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세정거장 출근길, 한시간 걸려요"...장애인들은 거리로 나섰다

"비장애인이라면 30분도 안 걸릴 게 1시간 넘게 걸려요."

매일 아침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서울장차연) 대의원 배재현씨(42). 배씨의 집에서 출근지까지는 지하철로 세 정거장거리. 넉넉하게 잡아도 30분이면 갈 수있지만 배씨는 한시간전에 집에서 출발한다. 집앞 버스정류장에는 저상버스가 몇 대 다니지 않아 반드시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는데 혹시라도 지하철을 놓칠 수 있어서다. 배씨는 "지하철 역에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리프트 방식이라 올라가는데 오래걸리고 가끔 고장으로 운행이 안 될 때가 있어 미리미리 집을 나선다"고 설명했다.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섰다. 구산역, 남구로역, 복정역 등 여전히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있고 저상버스 운행률은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전장연 출근길 기습시위…"우리는 매일 불편"

전국 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공덕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집결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 100여명은 20일 오전 7시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 기습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휠체어로 스크린도어가 닫히는 것을 가로 막으며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다. 시위로 열차운행이 중단되는 것을 본 일부 시민들이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한 참가자는 "여러분은 하루지만 저희는 수 십년 넘게 불편을 견뎠다"고 호소했다.

최근 전장연은 출근길 기습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지난 13일에는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시위를 벌였고 지난 3일에는 여의도역과 공덕역에서 출근길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이 불편 호소함에도 전장연이 집회를 계속 이어가는 이유는 '장애인 이동권' 때문이다. 이들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정부를 향해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와 특별교통수단의 지역 간 차별 철폐 등을 골자로 한 '교통약자의 교통편의 증진법' 연내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버스 3만5445대 가운데 저상버스는 27.8%인 9840대다. 전장연 관계자는 "15년 전 2006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이 개정될 때만 해도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로 바뀔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저상버스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국토부는 올해까지 저상버스를 41.1%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보급률도 차이가 크다. △서울 56.4%, △강원 36.1%, △제주 32.9% 등에 비해 △경기(14.1%), △전남(11.5%), △충남(10%)의 경우엔 저상버스 비율이 떨어진다.

특별교통수단(리프트를 장착한 택시나 승합차)도 부족한 상황이다. 2020년 기준 특별교통수단 보급률은 전국 83.4%로 법정대수인 150대당 1대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또 서울의 보급률은 85.1%인 반면 인천은 57.3%에 그치는 등 지역 간 격차도 뚜렷하다.
"엘리베이터 보급률 100% 약속 지켜야"

전국 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공덕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지하철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뉴스1

장애인단체들은 지하철 엘리베이터에 대해서도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말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서울 지하철 역사 283곳 중 261곳이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를 확보한 상황이다. 1역사 1동선이란 교통약자가 승강기를 이용해 끊김 없이 지하철 역 1층 출입구에서 대합실을 거쳐 승강장까지 하나의 동선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12월 말 안으로 공사 중인 충무로역에도 엘리베이터 설치가 완료돼 연내에는 262곳으로 늘어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설치율로 보면 90%를 넘어서는 수치지만, 장애인단체들이 항의를 이어가는 이유는 올해 본예산에 엘리베이터 설치 예산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서다. 서울장차연에 따르면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가 없는 22곳 중 구산역, 남구로역, 복정역, 까치산역은 설계비 및 공사비가 내년도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

우정규 서울장차연 활동가는 "2022년까지 서울시가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를 100%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 설계비조차 빠져 있는 곳이 있다"며 "엘리베이터를 짓는데 21개월 정도 걸리는 걸 감안하면 약속은 지킬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휠체어 리프트라는 이동수단이 있지만 위험하고 장애인이 주도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며 "게다가 이동하는데 15~30분이 걸리고 사이렌이 울리는 등 안전하지도 않다"고 했다. 이목이 집중돼 수치심을 호소하는 장애인들도 많다고 한다. 우 활동가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역은 장애인에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배씨는 "지방 출장 때는 콜택시 사정을 알아보고 하루나 이틀 전에 미리 접수를 해야 한다"고 했다. 또 "장애인 콜택시가 특별교통수단이라고 하지만 대기시간이 2시간이 걸린 적도 있다"며 "억지를 쓰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영일 조선대 특수교육학과 교수는 "이번 시위는 장애인들에겐 최후의 수단과 같은 것"이라며 "장애인들이 매일 어떤 불편을 느끼는지, 같이 불편을 느껴보자고 그렇게 한 것이다"고 분석했다. 이어 김 교수는 "엘리베이터 등을 설치하면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약자 등도 사용한다"며 "모든 시스템이 비장애인에게 맞춰져 있는 구조를 바꿔야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