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장애아동들의 '특급연주'에 쏟아진 감동물결

장애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인 'Hello! SEM 오케스트라'의 단원 송준호군(발달장애 1급)이 17일 저녁 경기 수원 인계동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열리는 첫 정기연주회를 앞두고 대기실에서 연습하는 모습. /사진 제공=삼성전기

"첼로를 연주하면 기분이 좋아요. (무대에 올라)박수도 받으니 더 좋아요. 하나도 안 힘들어요"

지난 17일 밤 경기 수원 인계동 경기도 문화의 전당 아늑한 소극장에서 만난 발달장애 1급 송준호군(14)의 표정에는 생기가 넘쳤다. 그 동안 갈고닦은 첼로 실력을 관객 500여 명 앞에서 선보여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은 덕분이다.


◇"9개월만에 아이 인생이 달라졌어요"
불과 9개월 전까지만 해도 악기를 다뤄본 적 없던 송 군의 일상은 지난해 10월 삼성전기 (146,200원 ▲1,700 +1.18%)가 에이블아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만든 국내 최초 장애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인 'Hello! SEM 오케스트라'에 참여하면서 180도 바뀌었다.

그는 지난 9개월간 일주일에 2번씩 개인레슨과 앙상블연습을 하고 집에서도 하루 30~40분씩 자발적으로 첼로를 켰다. 처음에는 산만하고 집중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금은 성장속도가 빠른 단원으로 첫 손에 꼽힐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송 군의 어머니인 우윤정씨(43)는 "오케스트라를 계기로 아이의 인생이 달라졌다"며 "음악에 재능이 있어 보여서 일반 피아노학원에 보내려다 퇴짜 맞고 낙담하던 중 이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게 됐는데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우씨는 "아이가 자기 재능을 발견하고 연마하는 모습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송 군을 비롯 'Hello! SEM 오케스트라' 단원 35명이 이곳에서 첫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산만하고 집중력이 낮아 악기 연습은 커녕 5분 이상 앉아있지 못했던 아이들이 1년도 채 안 돼 유명 클래식 곡을 연주한 것. 단원 중 60%가 악기를 처음 시작한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라고 삼성전기 측은 설명했다.

◇장애아동 35명이 꾸민 감동무대
'Hello! SEM 오케스트라'는 초등 3학년부터 고등 2학년까지 지적·자폐성·지체·시각 장애아동·청소년으로 구성한 전문 오케스트라다. SEM은 특별하고(Special) 재능있는(Excellent) 음악인(Musician)이라는 의미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장애아동·청소년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재활 치료를 지원하기 위해 시작됐다.

이날 공연장은 500여 명의 관람객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자폐성장애 3급 현태현군(15)이 지도강사인 유재우씨와 함께 헤럴드 알렌의 '오버 더 레인보우'를 연주하며 공연의 화려한 막이 올랐다. 공연장에 울려 퍼지는 현 군의 힘찬 트럼펫 소리에 관객들의 감탄사가 이곳저곳에서 흘러 나왔다.

다음으로는 이 행사의 유일한 독주 무대를 발달장애 2급인 이준영군(16)이 선보였다. 이군은 '콘트라베이스 소나타 바장조 2악장'을 연주하며 묵직하면서도 깊이 있는 저음을 만들었다.

이 군은 'Hello! SEM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처음 접했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해 지도강사들의 주목을 받은 '스타 단원'. 그가 독주 무대를 꾸릴 정도로 성장했다는 설명에 박수가 쏟아졌다.

삼성전기가 후원하는 장애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인 'Hello! SEM 오케스트라'가 17일 저녁 경기 수원 인계동 경기도문화의전당 아늑한 소극장에서 첫 정기연주회를 열고 있다. /사진=정지은 기자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단원 35명이 모두 참여한 합동무대였다. 이들은 서진 지휘자의 지휘로 하이든의 '놀람교향곡'과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스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달아 연주했다. 웅장한 선율부터 경쾌하고 흥겨운 연주가 계속돼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중간에 실수가 몇 차례 있었지만 첫 무대가 주는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능숙한 연주 실력을 뽐냈다.

◇공연장 가득 메운 박수소리…격려 이어져
공연은 이들이 '사랑으로'를 연주하고 관객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약 1시간30분만에 마무리됐다. 관객들의 목소리가 아름다운 선율과 한 데 어우러져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는 한 동안 멈출 줄 몰랐다. 일부 학부모들은 관객석에 앉아 두 손을 꼭 모은 채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비올리스트를 꿈꾸는 발달장애 1급 송태영군(17)은 "(무대에 오르니)기분이 좋고 신이 났다"고 수줍게 말했다. 그는 작은 목소리지만 분명하게 "다음에 또 하고 싶다"고 귀띔했다.

송 군의 모친은 "태영이가 무대에 오른 모습을 보니 설레고 뿌듯하다"며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며 사회성을 기르는 모습마저도 감동"이라고 말했다.

지적장애 2급 김원중군(13)의 모친은 "처음에는 아이들이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이런 성과를 내서 감동했다"며 "단원들이 오케스트라를 통해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정기연주회는 내년에도 열릴 예정이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매년 정기연주회를 열어 'Hello! SEM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성장 과정을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삼성전기는 '전자제품의 뼈대인 전자부품을 제조한다'는 업의 개념을 살려 장애인 지원을 대표 사회공헌활동으로 삼고 있다. 삼성전기는 오케스트라 후원 및 사업 운영 지원, 에이블아트는 음악 교육, 어린이재단은 사업 운영을 각각 맡고 있다. 단원들은 교육비와 악기 등 모든 비용을 지원받으며 음악교육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