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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위선… '노사모'의 슬픈 메아리

[이기자의 '정치야 놀자']

이기자의 '정치야놀자'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입력 : 2009.04.15 11:33|조회 : 9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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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마흔이 넘어 서여의도를 밟았습니다. '경제'로 가득 채워진 머리 속에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려 합니다. 정치…. 멀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두리번거리겠습니다. 좌충우돌하겠습니다. 정치를 먼 나라 얘기가 아닌, 우리 삶 속에서 숨쉬는 얘깃거리로 다뤄보겠습니다. 정치를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데려 오겠습니다.
노무현과 위선… '노사모'의 슬픈 메아리
#전한(前韓) 말기 외척이 기세등등해졌다. 무제를 이은 성제 통치기에 왕씨 가문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왕씨 가문의 뜰에는 금은보화가 넘쳐 흘렀고, 각 집마다 노비만 1000명 이상을 거느렸다.

그중 단 한사람 왕망(기원전 45~기원후 23년)만이 독야청청했다. 그의 집안은 가세가 기울어 하루 끼니를 잇기 힘들 정도였다. 그의 전략은 '차별화'였다. 겸양과 공손, 예의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유학의 도를 깨달은 천재이자 청빈한 선비로 칭송받았다.

왕망은 38살에 대사마에 올랐지만 여전히 겸손했다. 그의 어머니가 병 났을 때 그의 집을 찾은 사람들은 나무 비녀를 꽂고 남루한 옷을 걸친 여인이 왕망의 부인 임을 알고 깜짝 놀랐을 정도다.

성제의 뒤를 이은 애제는 성인이 되자 친정을 강화했고 왕망을 쫓아냈다. 공교롭게 그의 둘째아들 왕획이 관노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아들에 자결을 명했다. 왕망을 흠모하는 사람들은 애제에 상소를 올려 왕망을 다시 도성으로 불러들였다.

그를 견제했던 애제가 제위 6년만에 죽고 왕망은 아홉살에 불과한 평제를 황제로 추대했다. 그는 주나라 성인으로 칭송받는 주공(周公)을 벤치마킹했다. 대신들은 그를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성인"이라고 추켜세웠다. 봉호와 봉지를 극구 사양한 뒤 마치못한 척 봉호만 받았다.

왕망은 장자인 왕우마저 죄를 물어 사형시켰다. 아들을 죽여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냉혹함이었다. 평제가 마시는 술에 만성독약을 타 놓고선 태연히 "황제 대신 죽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천명(天命)을 조작해 '안한공 왕망이 황제가 됨을 알린다(告安漢公王莽爲皇帝)'는 글이 새겨진 흰 돌이 나타나게 만들었다. 왕망은 섭황제에 이어 신(新)나라를 세우고 황제에 올랐다.

왕망은 중국 역사상 최고 수준의 인내력과 권모술수를 보여준 인물이다. 도덕군자로 행세하며 자신의 혈육까지 죽였다. 드물게 나타나는 음모가이자 권력게임의 최고수였다.

#고졸(부산상고) 출신, 막노동 등 다양한 사회 경험, 사법고시를 합격한 뒤 인권 변호사로 활약, 우여곡절 많은 정치생활, 예상을 뒤엎고 '민심'을 얻으며 제16대 대통령 당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지녔다. '야망'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실현하는 정치인이다. 1978년 법률사무소를 열어 인권변호사로 활약한 지 10년만인 88년 민주당 소속으로 부산에서 금뱃지를 달았다. 그해 국회 5공비리조사특별위원회에서 '청문회 스타'로 도약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는 깨끗함, 선명함, 진솔함이었다.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그의 재산은 8억1300만원에 불과했다. 그의 좌우명은 '자신에게 엄하고 타인에겐 너그럽게'였다. 감명받은 책으로 '레미제라블'을, 기억에 남는 영화로 '쉰들러리스트'를 꼽았다.

노 전 대통령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열풍을 일으켰다. 386 세대 뿐 아니라 청소년과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폭넓은 인기와 지지를 얻었다. 그의 대통령 당선은 풀뿌리·인터넷 혁명이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대통령 당선 초기 투박하고 정제되지 않은 말투로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그의 독설은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했다. '대의명분', '역사적 사명'이 모토였다. '참여정부'에 대한 기대는 열망을 넘어 광적인 양상으로 커졌다.

퇴임 후 봉하마을은 유명 관광명소가 됐다. 끊임없는 정쟁, 무차별적인 선긋기, 대립과 갈등 자초로 노 정권의 집권말기는 만신창이가 됐지만 국민의 애정은 여전했다. 그가 제시했던 이상과 꿈에 대한 공감이었다.

하지만 '박연차 게이트'는 그의 청빈함과 깨끗함을 송두리째 날려 버리고 있다. 믿었던 만큼 배신감은 더 크다. 사랑이 엎어지면 증오가 된다.

그럼에도 그는 부인과 아들을 희생시켜 자신의 실체를 가리려 한다. "나는 몰랐으니 죄 없다"고…. 특유의 '로또식 막판 신승'을 꿈꾸며 '진실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왕망은 제위에 오른 뒤 기존 제도를 뒤엎었다. 토지제도, 화폐 및 상업제도를 실시했다. 관직·노비·지방 이름도 몽땅 바꿨고 심지어 '고구려(高句麗)'를 '하구려(下句麗)'로 고쳐 불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바꾸기의 명수였다. 스스로 "대못을 박아 (정권이 교체돼도) 절대 못 바꾸도록 하겠다"고 천명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좌파정권답게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뜯어고치려 했다. 균형감각은 무시됐고 변화를 위한 변화가 이어졌다.

왕망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개혁 등이 실패하며 15년만에 잔인하게 살해됐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비리로 퇴임 1년반만에 최대 정치적 위기를 맞이했다. 권양숙 여사는 역대 영부인 중 두번째로 검찰에 소환됐고, 14년만에 전직 대통령이 소환될 전망이다. '노사모'가 다른 '노사모(노무현에 사기당한 사람들)'로 바뀔 판이다.

#권력과 비리는 동전의 양면처럼 가깝다. 권력자는 힘을 주체하기 힘들다. 역사상 시종일관 원칙과 모범을 유지한 지도자는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칭송한다.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이 성인이 되기를 바랐던 것일까. 그도 한갓 나약한 사람에 불과한데…. 하지만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홈페이지에 '탈출을 위한 묘수'를 새겨넣을 그의 모습은 왠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자판에서 '저의 집'(경상도 말로 아내)이란 단어를 추려낼 때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선긋기 전략'은 돌고 돌아 '노무현과 선긋기'라는 슬픈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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