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위기 급한 불은 껐는데…"제2의 SVB 불씨 여전"

머니투데이

윤세미 기자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야기할 것으로 우려됐던 크레디트스위스(CS) 파산 위기가 UBS의 인수로 급한 불을 끄게 됐다. 하지만 은행권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데다 최근 은행 위기의 근본적 배경이 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결정도 남아 있어 시장 불안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AFPBBNews=뉴스1

최근 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공포에 휩싸였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의 연쇄 파산에 이어 스위스 2대 투자은행인 CS까지 흔들리면서다. 미국과 스위스 금융 당국은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긴급 유동성을 지원하고 위기 은행의 인수를 신속 추진하면서 해결사로 나섰고, 결국 CS의 파산을 막았다.

많은 투자자들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최선의 해법은 아니지만 다른 옵션인 국유화나 은행 청산에 비하면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불안감도 여전하다. 20일 아시아 증시에서 한국 코스피지수는 초반 상승하기도 했지만 결국 0.69% 하락 마감했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1.42% 하락했고, 홍콩 항셍지수는 2.65% 급락해 낙폭이 더 컸다. 금융권 악재가 더 나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시장에 퍼져 있고, 유동성이 강조되며 은행들이 대출 억제를 해 경기가 악화할 것이라는 판단도 있다.

이번 CS 거래에서 160억스위스프랑 규모의 CS 신종자본증권(AT1·Additional Tier 1, 코코본드)을 상각 처리하기로 한 결정은 시장에 충격파를 던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마빈 첸 애널리스트는 "CS 거래는 채권 보유자들에게 상당한 손실을 안겼다"며 "투자자들은 이에 따른 금융 시장 혼란과 꼬리위험 가능성을 다시 살피기 시작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꼬리위험은 발생 가능성이 작고 예측이 어렵지만 실현되면 엄청난 충격이 불가피한 돌발 변수를 뜻한다.

근본적으로 연준의 긴축이 계속되는 한 은행 위기가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미국 투자자문사 앤젤레스인베스트먼트의 마이클 로젠 수석투자책임자(CIO)는 로이터를 통해 UBS의 CS 인수는 "불안정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가 제거된 것에 불과하다"며 "불안정의 근본 원인인 긴축 통화정책은 여전히 시스템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가파른 금리 인상이 은행 시스템의 균열을 초래했고 추가 긴축 우려가 남아있는 한 불안은 지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연준이 오는 21~2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여는 가운데 어떤 결정을 내릴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어떤 발언을 할지, 점도표에서 향후 금리 전망을 어떻게 내놓을지에 따라 시장 변동성이 급격히 고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AFPBBNews=뉴스1

CS 그림자에 가려졌지만 미국 지역은행 위기 역시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미국 퍼스트리퍼블릭은 주가 폭락과 잇따른 신용등급 강등으로 '제2의 SVB'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에리언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시장의 관심이 미국 지역은행 퍼스트리퍼블릭에 집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퍼스트리퍼블릭은 지난주 미국 대형 은행 11곳으로부터 300억달러를 긴급 수혈받았지만 17일에도 주가가 30% 넘게 폭락하는 등 시장의 불안은 이어지는 모습이다.

또 19일 세계적 신용평가사인 S&P글로벌은 퍼스트리퍼블릭의 신용등급을 지난주에 이어 이날 다시 'B+'까지 내렸다. 미국 웨드부시증권은 퍼스트리퍼블릭 목표주가를 주당 140달러에서 5달러로 하향 조정하며 "더 큰 기업에 은행을 매각하는 게 이득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일부 헤지펀드는 퍼스트리퍼블릭에 대한 하락 베팅에 위험을 느낀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대형 은행들이 구원투수로 나선 데다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퍼스트리퍼블릭이 이른바 '밈 주식'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자칫 공매도를 쳤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