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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29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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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초록 선풍기
1980년대 초 한 학생이 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군사정권하에서 독재타도를 외치던 시절이어서 사실상 수업은 무의미했다. 그래도 그 학생은 공부를 해볼 요량으로 해외 시사주간지를 해석하고 토론하는 동아리에 가입했다. 이 동아리는 외부인을 대상으로 발표회를 여는데 외부 발표에 앞서 신입생은 선배들을 대상으로 먼저 발표해 사전점검하는 것이 상례였다. 당시엔 인터넷도 모바일도 PC도 없는 시절이었다. 칼럼 한 페이지를 복사한 종이 한 장과 손때 묻은 영어사전이 유일한 등대였다. 근데 이 칼럼엔 사전에도 없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그 단어는 그린스펀(Greenspan)이었다. 경제지식도 전혀 없고 세상물정 모르는 1년차 대학신입생은 그것이 나중에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될 사람의 이름이란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단지 무슨 경제단체쯤인 줄 알았다. 그래도 그렇지, 이름도 괴상하게 ‘초록 선풍기’(greens pan)라니. 다행히 선배의 도움으로 망신살이 뻗치는 일은 모면했지만 여전히 우습고 슬픈 추억이다.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일이 너무 많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온통 모르는 것뿐이다. 단지 열정만으로는 안된다. 보통사람의 눈에는 낙서처럼 보이는 피카소의 추상화 앞에서 ‘이런 그림이라면 나도 그리겠네’라고 말하면 큰 오산이다. 왜냐면 피카소의 그런 그림이 나오기까지는 어린 시절부터 데생과 드로잉을 몇만 번, 아니 몇 수십만 번의 피와 땀이 들어간 이후 만들어진 새로운 창작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기초와 기본이 없으면 절대 전문가가 될 수 없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릭슨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매일 3시간씩 10년을, 하루에 10시간을 투자할 경우 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1만시간의 법칙’을 제시한 바 있다. 유명한 연주가는 1시간 공연을 위해 100배, 그 이상의 시간을 쏟는다. 프로운동선수도 마찬가지다.
 
주식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제 동학개미에 이어 서학개미가 등장하고, 심지어 청년들 사이엔 “넌 취직하니? 난 투자하는데”라는 말도 돈다고 들었다. 지난해 초부터 개인의 순매수규모가 국내외 총 110조원이다. 올 들어서 국내투자만 20조원 이상을 순매수하고 있다. 이쯤 되면 ‘전국민 투자계몽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아직 PER(주가수익비율), PBR(주가순자산비율)가 뭔지 모르는 투자자도 있다. 기업의 재무제표를 볼 줄 모르는 개인도 태반이다. 한국거래소의 공시시스템(DART)을 이용할 줄도 모르고 증권회사의 리포트를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모르는 주식전문가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는 어느 투자전략가의 말처럼 지금 유튜브에는 주식전문가가 넘쳐난다.
 
‘위험하니 하지 마라’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방법을 체계적으로 알려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개인투자자는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기업의 재무상태를 판별하는 법, 경제상황을 이해하는 법, 적정한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법 등 기본적인 투자방법론을 차근차근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겨울이 오면 후회와 실망으로 사무칠 것이다. 주식시장에서의 직접투자는 오롯이 자기 책임과 판단 아래 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초록 선풍기’의 경험은 누구나 있다. 차분히 기본부터 닦아야 한다. 그래야 장기투자도 가능하고 행복한 노후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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