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진의 증권반세기]증시 안정-선진화 함께 잡으려 노력

증권업협회장 재임 중 필자가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일은 해외에 한국 증권시장을 알리는 것이었다. 사진은 1991년 11월 2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국 주식시장 설명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증권시장 선진국 수준 도약만 생각..안정보다 1등주의에 역점
나는 삼보증권을 인수한 1964년부터 회사를 경영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 증권시장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인가만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에 너무 몰두해 경영 목표를 회사 이윤이 아닌 업계 선두 유지와 외형 확장에 둔 게 오히려 실수였던 것 같다. 안정적인 이익을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성장 위주의 ‘1등 주의’에 역점을 둘 것인가에서 나는 과감히 후자를 선택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너무 앞만 보고 지나치게 내달렸던 게 아닌가 싶다.

국제부를 신설한 것도 처음에는 손실이 나더라도 계속 하면 이익이 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산업은행이 발행한 산업금융채권도 국내 증권회사로는 처음으로 인수해서 판매했는데, 실은 인수 가액에서 디스카운트해서 팔지 않으면 안 될 때였다. 인수수수료를 받는다 해도 금액 자체가 얼마 되지 않아 손해가 불가피했다. 장기적으로 산업은행과 제휴하면서 해외 채권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구상이 있었고, 언젠가는 열매를 맺으리라는 비전을 갖고 밀어붙였던 것이지만 당장 실속은 없이 회사에 부담이 됐던 게 사실이다.


전국적인 지점망 구축도 그랬다. 주식시장 대중화라는 전략은 맞아 떨어졌지만 2차 오일 쇼크로 증권시장이 침체에 빠지자 79년부터 80년 사이 논산과 의정부, 수원, 천안 지점을 차례로 폐쇄해야 했다. 회사 경영의 기본은 내실을 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제대로 못하는 사이 창구 사고 같은 내부적인 문제까지 겹쳤고, 그 바람에 결국 합병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아무튼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맨 처음 나에게 제시했던 합병조건은 삼보증권이라는 회사 상호를 그대로 유지하고, 합병 후에도 내가 경영에 계속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직원들에게 "내가 떠나더라도 삼보증권 법인은 그대로 남으니 동요하지 말라"고 말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

물론 지나고 난 뒤에는 다 이해된다. 삼보증권과 합친 동양증권 직원들의 내부적인 반발도 예상됐을 것이고, 어쨌든 시재금 부족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최고경영자를 다시 기용하는 것도 감독 당국의 눈치를 봐야 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우증권이라는 이름으로 상호를 바꿔 삼보라는 이름을 지운 것은 납득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83년 12월 삼보증권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게 됐지만 내가 바란 것은 삼보증권 직원들이증권업계에 그대로 남아 내가 지향했던 경영목표를 끝까지 달성해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훗날 코스닥 증권시장으로 발전하게 될 주식장외거래중개실이 1991년 10월22일 협회 안에 개설됐다. 왼쪽 3번째가 필자.

인연 깊었던 증권업협회..초창기 시절부터 대외창구 역할 전담
실은 나 역시도 증권시장을 떠날 수는 없었다. 88년 증권업협회의 상임고문으로 들어가 90년 3월 30일 증권업협회장으로 선출된 것이다. 사실 증권업협회는 나와 무척 인연이 깊은 곳으로 상근 회장제를 처음 만든 것도 다름아닌 나였다. 그러니까 77년 이전까지 협회에는 상근 부회장만 있었고 비상임 회장은 회원사 사장들의 선거로 뽑았는데, 이를 상근 회장제로 바꾼 것이다.

그 무렵 나는 협회 임원으로 있으면서 협회의 대외창구 역할을 했는데, 하루는 재무부를 방문해 이동호 증권보험국장을 만나 협회 회장제를 상의했다. 증권시장이 커지면서 협회 회장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으니 차제에 상근 회장제를 도입하면 일을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이 국장은 김용환 재무부 장관의 허락을 받아 바로 다음날 전화를 걸어왔다. 그러면 상근 회장은 누가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백경복 상근 부회장을 얘기했다.

백 회장은 육군 중령 출신으로 5.16 때 재무부에 들어와 이재국장과 재정차관보까지 지냈는데, 훗날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낸 김원기 씨의 권유로 72년부터 협회 상근 부회장을 맡아왔다. 백 회장은 재임 시절 야마이치증권 회장에게 제의해 정례 한일증권간담회를 개최하기로 하는 등 증권업계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상근 회장제가 도입된 것이지만 그때만 해도 내가 그 자리에 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사람 일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협회 임원 선출 방식도 내가 처음 제의해서 바꾼 것이었다. 74년 이전까지는 1년 임기의 임원을 선출할 때마다 경쟁이 치열했는데, 나는 그런 식으로 하면 회원사간의 협력을 해칠 우려가 있으니 전 회원 임원제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당시 30개 회원사 중 28개 사는 이사, 2개 사는 감사를 맡게 됐고, 자연히 이사회가 회원간담회도 되고 총회도 되고 해서 협회 운영이 한층 효율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증권업협회의 뿌리는 1947년 설립된 증권구락부라는 단체인데, 해방 후 증권업계의 원로였던 송대순 씨가 주축이 돼만든 증권시장의 동호인 모임 같은 것이었다. 증권구락부가 대한증권업협회로 정식 출범한 것이 53년 11월이니 서울 명동에 증권거래소가문을 연 것보다도 3년이나 앞섰다. 그만큼 증권업협회의 역사는 긴 셈이다.

증권업협회는 회원사간의 업무 협의와 투자자 보호가 주된 목적이지만 50~60년대 청산거래 시절 증권 파동과 책동전이 빈발하던 때는 일종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 매매 쌍방간의 이해 대립을 진정시키기도 했다. 또 증권시장 운영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에 제도 개선과 정책 수립을 건의했다.

1997년 5월29일 준공식을 가진 한국증권연수원은 증권업계의 오랜 숙원사업 중 하나였다. 협회장 재임 중 부지를 마련한 필자(왼쪽에서 3번째)도 테이프커팅에 참석했다

최선 다했던 협회장 '3년'..재임 중 국내 증시 세계에 알리는데 주력
나는 삼보증권 사장으로 있는 동안 증권업협회의 대외 창구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 시절만 해도 협회 예산이 거의 없을 때라 제일 큰 증권회사인 데다 약정고 순위도 단연 1등이고 협회비도 제일 많이 내는 삼보증권 사장인 내가 정부 기관과 언론인접촉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아무튼 90년 3월 30일 증권업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뒤 처음으로 맞닥뜨린 문제는 증권시장안정기금을 출범시켜 주식시장을 안정시키는 일이었는데, 이 과정은 앞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협회장 재임 중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일은 해외에 한국 증권시장을 알리는 것이었는데, 91년 11월 영국에서 런던 금융가의 유력인사들을 초청해 한국 주식시장을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열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곧이어 92년 1월부터는 외국인도 펀드를 통하지 않고 우리 주식시장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역사적인 증시 개방에 발맞춰 협회의 이름도 대한증권업협회에서 한국증권업협회로 바꾸었다.

중국과의 한중증권간담회도 내가 재임할 때 시작된 것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우리가 일본과 매년 한일증권간담회를 교환 개최한다고 하자 자신들과도 하자고 먼저 제의해 왔다. 그 무렵 중국 증권시장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도 작고 운영도 미숙했는데, 한 회의 석상에서 중국의 고위 관료가 “증권시장을 사회주의식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해 모두들 의아해하자 뒤늦게 “자본주의 아래서는 부조리가 너무 많아 이걸 없애겠다는 의미”라는 답변을 내놓았던 일이 기억난다.

선진국 증권업협회의 모임인 국제증권업협회협의회(ICSA)에 가입한 것도 기억에 남는 일이다. ICSA는 87년에 일본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한국은 선진국에 들지 못해 전임 협회장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협회장에 취임한 뒤 일본 증권업협회장을 맡고 있던 다부치세쓰야노무라증권 회장에게 얘기해 가입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옵서버로 참석했다가 다시 정식으로 요청해 92년부터 정회원 자격을 얻게 됐다.

협회의 숙원사업이었던 증권연수원부지를 매입한 것과 증권경제연구원을 개원한 것도 기억에 남는 일이다. 특히 증권연수원의 경우 내가 삼보증권 사장으로 있으면서 일본을 들를 때마다 일본 증권업협회가 연수원을 크게 운영하는 것을 보며 게 늘 부러웠는데, 우리도 그런 연수원을 갖게 된 것이다. 증권회사에 새로 직원이 입사하면 연수원에들어가 고객 응대 방법이나 투자 권유 방법을 익히고, 선진 투자 이론과 제도 등에 대해서도 대학교수들로부터 배우면 전문성과 신뢰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92년 9월 충남 아산군도고면와산리에 부지를 매입해 95년 4월 기공식을 갖고 97년 5월 아산연수원이 개원하게 된 것인데, 나는 93년 4월 7일 협회장에서 물러나 2년간 명예회장으로 더 재직한 뒤 협회를 떠났다. 그러니까 협회 숙원사업의 첫 삽은 내가 떴지만 연수원이 문 여는 것까지는 마무리하지 못한 셈이다. 그렇다고 아쉬움은 없다. 어차피 혼자 다 할 수는 없다. 내가 시작한 것을 다음 사람이 완성하고 또 그 다음 사람이 더 훌륭하게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20회는 나의 투자 철학)

[강성진의 증권반세기-1] 주가 30% 폭락, 잔인했던 '여의도의 봄'
[강성진의 증권반세기-2] 증권사 사장단 결의…'암덩어리' 깡통계좌 정리
[강성진의 증권반세기-3] "여윳돈 놀리느니 증권 사라"
[강성진의 증권반세기-4] 증권가의 제왕, 시장 쥐락펴락
[강성진의 증권반세기-5] 100배 솟구친 주식이 1/200토막…
[강성진의 증권반세기-6] 끝날 줄 모르는 탐욕에 또 다시…
[강성진의 증권반세기-7]절망은 다시 희망의 씨앗으로
[강성진의 증권반세기-8] 바람 잘 날 없는 증권가
[강성진의 증권반세기-9] 국민소득 100불도 안되던 그 시절…
[강성진의 증권반세기-10] 공개매수 도입 전 최대 운송업체 인수戰
[강성진의 증권반세기-11] 증권파동 겪고 기업공개 활성화법 열매
[강성진의 증권반세기-12] 70년대 처음이자 마지막 증권파동
[강성진의 증권반세기-13] 지친 심신 돌려세운 정부 '시그널'
[강성진의 증권반세기-14] 공채로 인재선발..혁신적 기업문화
[강성진의 증권반세기-15] 증권업계 첫 '기업공개 주선'
[강성진의 증권반세기-16] 전국 지점망 구축, 증시 대중화
[강성진의 증권반세기-17] 주식 대중화 앞당긴 공모주 붐
[강성진의 증권반세기-18] 미리 내다본 '유니버설 뱅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