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게 만들라"…나발니 시신 1주일 만에 넘겨준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각) '조국 수호자의 날'을 맞아 모스크바에 있는 무명용사 묘지에 헌화하고 있다. /AP=뉴시스

러시아 당국이 무려 1주일 간의 대치 끝에야 알렉세이 나발니의 시신을 가족에게 넘겼다. 러시아 당국은 푸틴의 최대 정적이었던 나발니의 장례식을 비밀로 하지 않을 경우 시신을 썩게 하거나 교도소 부지에 매장하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즈(FT)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나발니의 대변인 키라 야르미쉬는 나발니의 시신이 안치된 러시아 북부 도시 살레하르드의 관리들이 지난 24일에야 그의 시신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나발니의 어머니 류드밀라 나발나야와 나발니의 사인을 조사한 담당관리들 간의 1주일에 걸친 대치가 비로소 끝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옥중 사망한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아내인 율리아 나발나야와 만나 포용을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야르미쉬는 러시아 관리들이 나발니의 장례를 비밀리에 진행하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경우 시신을 썩게 하거나 교도소 부지에 묻겠다고 협박한 사실을 공개했다. 나발니 지지자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최소 2030년까지 연임할 것으로 예상되는 선거가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은 터라 나발니의 죽음이 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의 죽음을 은폐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실제 푸틴 정부는 이미 지난 주말 나발니를 추모하려고 꽃을 놓은 400여명을 체포하는 등 나발니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푸틴은 10년이 넘도록 나발니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나발니 사망 후에도 그에 대한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

나발니의 미망인인 율리아 나발나야는 푸틴이 살인을 명령하고 은폐를 지시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이 꾸린 조사위원회는 나발니의 사망이 "자연적인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23일 공개된 동영상에서 나발나야는 남편의 정치적 유산을 잇겠다며 "푸틴이 관리들에게 (나발니의 시신을) 돌려주지 말고, 그 어머니를 압박하고, 그녀를 부수고, 아들의 시체가 썩고 있다고 말하라고 직접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앞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동상에 러시아 반체제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사진=뉴시스

야르미쉬 대변인은 나발나야가 아직 살레하르드에 있으며, 장례식 준비를 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야르미쉬는 소셜 미디어에 "가족이 원하고 나발니가 마땅히 받아야 할 장례식을 치르는 것을 당국이 막을지 알 수 없다"고 썼다.

푸틴의 최대 정적이자 야당 지도자인 나발니는 신경작용제 노비촉에 중독된 후 회복돼 러시아로 돌아온 2021년부터 감옥에 수감됐다. 푸틴 정부는 나발니의 재단을 불법화하고, 그의 지지자들 중 지명도가 높은 인사들을 체포해 다른 지지자들과 그의 가족들이 러시아를 떠나도록 등을 떠밀었다. 나발니는 이후 악명 높은 시베리아 형무소에서 수십 년 형을 선고받았고 27번이나 독방에 수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