

[편집자주] 강성진(姜聲振) 전 증권업협회장은 우리나라 증권업계의 원로이자 한국 자본시장의 살아 있는 역사다. 1950년대 증권업계에 입문해 각종 파동을 현장 한가운데서 지켜봤고 60년대에는 삼보증권을 인수해 국내 1위 증권회사로 키워냈다. 강 회장은 90년에는 협회장으로 선출돼 증시안정기금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1998년부터 10년간 증우회장을 맡기도 했다. 강 회장은 20회에 걸쳐 연재할 '증권 반세기' 회고록을 통해 그동안 몸소 겪은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격동과 성장과정을 되돌아볼 예정이다.
1962년 6월10일을 기해 10환을 1원으로 하는 통화개혁 조치가 발표되자 새로운 화폐로 환전하기 위해 은행 앞에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시민들. /사진 제공〓금융투자협회
1962년 6월10일을 기해 10환을 1원으로 하는 통화개혁 조치가 발표되자 새로운 화폐로 환전하기 위해 은행 앞에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시민들. /사진 제공〓금융투자협회
파동이란 신용이 깨졌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신용은 한번 무너지면 회복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5월 증권 파동도 마찬가지였다. 미봉책으로 겨우 사태를 수습했지만 그 후유증은 오래 이어졌다.

강제 해옥에 통화개혁까지 겹쳐 31일간 장기 휴장
나도 모르게 영화증권 사장 발탁…5개월만에 사표


증권시장이 결제 불이행 위험에 빠지자 거래소에서는 재무부장관에게 긴급 결제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금융통화위원회가 논란 끝에 280억환을 지원하기로 결정함으로써 거래소는 가까스로 수습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사실 5월 수도 결제분에 대해서는 기상천외한 결제 방법이 사용됐는데, 매수 측으로 하여금 매수대금의 일부는 현금으로 결제하고 부족분은 현금 대신 이미 매수한 주식을 매도 측에 되넘겨 주도록 한 것이다. 이런 식의 궁색한 방법을 쓰다 보니 5월 말의 수도 결제가 6월4일에 가서야 겨우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392억환에 달하는 6월 수도 결제는 불가피하게 강제 해옥(解玉)으로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거래소에서 장부상 매매가격의 3분의2선에서 일방적으로 가격(解玉線)을 정해 청산토록 한 것인데, 이 과정에서 매수 측의 현금 부족분을 거래소가 주식으로 인수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5월 파동은 겨우 봉합되었지만 증권시장의 공신력은 땅에 떨어졌고, 거래소는 엄청난 부채와 함께 막대한 양의 자기주식을 떠안게 됐는데, 이게 바로 제2파동의 불씨가 된다.

이런 와중에 1962년 6월10일 건국 이래 세 번째의 통화개혁 조치가 단행됐다. 10환을 1원으로 하는 긴급 통화조치에 따라 증권시장은 6월11일부터 휴장에 들어갔고 31일간의 휴장 끝에 7월13일에야 다시 문을 열었다. 또 6월부터 8월 사이 24개 증권회사가 무더기로 영업인가를 받아 새로 문을 열었는데, 이로써 명동에는 60개가 넘는 증권회사가 난립하기에 이르렀다.

윤응상씨도 이때 전면에 나서 영화증권과 홍익증권, 범일증권을 잇따라 설립하고 삼신증권도 인수했다. 6월8일에는 재무부에 증권과가 신설돼 주윤호씨가 초대 과장이 됐고, 그 무렵 나는 윤응상씨가 설립한 영화증권의 사장으로 발탁돼 있었다.

내가 이런 표현을 쓴 것은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윤씨가 일방적으로 나를 영화증권 사장으로 발령해 놓고 사후교섭을 해왔기 때문이다. 엄연히 동명증권 전무로 일하고 있는 사람을 영화증권 사장으로 발령해 놓았으니 입장이 난처했다. 그러던 차에 윤씨가 동명증권 사주인 최준문 동아건설 사장을 찾아와 인사를 했다. 그 자리에 나도 참석해 3자 대면이 이뤄졌는데, 윤씨는 오랫동안 동명증권을 통해 주문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의 능력을 높이 사 영입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실은 그때쯤 최 사장도 증권회사 경영의 전면에 나서려던 참이어서 나를 억지로 붙잡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회사를 옮기게 된 것인데, 다섯 달 만에 끝난 영화증권 사장 시절은 내가 처음으로 겪은 시련기였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후회되는 일을 몇 차례 저지르게 된다. 방심해서 그런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조심하고 경계했는데도 실수를 저지르면 두고두고 자책과 상심이 크게 마련이다. 내 인생에도 이렇게 후회되는 일이 두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영화증권 사장으로 간 것이다.

5월 증권 파동을 계기로 일반 국민들이 증권 투자에 눈을 뜨면서 증권회사를 찾는 발길이 오히려 늘었다./사진제공=금융투자협회
5월 증권 파동을 계기로 일반 국민들이 증권 투자에 눈을 뜨면서 증권회사를 찾는 발길이 오히려 늘었다./사진제공=금융투자협회
그 무렵 증권시장의 가장 큰 숙제는 거래소가 보유한 자기주식 처분 문제였다. 앞서 얘기했듯이 거래소에서는 5월 파동 때 수도 결제를 불이행한 매수 측 증권회사들이 매수 대금을 납부하는 대신 내놓은 대증주(大證株) 7억5000만주를 갖고 있었다. 증권금융 역시 매수 측 증권회사들이 담보로 맡겨놓았던 막대한 물량의 대증주와 증금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거래소와 증권금융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이들 주식을 처분해야 했다. 당시 자기주식은 법적으로도 보유가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거래소와 증권금융이 본연의 기능을 하려면 무엇보다 현금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거래소 이사장은 5월 파동으로 물러난 서재식씨의 후임으로 재무부 이재국장 출신인 박동섭 전무가 직무대행을 맡고 있었고, 증권금융 사장은 하상용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박 이사장은 고향이 충남 조치원으로 그 전부터 나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 비밀리에 만났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한밤중에 신당동에 있는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박 이사장의 말은 거래소가 지금처럼 엄청난 자기주식을 보유하고 있어서는 시장을 정상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거래소가 보유한 대증주의 매각을 영화증권에서 위탁받아 처리해주었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비슷한 시기에 증권금융의 하 사장으로부터도 연락이 와 만났더니 똑같은 얘기를 했다.

거래소·증권금융, 비밀리에 자기주식 매도 부탁
주가 올려 자금 챙기는 세력 다시 활개쳐
시장 정상화 노력 물거품… 반년 만에 또 위기가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증권시장을 정상화시키는 방법은 거래소와 증권금융이 보유한 자기주식을 처분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막대한 수량이 문제였다. 이 정도 물량을 소화하려면 시장의 매수 여력이 상당히 뒷받침돼야 하는 데다 아무리 비밀리에 판다 손치더라도 끝까지 보안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었다. 나는 우선 거래소와 증권금융의 주문을 받아 대증주와 증금주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생각 밖으로 잘 팔려나가는 것이었다. 당연히 환영할 일이었지만 내막을 알고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윤씨 계열의 증권회사는 당시 영화증권과 홍익증권, 범일증권, 일흥증권, 대양증권 등이 있었는데, 영화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증권회사들이 일제히 대증주와 증금주 매수에 나섰던 것이다. 이들이 윤씨의 지휘 아래 대대적인 매수에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는 청산거래여서 매수한 다음 주가가 오르면 매수가격과 시세의 차액을 매도 측이 내고, 반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매수 측이 차액을 내게 돼 있었다. 그러니까 이들은 주가를 추켜올려 차금(差金)을 챙기려 했던 것이다. 아무튼 같은 윤씨 계열 증권회사였지만 영화증권에서는 계속해서 대증주와 증금주를 내다팔았다.

통화개혁 조치로 증권시장이 31일간 휴장한 끝에 다시 개장한 7월13일 서울 명동 증권거래소 주변 모습./사진제공=금융투자협회
통화개혁 조치로 증권시장이 31일간 휴장한 끝에 다시 개장한 7월13일 서울 명동 증권거래소 주변 모습./사진제공=금융투자협회
나는 홍익증권의 승상배 사장과 범일증권의 최진수 사장 등에게 자제를 촉구했다. 시장 정상화가 급한 마당에 차금 챙기기는 순리에 역행하는 행동이었다. 이들은 그러나 내가 차금 공세에 몰려 자금 압박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음인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수도 결제가 불가능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같은 계열사 사이에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미 내친걸음이었다. 윤씨 측에서는 증권회사들끼리 돌아가며 막대한 물량을 사들였고, 이들의 작전에 힘입어 주가는 계속 올라갔다. 하지만 이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매수하는 데는 엄청난 돈이 필요했다. 이들이 주가를 올려가며 벌어들인 차금마저 다 쏟아부어 이들의 수중에는 돈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이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한창 기세를 올리던 주가는 끝내 견디지를 못하고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어제까지 차금을 무기로 공세를 벌인 매수 측은 수세에 몰리자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마침내 11월 하순 무렵 윤씨로부터 은근히 제안이 왔다. 매수 측 건옥(建玉), 그러니까 매수는 했으나 아직 결제하지 않은 주식을 영화증권 쪽으로 옮겨놓고 이를 우리 측 건옥과 차감해서 지워보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그러면 영화증권은 파탄 나고 지금까지 시장 정상화를 위해 기울인 노력도 모두 물거품이 될 터였다. 나는 영화증권의 김영열 시장대리인을 불러 강력히 지시했다.

"틀림없이 매수 측 증권회사에서 자신들의 건옥을 영화증권에다 옮겨놓고 차감하려고 할 걸세. 그러면 영화는 물론 시장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지 모르니 절대로 도장을 찍어주어서는 안 되네." 나는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김 시장대리인에게 도장을 갖고 잠시 몸을 피하도록 했다. 입회장에 있다가는 도저히 견디기 힘들 것 같아서였다. 김 시장대리인은 그 길로 피신했지만 윤씨 쪽에서는 끝내 그를 찾아내 자기네들 뜻대로 도장을 찍었다.

나는 그 즉시 사표를 내고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버렸다. 목전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운 추악한 사람들, 시장 정상화라는 대의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혼란을 야기하는 사람들과는 같이 일할 수 없었다. 나는 영화증권을 떠나면서 일주일 안에 또 다시 큰 파동이 올 것이라고 선언했다. 불행하게도 내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매수 측 증권회사들이 수도 결제를 불이행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7회는 '삼보증권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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