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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가족에서 재단으로 ‘일라이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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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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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12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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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가족에서 재단으로 ‘일라이릴리’
일라이릴리(Eli Lilly and Company)의 창업자 일라이 릴리(1838~1898년)는 ‘릴리 대령’으로 불렸다. 남북전쟁에 북군 대령으로 종군했기 때문이다. 스웨덴계 약화학자다. 회사는 1876년 고향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창업했다.
 
일라이릴리는 글로벌 20위권 제약회사다. 2019년 매출 230억달러로 약 3만4000명이 일한다. 소아마비 백신과 당뇨병 치료약 인슐린을 최초로 대량생산했다. 특히 릴리의 대명사와도 같은 인슐린은 토론토대 연구팀과 함께 개발해 연구자들인 매클라우드와 밴팅은 192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고 릴리는 처음 2년간 독점으로 약을 발매했다. 이를 계기로 회사는 우수한 연구자를 대거 영입할 수 있었고 외부와의 공동프로젝트도 활발해져 1934년에는 하버드대와 로체스터대의 공동연구자들이었던 마이넛, 머피, 휘플 3인이 악성빈혈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1898년 창업자가 별세하고 그 아들 조시아 릴리가 회사를 승계했다. 조시아 릴리는 1932년까지 회사를 경영하고 70세에 장남 일라이 릴리 2세에게 넘겨주었는데 일라이 릴리 2세는 1948년까지 CEO(최고경영자), 1961년까지 이사회 의장을 지냈다. 동생 조시아 릴리 2세가 승계해 1953년까지 CEO, 1966년 별세할 때까지 이사회 의장을 지냈다. 동생 사후 형 일라이 릴리 2세가 복귀해 다시 1969년까지 이사회 의장이 됐다가 1977년 91세로 별세할 때까지 명예이사장이었다.
 
릴리 패밀리는 사실상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기부는 2세 때 이미 시작됐는데 회사를 아들에게 물려준 지 5년 후인 1937년 조시아 릴리는 두 아들과 함께 릴리재단(Lilly Endowment)을 설립했다. 당시 28만달러 가치의 회사 주식을 출연했다. 그후 유증도 했고 두 아들도 생전, 사후에 재단에 기부해 릴리재단은 한때 세계 최대 재단이었다. 자산은 대부분 일라이 릴리 주식이어서 재단은 현재 회사 지분의 무려 11.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사업은 제약회사 오너가족이 세운 재단으로서는 다소 의외로 헬스케어 분야가 아닌 종교와 교육 분야에 비중을 둔다. 전국이 아닌 인디애나주 지역에 사업을 집중한 것도 특색이다.
 
조시아 릴리 2세의 아들은 회사 일을 하다 그만두었기 때문에 가업을 승계하지 못했다. 동생 일라이 릴리 2세는 두 아들을 유년에 잃었고 딸도 자녀가 없어 승계할 후손이 없었다. 그래서 생전 기부 후에도 보유한 회사 주식 80%를 대학과 박물관 등 13개 기관에 유증했다. 나머지 20%는 부인이 지정한 종교단체와 학교 등 11개 기관에 기부했다. 이로써 일라이 릴리는 3대, 100년에 걸친 가족경영을 마무리했다.
 
일라이 릴리 2세의 주식은 모두 기부했지만 다른 재산은 형의 딸 루스 릴리에게 상속됐다. 그런데 루스 릴리도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릴리 패밀리는 창업자의 증손녀를 마지막으로 2009년에 끝난다. 루스 릴리는 2002년 자신의 이름으로 만든 재단을 통해 예술, 교육, 환경단체 등에 거의 8억달러를 기부했다.
 
사회사업을 하는 재단이 영리기업의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이익배당이 재단의 사업에 소요되는 자금의 재원이 된다. 따라서 회사의 성공적 경영과 실적이 자동으로 사회적 기여가 되는 구조다. 꼭 따로 기부할 것도 없다. 고객의 제품 구매행동도 일부는 기부행동이다. 회사가 좋은 물건으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밀턴 프리드먼의 생각이 그대로 타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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