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전' 거듭하는 프로야구…김성근이 그립다

머니투데이

이규창 MTN 기자

프로야구에 대해 뽐낼 만한 전문적인 지식도, 가슴 속 깊이 우러나는 애정도 없다. 단지 영화, 게임처럼 야구도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즐기고 소비한다. 그저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게 재미를 주면 좋겠고, 기왕이면 감탄사가 나올 만큼 완성도 높은 경기를 원할 뿐이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를 따라 고향 연고 팀을 응원해야 하는 줄 알았고, 머리가 굵어서는 홈런 타자들을 따라 선호 구단이 바뀌었다. 가끔은 성격 독특한 외국인 선수에게 마음이 끌려 그 구단의 경기만 찾아 보기도 했다.

요새는 신생팀이라 밑질 것 없다는 얄팍한 생각으로 NC 다이노스를 응원중이다. "설마 꼴찌는 아니겠지" 정도의 부담없는 마음으로 응원을 시작했는데, 퇴근 후 스트레스 해소에 톡톡한 기여를 하고 있다.

즉, 나는 프로야구 골수 팬들이 싫어할 전형적인 '철새'다.

이기는 편 우리 편!…"그래도 삼성은 좀.."

여성팬들에게 프로야구를 왜 좋아하는지 물으면 "그냥 좋아요" 혹은 "재밌어서요" 라고 답하곤 한다. 잘생긴 선수 때문에 좋아한다는 대답도 적지 않다.

이건 마치 영화를 볼 때와 비슷하다. 그냥 재미있어서 볼 뿐이다. 그 '재미'를 어디서 얻느냐는 개인마다 차이가 크겠지만, 1000만명 관객 영화가 대개 그렇듯 '잘 만든 영화'는 많은 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야구'도 많은 이들이 좋아한다.

야구를 못하는 팀에게 '애증'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팬심을 어찌 모를까. 그러나 나는 그 고통스러운 짝사랑을 하는 대신 '잘하는' 구단과 선수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

내 기준으로 보자면 삼성 라이온스가 딱이지만 왠지 정이 잘 가지 않는다. 올해도 페넌트레이스 1위를 독주하는 삼성이지만,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김성근'의 그림자가 큰 것 같다. 내게는 영원히 SK와이번스의 감독으로 기억되는 바로 그 말이다.

'김성근 야구'가 재미없다고?…그래서 프로야구는 지금 행복한가?

내게 프로야구 자체가 재미있다는 걸 가르쳐 준 건 김성근 감독이다. 거액을 주고 수퍼히어로들을 데려다 팀을 만든 것도 아닌데 다른 구단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압도적인 강함을 자랑했다.

내 기억에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SK와이번스는 깜짝 놀랄 만한 작전을 보여준 일이 거의 없었다. '김성근 스타일'을 알고 나면 누구나 예상하는 그 시점에 예정된 플레이가 이뤄진다.

그래서 많은 야구팬들은 김성근의 야구가 "재미없다"고 불평했다. 인천 연고도 아닌데 김성근 감독의 팬이라고 하면 야구를 좋아하는 지인들은 으레 찌릿한 시선을 보낸다.

과연 김성근의 야구는 재미가 없을까. 그가 떠난 지금의 프로야구는 그만큼 재미있어 진 걸까.

아마도 SK와이번스 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보다. 김성근 감독이 SK와이번스 사령탑을 맡으면서 30~40만명 수준이던 관중수는 곧장 두 배로 뛰었다. 퇴임 전까지 관중수를 100만까지 끌어올렸고 그 토대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무적의 최강팀'이라는 기억은 팬들에게 오래도록 남아, 성적이 바닥을 긴 지난해조차 LG, 두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관중을 동원할 수 있었다.

반면 올해 페넌트레이스 1위를 독주하는 삼성의 관중수는 90년대 전성기만 못하다. 타 구단과 차원이 다른 경기 수준, 압도적인 강함…리그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팀에게서 이런 모습을 기대하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만 그런지 몰라도, 그 느낌이 약한 건…아마도 김성근의 추억 때문인 듯 하다.

'졸전'으로 엎치락 뒤치락…긴장 대신 허탈감만

압도적인 강팀에 끌리는 내가 뭔가 부족한 새내기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응원하는 팀의 성적이 죽을 쑤는 스트레스를 피하자는 '안전제일주의'가 이유였다. 꼴찌를 해도 신생팀이라 봐줄 수 있을 테니, 밑져야 본전 아니겠나.

그런데 NC 다이노스를 응원하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하다. 신예들의 성장과 방출 선수들의 재기가 훈훈한 감독을 준다. 이호준의 인생에 찬사를 보내고, 나성범에게서 '제2의 이승엽' 가능성을 읽는다. 이대형의 뒤를 이어 여심을 잡을 귀요미 박민우, 호세 못지않은 돌쇠의 매력을 가진 테임즈까지…이 팀을 좋아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NC 다이노스가 시즌 초반부터 선두권에 머물고 페넌트레이스 3위를 굳혀가는 이 상황은 기쁘기보다 씁쓸하다.

겨우 2년차 팀이 이렇다 할 위기 없이 리그를 점령했다. 한 때 2위를 바짝 뒤쫓는 저력까지 보여주며 내친김에 우승까지 기대하는 팬들까지 생겼다. 그런데 나머지 팀들은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는지…그 밑에서 '가을야구' 탈락만 면하기 위해 머리 터지게 싸우는 중이다.

압도적 강자가 사라진 탓인지는 몰라도, 요즘 프로야구 '졸전'이 많다. 경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건 '어이없는' 플레이와 시의적절하게 찬물을 끼얹는 작전들이 있어서다. 원래 이 정도 수준이었나 싶다.

치열한 4위 경쟁을 지켜보는 내 감상도 손에 땀을 쥐는 대신 '졸전'으로 말미암은 이변에 허탈감이 더 크다.

이제 곧 또 하나의 새내기 구단이 프로 무대에 입성한다. 과연 그 때는 또 어떤 황당한 결과가 펼쳐질까 두렵다. '재미없다'지만 수준 높았던 김성근의 야구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