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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이 돼 날아간 아이들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입력 : 2004.09.07 16:04|조회 : 16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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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처연하게 아름다운 천사들의 모습을 본적이 없다.
백학처럼 눈부시게 하얀 옷을 입고 관속에 눕혀진 아이들은 지긋이 눈을 내려감은채, 오열하는 어른들을 오히려 위로하는 듯 했다.

백학이 돼 날아간 아이들

아침 신문에 실린 러시아 베슬란 인질 참사 어린이들의 장례식 사진을 보고, 여덟살 난 딸과 네살난 아들의 뺨에 얼굴을 살며시 갖다 대 보고 출근길에 나섰다.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영어회화 프로그램에서 'I was really upset about tragedy in Russia'라는 예문을 들며, 러시아 노래 '백학'을 들려준다. 땅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요시프 코브존의 목소리가 납덩이가 돼 가슴을 짓누른다.

가끔 생각하지/피로 물든 들녘서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이/
고향땅에 눕지 못하고 백학으로 변해버렸다고...
그날이 오면 백학들과 무리지어/회청색 하늘을 날아가리/
대지에 남겨진 그들 모두를/소리내어 부르며


노래와 함께 관속에 누워있던 창백한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간다. 원래 가사는 '아이들'이 아니라 '병사들'이다. 길고긴 세월 외세에 맞서 싸웠던 카프카즈 지방, 체첸의 전사들이 주인공이다. 라술 감자또비치 감자또프라는 민족시인이 그처럼 서글프게 애도했던 그 전사들 때문에 이번에는 수백명의 아이들이 백학으로 변해 날아갔다. 대지에 남겨진 사람들, 엄마 아빠의 가슴속으로.

흔히들 어렸을적 자식들이 부모에게 준 즐거움만 해도 평생 해야 할 효도를 다 한것이라고들 한다. 아이들은 돌려받을 기회도 없이 베풀고만 갔다. 아이들은 베슬란이 어디쯤 붙어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까지 촉촉히 적셔주고 떠났다. 아침부터 버스안에서 나잇살이나 먹은 남자 눈에서 물흐르는 걸 남이 볼까봐 버스 천장에 시선을 고정시켜야 했다.

카프카즈가 동유럽-시베리아와 소아시아-아라비아가 만나는 요지라서, '검은 황금' 석유가 묻혀 있는 땅이고 송유관이 지나가는 땅이라서 정복자들은 기를 쓰고 빼앗으려 했고, 그 땅의 주인들은 피를 흘리며 되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런 어른들의 일로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행위를 정당화할수는 없다. 똑같은 이유로 체첸의 아이들이 죽어갔고, 또 죽어가야 한다는 말인가.

'월가의 전설'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면서 숱한 전쟁의 흔적과 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분쟁의 한 가운데를 지나며 느낀 감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이들의 후손은 이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다 죽었는지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증조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고귀하기는 하지만 이미 잊혀진 이유때문에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전쟁들 가운데 목숨을 바칠만큼 가치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끊임없이 국경선이 바뀌고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는게 역사의 자연스런 이치이다. 그런데 왜 20대의 젊은이들이 이런 피할수 없는 과정을 늦추기 위해 혹은 앞당기기 위해 죽어가야 하는가?" 하물며 20대의 젊은이도 아닌 아이들이 이렇게 죽어갈 이유는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 곳'에서 벌어진 학살을 접하며 "우리 아이들은 '여기' 무사히 있구나"하는 안도감이 드는건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을 거라고 변명해본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조지 부시가 툭하면 내뱉는 단어 '문명화된 (civilized)'사회에 살고 있다고 해서 안심할수 있을까. 아니, 과연 우리는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는 자신있게 말할수는 있을까. '내편, 네편'이수천 수만명을 아무렇지 않게 죽였던게 겨우 50년 전의 일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로 갈려 서로 잡아온 포로들을 수천명씩 산채로 구덩이에 묻곤 했던 것도 기나긴 역사의 스펙트럼으로 보면 바로 어제 일이다. 충분히 문명화됐다고 생각했던 사회도 일순간에 살륙의 도가니로 변하곤 하는게 역사이다. 멀리 갈것도 없이 가장 '문명화된 (civilized)'사회라는 미국 땅에서도 9.11테러로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이 죽어갔다.

결국 '문명화'의 정도와는 아무 상관없이 베슬란의 비극은 언제든 우리에게도 발생할수 있다. 남에게, 남의 가족에게, 남의 나라에, 남의 민족에게 원한 사지 말아야하는 건 생존의 문제이다. 살륙과 보복의 불씨를 뿌리고 다니는 자들에 대한 깊은 분노를 간직하련다. 내 아들 딸을 야만스런 폭력앞에 내던지지 않기 위해, 세상의 부모들이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니까.
아이들을 관속에 들여보낸다면 부(富)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백학이 돼 날아간 아이들의 작별인사인 듯 빗줄기가 굵어진다.

백학이 돼 날아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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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소셜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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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로그인반월정  | 2004.09.16 13:45

얼굴이 화끈 달아 오름니다.부디 전쟁없는 나라에서 고이 잠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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