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위기' 러시아, 국채이자 '달러'로 냈다는데…채권자 "못 받았다"

러시아 중앙은행. /사진=블룸버그

서방의 경제제재로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한 러시아가 16일(현지시간) 달러화 표시 국채의 이자를 '달러'로 지급했다고 밝혔다. 다만 서방의 제재로 지급 처리가 승인됐는지는 불분명하다고 했다. 러시아는 만기 일정에 맞춰 제대로 이자를 지급했지만 채권자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이는 서방의 제재에 따른 것이라며 미국 측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포브스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이날 러시아 국영방송 러시아투데이(RT) 인터뷰에서 16일 만기인 달러화 표시 러시아 국채 2건에 대한 이자를 지급했다며 "공은 미국 당국 측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날은 러시아 정부가 달러화 국채에 대한 이자 1억1700만달러(약 1445억원)의 지급 만기일이다. 이자 상환이 이날 이뤄지지 않아도 30일간의 유예기간이 있어 바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서 시장에서는 서방 제재 여파 등을 이유로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디폴트를 선언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러시아가 외화 채권 이자를 갚지 못한 것은 1918년 볼셰비키 혁명 때가 마지막이다.

실루아노프 장관은 러시아 정부가 외화 계정이 있는 미국 은행으로 달러로 이자를 지급했고, 지급처리 승인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외화(달러)로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우리 의무의 실행 여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미국 당국에 달려있다"며 제재를 시행한 미국이 이자 지급을 거부하면 채권자들이 이자를 받을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자가 채권자들에게 정상적으로 지급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 루블화로 이자를 지급하기 위한 대안 절차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달러화 표시 국채 이자 지급 관련 업무는 미국 씨티은행이 담당하고 있다.

WSJ에 따르면 달러화 표시 러시아 국채 2건을 모두 보유한 한 채권투자자는 미 동부시간 기준 오후 5시 45분(한국시간 17일 오전 6시 45분) 현재까지 이자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미국 측은 '러시아의 국채이자 지급 여부는 미국에 의해 결정된다'는 러시아의 주장에 반박하고 있다. 앞서 미국이 자국 금융기관과 러시아 중앙은행·재무부 간 거래를 금지하는 금융제재를 시행하면서도 채권 이자 지급에 대해선 예외를 뒀다는 이유에서다.

미 재무부는 러시아 중앙은행·국부펀드·재무부가 이달 1일 이전에 발행한 채권과 관련해선 5월25일까지 이자 지급을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외허용 기간이 끝난 뒤에는 미 재무부의 특별승인 이후 이자 지급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채권시장 투자자들과 분석가들도 러시아가 앞으로 몇 주 안에 외화 부채를 갚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재무부 대변인은 "간단히 말해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러시아가 이런 부채 상환을 하는 것까지 막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러시아의 부채 상환 여부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러시아의 주장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