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진의 증권반세기] 공채로 인재선발..혁신적 기업문화

1970년대 중반 한 신문사에서 주최한 ‘증권시장에 관한 좌담회’에 백경복 당시 증권업협회장(왼쪽 끝)과 함께 참석한 필자(왼쪽에서 세 번째).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먼저 한다"=증권인으로서 사명감 유난히 강했던 삼보 DNA
8.3 조치가 단행된 1972년은 삼보증권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한 해였다. 사실 7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 증권산업은 품위를 따지는 엘리트 금융 세계에서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규모나 대우 면에서 은행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고 경쟁도 심했으며 일반인들의 인식도 좋지 않았다.

50년대와 60년대 내내 크고 작은 증권 파동과 책동전이 시장을 어지럽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증권회사 입장에서도 발행시장이 거의 전무한 실정에서 얼마 되지 않는 거래수수료가 수입의 전부인 상황이다 보니 특별히 화려하게 내세울 일도 없었고 겨우 현상유지만 하면 된다고 여겼다.
바로 이런 시점에 정부가 증권산업 육성에 발벗고 나선 것이었다. 증권업계는 새로운 시대를 맞았고 나는 정확히 그 신호를 읽었다. 이제 삼보증권의 경영 목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먼저 완전히 새로우면서도 혁명적인 기업문화를 만들고자 했다. 이것은 나중에 “다른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먼저 한다”는 삼보증권의 DNA로 발전했는데, 단순히 고객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아무도 제공하지 못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게 내 생각이었다.

고객들이 어렵게 벌어 지불한 돈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면 회사 수익은 필연적으로 늘어날 것이었다. 이를 위해 기존의 영업부 외에 조사부를 신설해 기업 리서치를 전담토록 했는데, 당시만 해도 이런 시도는 매우 독창적이었고 당연히 국내 최초의 사례였다.

내가 두 번째로 추진한 것은 대중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여 투자자로 만드는 일이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60년대를 지나오면서 내가 뼈저리게 느낀 것은, 얼마 되지도 않는 적은 거래량을 놓고 증권회사끼리 경쟁하면 결국 모두가 손실을 면키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적어도 삼보증권은 다른 증권회사의 고객을 빼앗는 게 아니라 신규 고객을 발굴해 유치하고자 했다.


나는 이를 위해 전국적인 지점망을 구축하겠다는 대담한 구상을 실행에 옮겼는데, 당시 지방에서는 주식 투자를 하고 싶어도 거리가 멀어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명동까지 올 수 없어 투자를 하지 못하는 잠재적인 투자 인구에게 증권 계좌를 개설해주면 삼보증권의 고객은 자연히 늘어날 것이었다.

1기 공채 2명 선발에 우수 인력 수백명 몰려..파격적 급여 인상으로 평판·자질 동시에 끌어올려

정부의 적극적인 증시 육성 정책에 힘입어 마침내 증권시장을 통한 기업 자금 조달액이 연간 1000억원을 돌파하자 증권업계는 1975년 9월 25일 기념식을 열었다. /사진 제공=금융투자협회

60년대 말까지도 대다수 국민들은 주식 투자가 소수 투기꾼들의 전유물이며, 특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면 일반인은 손실을 보기 십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인식을 바꾸려면 주식시장의 기능과 역할을 정확히 알려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였는데, 먼저 증권회사 직원의 자질과 평판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증권업계 최초의 대졸 신입사원 공개 채용을 실시하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급여 인상을 단행한 것은 이런 구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른 증권사와 차별되는 삼보증권 직원의 정직성은 경제적 안정에서 먼저 출발할 것이었다.

아무튼 1972년 11월 4일 삼보증권 본사 사무실을 유네스코 회관 건물로 이전한 뒤 곧바로 대졸 신입사원 공개채용 공고를 일간신문에 냈다. 당시 증권회사로는 처음으로 실시한 인력 공채였는데, 당초에는 2명을 뽑을 계획이었다. 삼보증권이 아무리 증권업계 1위라고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인지도가 높지 않아 지원자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지원서를 받고 보니 상당히 우수한 인재들이 몰렸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서류 지원자가 수백 명을 넘었고, 1차로 추려낸 필기시험 응시자만 132명에 달했다. 나는 필기시험 합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최종 면접에 참석했는데, 응시자들이 매우 우수해 당초 계획의 두 배인 4명을 선발하게 됐다. 이렇게 뽑은 1기 공채사원은 전영상, 정준, 김진동, 강영원 군 등인데, 이들은 그 해 12월 9일자로 입사해 전원 기획조사부에 발령을 받았다.

여담이지만 그 이전까지 증권회사의 인력 채용은 대개 주위의 추천에 의해서 이뤄졌다. 특별한 선발 기준은 없었고 다만 말씨와 음성을 상당히 중시했다. 증권거래소에 나가면 특유의 손질과 육성으로 직접 거래를 해야 했기 때문에 사투리가 심하거나 발음이 부정확할 경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1기 신입사원 공채 면접에서 내가 유심히 살펴본 것은 성실성과 굳은 심지가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요즘은 젊은 직장인들이 예사로 회사를 옮기곤 하지만 그때는 좀 달랐다. 나는 한번 뜻을 갖고 삼보증권에 입사했다면 삼보와 함께 흥망성쇠를 함께 할 수 있는 인재가 들어오길 바랐다.
그리고 증권회사에 입사하면 매일같이 시세를 보고 주가 등락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런 환경에서도 한눈 팔지 않고 회사 일에 충실할 인재를 고르고자 했다. 당시 증권회사 직원들은 약정고 압박도 있고 해서 직접 주식 매매를 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여기에 너무 깊이 빨려 들어가면 사고가 생길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사장으로서 삼보증권 직원들에게 늘 당부했던 말이 있다. “증권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금전의 유혹을 받기가 쉬운데, 이게 바로 제일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엉뚱한 생각을 완전히 씻어내기 전에는 스스로 증권업계에 몸담을 자격이 없다고 봐야 한다. 기업 자금 조달의 일익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견뎌내기 힘든 일이다.”

증권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는데,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이런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또 한 가지 매주 월요일 조회 때마다 직원들에게 잔소리처럼 자주 했던 말은 “공부하는 삼보증권 사원이 되라”는 것이었다. 증권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단순히 시사금융 상식 정도만 알아서는 안 된다. 경제 분야는 종합적으로 다 꿰뚫고 있어야 하고 재정금융 쪽은 거의 전문가 수준이 돼야 한다.

그래서 삼보증권 1기 공채 사원은 전부일본에 직무 연수를 보냈는데, 이 역시 증권업계 최초의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증권회사 직원도 정식 채용 절차를 거쳐 입사하고, 사내 교육과 외부 연수 과정을 통해 전문가로 양성되는 교육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아가게 된 것이다.

◇삼보증권 역사에 획기적인 1972년..자본금 대폭 늘리고 조직 정비, 증권사 최초 회사채 인수

1978.10 증권단 체육대회. 삼보증권 고유의 독특한 문화는“다른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먼저 한다”는 것이었는데, 영업 실적뿐 아니라 증권단 체육대회에서도 늘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사진 제공=금융투자협회

이 무렵 신입사원 공채와는 별도로뛰어난 인재들이 여럿 삼보증권에 들어왔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비즈니스스쿨의 MBA 출신인 이철영 군, 국민은행과 상업은행에서 각각 일하다 삼보증권으로 옮겨온 명호근 군과 오세호 군이 대표적이다. 이 군은 나에게 직접 편지를 띄워 입사했는데아마도 국내 증권업계에 뛰어든 첫 MBA일 것이다. 또 명 군과 오 군처럼 은행원 출신이 증권회사로 옮기는 경우는 당시 아주 드문 케이스였다.

1기 신입사원 공채에 이어 다음해 5월과 8월에는 2기와 3기 신입사원 공채를 실시했는데, 이 즈음 일시에 직원 급여를 두 배 가까이 올렸다. 너무 파격적인 인상이 아니냐는 주위의 평도 있었지만 훌륭한 인재를 증권회사로 데려오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고, 실은 그래야 겨우 은행권과 급여 수준을 비슷하게 맞출 수 있었다.

아무튼 1972년은 삼보증권의 역사에 획기적인 한 해였다. 5월 18일에는 증권회사로는 처음으로 일반 회사채 공모를 주선해 남한제지의 1억5000만원 규모 회사채를 2년 만기 일시 상환 조건으로 인수했는데, 8.3 조치 이전이라 소화하는 데 다소 애를 먹기도 했다.

9월 14일에는 납입자본금을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증자했고, 11월 4일에는 본사를 유네스코 회관 건물로 확장 이전했다. 당시 직원들조차 사무실이 너무 넓은 게 아니냐며 반대했지만나는 밀고 나갔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나에게는 경영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증권시장은 반드시 크게 육성될 것이고 자본시장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낼 날도 멀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내가 다 구상하고 있으니 나를 믿고 따르라.” 사실 이로부터 한 해도 지나지 않아 삼보증권 임직원 숫자가 크게 늘어나고 새로운 업무 영역이 추가되면서 사무실을더넓혀야 할 상황을 맞게 됐다.

11월에는 기획조사부를 신설해 이원보 군에게 초대 부장을 맡겼는데, 기획조사부는 증권회사로는 처음 시도한 미래를 내다본 투자였다. 나는 이 부장에게 “앞으로는 발행시장에 힘을 쏟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당부하면서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발행시장을 집중 연구하도록 지시했다. 기획조사부는 곧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기획조정실과 조사부,인수공모부로 세분화됐는데, 조사부는 73년부터 본격화할 기업공개 주선 업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15회는 조사부 신설과 기업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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