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투더 퓨처' 10년뒤 성공할 벤처 후배에게

/캐리커처=김현정 디자이너

2025년 구정을 맞아 후배에게 (아래는 10년 후의 상황을 가정하고 쓴 글입니다.)

구정이 바로 엊그제였는데 어떻게 서울은 한 번 다녀 갔는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네. 나도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 그래도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네 생각이 나곤 해.


사실 며칠 전 연휴 직전에 정기 건강진단 받느라 병원에서 보낸 드론이 집으로 날아와서 내 건강정보 스캔을 했거든. 무심코 봤는데 그 메디컬 드론이 자네 회사 제품이더라구. 조그맣고 매끈한 드론이 내 눈앞에서 조용히 날면서 칼슘 섭취를 좀 더 늘리라고 조곤조곤하게 얘기해 주는데, 네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드론 앞에서 혼자 빙긋이 웃었어. 그러다 보니 옛날 생각도 나더군.

그때도 아마 구정이 막 지난 주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MT 창업센터 워크샵에 참석했던 너와 처음 만난 게 아마 그때였지? 피칭 강연을 마치고 나가던 내게 쭈뼛쭈뼛 다가와서 커피 한 잔을 권하던 네 얼굴 기억해.

드론에 대해 사실 아무것도 몰랐던 내게 장황하게 열심히 네 연구를 설명하던 말 중에 사실 지금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지만, 관심을 확 끌어 당기는 한 마디는 있었어. 반짝이는 눈을 하며 네가 마지막에 한 말, "정말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짧은 시간이라도 생기면 자기의 아이템이 얼마나 독특하고 변별력이 있는지, 얼마나 진보한 기술인지를 확인 받고 싶어 하는데, 네 마지막 말은 나로 하여금 좀 더 얘기를 들어보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었지. 분명 기술이나 편리성을 앞서는 건 따뜻한 감성이야.


자리가 길어져서 밤 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마지막으로 들렀던 포장마차에서 네가 어묵꼬치를 문 채 열심히 설명하던 메디컬 드론 사업계획보다도, 나는 결코 어리지 않은 나이에 이미 두 번의 창업 실패를 경험한 네 의지에 더 호감이 생겼었지. 이전 경험에서 뭔가 얻으려면 왜 실패했는지, 왜 성공했는지에 대한 분석과 체득이 필요한 법이거든.

보통 투자자들은 한번씩은 작은 성공과 큰 실패를 경험한 창업자를 선호한다고 하는데, 그 의미는 경험을 통해서 어떠한 약점이 보완되고 강점이 강화되어 생각의 폭과 깊이의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것이지 학원 수료증 같은 단순 경험치 축적에 대한 뜻은 결코 아니거든. 실패를 과거의 실수로 후딱 치워 버리고 앞으론 잘할 수 있다라는 낙관의 허세를 부리는 모습이 아닌, 아프지만 충분한 시간을 들여 분석한 실패의 원인과 교훈에 대해 내게 객관적인 피드백을 묻던 네 모습이 무척 진지했다고 기억해.

네가 아직 기억 할 지 모르겠다. 다음날 아침 약속대로 사무실로 찾아온 네가 들고 온 120장짜리 사업계획서를 나는 눈물이 쏙 빠지게 모진 말을 동원해 평가해 주었고, 너는 3일 후 100장, 또 일주일 후 30장, 2주 후엔 11장으로 요약 된 사업 계획서를 들고 꾸준히 날 찾아왔지. 그때 너는 아마 네 드론 사업을 이해도 못하는 내가 왜 이리 페이지 숫자나 요점 따위에 집착하는지 야속할 수도 있었겠지만.

사실 사업 아이디어와 세부 계획의 모든 설명을 문서에 담아 상대방에게 완벽하게 이해시킬 필요는 없거든. 당시 아직은 낯설었던 너의 메디컬 드론이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을지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기 보다는, 네 사업 자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임팩트 있게 마케팅 할 것인지가 중요한 시점이었어. 그 시작을 위해 간결하고 명확한 준비를 요구했던 거야.

네가 처음 참가했던, 아니 정확히는 네가 사업 파트너를 만났던 샌프란시스코의 투자설명회가 떠오르는다. 비록 어눌한 영어였지만 너는 직접 무대에 올라 원격의료 시장 전망부터 시작하여 메디컬 드론 시장으로 연결되는 타겟 시장성을 큰 그림부터 명확하게 전달함으로써 투자자들의 1차적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어. (최소한, "도대체 메디컬 드론이 뭐야?" 라는 질문은 현장에서 안 나왔으니까)

그런데 그때 너는 오히려 투자자 미팅보다는, 같은 투자설명회에 참가했던 무소음 서보 모터를 개발한다는 이스라엘 벤처기업과 미팅에 더욱 몰두 했었지. 그땐 나도 널 이해 못하고 답답하게 생각했었는데, 결국 다음 해 너의 그 합작벤처가 한국 벤처펀드의 시리즈 A 투자유치에 성공하고 나중에 구글과 테슬라의 투자도 받게 된 걸 보면, 작은 성공에 조급히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한 너의 판단이 결국 지금의 성공기반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지금 생각해도 네가 참 뿌듯하고 자랑스러워.

아, 얼마 전 뉴스에서 네가 제3세계 스타트업들을 위한 펀드에 1억 달러를 기부 했다는 기사를 봤다.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거라던 네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듯해. 항상 초심을 잃지 않아서 고맙다. 전세계를 무대로 항상 바쁘겠지만, 조만간 서울에서 한번 만나기를 기대할게. 건강하게 지내고 또 연락하자.

2025년 구정 초사흘 아침에 서울에서 선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