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100만불 '부자증세', 美국민 과반수가 찬성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지난 1월 20일 연례국정연설에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인상을 통해 중산층 및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중산층 경제를 살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리고 공화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월 2일 4조 달러에 가까운 2016년 회계연도 예산안을 미 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상하원 모두 민주당이 다수당이었던 오바마 정부 초기와는 달리 현재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의 결과로 인해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예산안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예산안의 내용을 볼 때 부유층 및 미국기업에 대한 증세가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원안대로 실행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다.


사실상 이러한 부자증세의 논의는 새로울게 없는 것이 2009년 오바마 정부 출범이래로 줄곧 제기돼 왔었다. 단지 민주당과 공화당 양측의 주장이 너무나 달라 접점을 찾기 어려웠을 뿐이다. 간단히 말해서 민주당의 주장은 상위 소득층 및 기업에 추가 세율을 부과하여 증가되는 세수를 국가 기간설비 투자나 저소득층 및 중산층을 위해 사용함으로써 부의 재분배를 가능하게 하고 동반성장을 실현함으로써 국가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공화당의 주장은 상위 소득계층의 주 수입원은 일반임금소득이 아닌 자본이득이기 때문에 개인소득세율을 높여도 필요한 재원마련이 생각보다 쉽지 않으며 기업에 대한 추가 과세는 기업의 의욕을 떨어뜨려 생산성 저하로 이어져 결국에는 국가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니 가급적 낮은 세율을 적용하여 기업 및 부유층의 투자를 유도하여 국가성장으로 이끌면 부의 분배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약간 시간은 지났지만 2013년 5월 30일 캐나다의 토론토에서는 재미난 토론 배틀이 벌어졌다. 멍크 디베이트 (Munk Debates)라고 불리우는 서바이벌 토론회로서 매년 상반기 하반기로 나뉘어 주최측이 선정한 주제를 가지고 세계 정상급 패널들이 팀을 이루어 토론 배틀을 벌이고 방청객들이 투표로 승패를 결정한다. 토론 전후에 청중을 대상으로 투표를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토론 후 의견을 바꾸는가에 따라 승자가 결정된다.


이때 주제는 ‘부자에게 세금을 매겨야 하는가’로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만 교수와 전 그리스 총리인 게오르게 파판드레우가 찬성팀을 구성하고, 대표적인 공급주의 경제학자인 아서 래퍼 교수와 공화당 출신의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이 반대팀을 구성하여 토론 배틀을 벌였다. 토론 전 청중의 58%는 찬성을 지지, 28%는 반대를 지지, 그리고 14%는 결정을 못 내린 상태였다.

1시간 20여분의 열띤 토론 후 폴 크루그만,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팀은 12%를 추가로 얻어 70% 대 30%로 대승리를 거두었다. 토론 자체가 미국이 아닌 캐나다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이 실제로 얼마나 미국민들의 생각과 가까운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토론을 통해 양측이 '부자 증세'에 대해 얼마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동일한 자료가 어떻게 다른 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 기회이기도 했다.

부자 증세를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 양 정치가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커다란 견해 차이가 존재하지만, 최근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선 미국민 과반수가 부자 증세에 찬성한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지난 1월 29일 온라인 미디어인 더 힐 (The Hill)에 보도된 GBA 스트래티지스 폴 (GBA Strategies Poll)의 새로운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부자 증세에 대해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공화당 유권자들도 생각보다는 부자 증세를 많이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먼저 연간 개인소득 100만달러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54%가 찬성하고 31%가 반대를, 나머지 12%는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나왔다. 이를 공화당과 민주당 유권자를 구분해 보면, 양 당 유권자들의 차이가 극명해진다. 먼저 공화당 유권자 가운데는 36%가 부자 증세에 대해 찬성을, 47%는 반대 그리고 나머지는 결정을 못했다. 그러나 민주당 유권자의 경우에는 72%가 찬성, 16%가 반대, 그리고 나머지는 결정을 내리지 못해 공화당 유권자들이 상대적으로 부자 증세에 대해 높은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부자 증세에 대한 질문을 과거 레이건 대통령(공화당) 시절의 소득세율을 언급하며 다시 던졌을 땐 공화당 유권자들의 과반수가 연소득 백만장자에 대한 증세를 적극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연 100만달러 이상 버는 고소득계층에 대해 개인소득세를 과거 레이건 대통령(공화당) 시절의 수준인 50%까지 올리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새 질문에 대해 놀랍게도 공화당 유권자의 53%가 지지를, 33%가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화당 출신의 레이건 전 정부시절에도 개인소득세율이 50%였다는 점을 상기시키자 공화당 유권자의 부자 증세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줄어든 셈이다.

이처럼 당적에 관계없이 미국 과반수의 국민들이 부자에 대한 증세에 대해 지지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남으로써 오바마 대통령가 제시한 '중산층 경제학(middle-class economics)'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