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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이재용의 고심과 국격(國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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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06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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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동안 논란이 돼온 경영권 승계 문제를 일단락짓겠다는 의미이지만, 그보다 더 많은 선언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2014년까지 24년간 삼성 내외에서 다양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창업자 가문으로 기업을 이어받기 위한 과정이었다. 누구는 이런 모습을 부러워 하지만 그 자리에 들어서는 사람은 그 왕관의 무게만큼 고통을 견뎌야 한다.

이 부회장의 오늘 선언은 이런 어렵고 힘든 과정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공식화한 것이다. 자연인인 자녀들에게 자신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과는 별개로 거대 기업 삼성을 배우는 과정인 경영수업에서 배제하겠는 뜻으로 읽힌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최고 60% 이상의 상속세를 내야 하는 우리나라의 상속제도로 인해 재계 4세까지 넘어가는 경영승계 가능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이와도 별개의 문제다.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라 부자이기 때문에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는 일은 안된다는 지적이 재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이런 결단에는 이 부회장의 부정(父情)이 읽힌다. 기업인으로서 1년의 수형생활을 포함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검찰 조사와 정치권으로부터의 압박 등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자식대에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뜻이 들어 있다.

대부분 어려운 직업을 경험해 성공한 부모들이 같은 길을 걷겠다는 자녀들에게 힘들다며 절대 안된다고 만류하는 이유와 같다.

또 이 결정에는 한국 내부의 반기업 정서도 크게 한몫했다. '재벌'로 불리는 오너 기업지배 구조에 대한 반감이다. 사실 기업경영은 오너 체재가 좋으냐 전문경영인 체재가 좋으냐 하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원들을 모아 놓고 경영체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전문경영인이 이상적이다? 오너 경영인이 이상적이다? 다 엉터리다. 가장 우수한 경영자가 제일 좋은 경영자다. 오너건 전문 경영인이건 관계없다. 좋은 물건을 싸게 잘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주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다."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일본 제조업이 망한 것은 금융권에서 파견된 느린 전문경영진 때문이며, 반대로 한국 제조업이 성공한 것은 오너 경영자들의 과감한 결단과 신속한 투자결정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맞는 말이다.

기업을 운영할 때 '대리인 비용'이라는 것이 있다. 누군가에게 맡기면 맡긴데 대한 비용지불이 불가피하다. 전문경영인은 그 해 연말 자신의 성과급이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의 재임 기간 중 단기 성과에 집중해, 미래에 대한 준비에 미흡하다. 이런 리스크를 거대기업 삼성이 어떻게 지고 갈 것인가가 향후 20년내 삼성의 과제가 됐다는 게 이번 선언의 의미다.

또 노조 문제와 관련한 이 부회장의 선언은 기존 법질서를 충실하게 지키겠다는 선언적 의미로 해석되지만, 그동안 삼성전자의 성장을 이끌어온 안정적인 노사관계가 이번 선언 이후 정치 투쟁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노조의 유무가 문제가 아니라, 노조를 통한 기업활동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가 재계에선 퍼지고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타적이지 않다. 각자의 이익을 좇기 때문에 개인과 사회가 발전하는 게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그동안 노사협의회를 통해 직원과 회사가 서로의 이익을 높이는데 충실했다. 하지만 과거 유럽이나 미국의 거대 철강노조나 자동차 노조에서 보여줬듯이 권력화되고, 정치화되는 노조활동은 기업의 성장에 방해요소가 될 수도 있다. 재계는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전자가 그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번 발표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기자가 아는 한 이번 발표문은 이 부회장이 자신의 진심을 담아서 최선을 다해 써내려 갔다. 이제 우리의 국격도 글로벌 기업 삼성에 맞게 맞춰 나가는 게 필요하다. 노조도 마찬가지다.

다수의 정의가 아닌,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실현되는 그런 나라가 돼야 한다. 그래야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억울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 부회장의 자녀도 사회에 떠밀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직업과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돼야 국격이 높은 나라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 오동희
    오동희 hunter@mt.co.kr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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