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판] 창문 밖에서 느껴지는 낯선 남자의 시선…'이럴 때'만 처벌할 수 있다

/사진=온라인커뮤니티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창문 밖 낯선 그 남자,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누리꾼들 분노를 유발했습니다.

당시 연립주택 1층에서 자취를 하던 글쓴이 A씨는 무심코 바깥 창문을 열어놓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열린 문틈으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남성 B씨가 얼굴을 들이밀고 집 안에 있는 A씨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A씨 집을 한참 들여다보던 B씨는 급기야 닫혀있는 안쪽 창문까지 열려고 시도합니다. 순간 A씨는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경찰을 불렀습니다.


경찰은 B씨를 주거침입 혐의로 입건합니다. 그러나 B씨는 경찰에 덜미가 잡힌 이후에도 뻔뻔하기만 합니다. "(피해자가) 예뻐서 안을 들여다봤을 뿐"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고 하는데요. 피해자 A씨는 두려움에 휩싸인 채 결국 다른 집으로 이사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훔쳐본 방법 따라 주거침입죄 여부 달라져

남의 집 창문을 통해 내부를 엿본 행위에 주거침입죄가 적용될까요? 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단순히 쳐다보는 것 하나만으로는 주거침입 혐의를 적용하긴 어렵습니다. 시선 자체를 침입행위에 포함시키기 애매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주거지에 허락 없이 들어감으로써 안정적 주거를 방해하려고 했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B씨처럼 혼자 사는 여성의 집을 몰래 들여다보는 사람을 처벌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창문의 바짝 붙은 채로 남의 집을 훔쳐보기 위해선 일단 해당 세대에 최대한 가까이 가야겠죠. 집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공용공간이나 마당 등을 침범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주거침입죄에서의 '주거'란 집 그 자체뿐 아니라 엘리베이터, 공용 계단·복도, 마당 등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이런 시설들은 주거인이 필수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기에 이곳에 허락 없이 드나드는 행위 또한 주거의 평온을 침해하는 셈입니다. (대법원 2009. 8. 20. 선고 2009도3452 판결)

혹은 창문을 열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집 안으로 손이나 팔 일부가 들어가거나, 훔쳐보는 데에 과하게 열중한 나머지 얼굴을 들이밀었을 때도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판례는 신체의 일부만 타인의 주거 안으로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거주자가 누리는 사실상의 주거의 평온을 해할 수 있는 정도라면 주거침입 기수로 판단합니다.

이처럼 '쳐다보기' 사건에 대한 처벌은 작은 차이에 의해 유·무죄가 갈립니다. 지난 5월 수차례에 걸쳐 다세대주택에 몰래 침입해 복도에 나 있는 창문으로 여성을 훔쳐본 20대 남성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모르는 여성을 훔쳐보고자 집 인근의 얕은 담장에 올라간 40대 남성은 주거침입죄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사건 재판부는 그가 올라선 구조물이 외부인 통행을 금지하도록 만든 설비가 아니라 집 밖에 위치한 일종의 표지석이기에 주거침입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B씨 사례로 돌아가볼까요. A씨에 따르면 B씨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던 쪽 창문은 해당 연립주택 대문 안으로 들어온 뒤 건물을 한 바퀴 끼고 돌아야 나오는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다는데요. 창문을 열려고 시도했다는 점도 고려해볼 때 주거침입죄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훔쳐보기' 따로 처벌하려면

모르는 사람의 시선이 집 주변을 맴돈다면 그것보다 무서운 일은 없을 텐데요. 하지만 앞서 말한 주거침입죄 외에 쳐다보는 행위만을 콕 집어 처벌하는 조항은 성폭력처벌법상 성적목적 다중이용장소침입죄뿐입니다. 화장실, 목욕탕, 탈의실 등 남녀가 구분돼 사용하는 공간에 성적 목적을 갖고 침입하는 경우에 적용되는 죄목으로서 주거공간 훔쳐보기에는 이를 적용할 수 없습니다.

즉 타인의 주거에 포함되지 않는 거리에서 신체 일부 침입 없이 말 그대로 '보기만 하는 행위'를 하는 이에게 법적 제재를 하기가 힘들다는 거죠. 경범죄처벌법에 이유 없이 상대를 지켜보거나 따라다님으로써 불안감을 조성하면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긴 하지만, 불안감 조성 행위가 3회 이상이거나 피해자가 명시적인 거절 표현을 했을 때만 실질적인 처벌이 이뤄집니다.

올초 제정된 스토킹처벌법에도 비슷한 조항이 존재하지만 이 또한 지속·반복적으로 이뤄져야만 기소가 가능하다는 맹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구애로 포장된 단발성 훔쳐보기에 대한 별도의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지난 2012년 한나라당 이진복 의원이 공공장소에서 몰래 이성의 신체를 훔쳐보거나 소리를 엿듣는 등 변태적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을 담은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내놓았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아예 새로운 법을 만들어 타인의 사생활의 자유를 침범하는 도시(盜視)·무단 촬영·무단 녹음 등 모든 종류의 침범행위를 광범위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