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25시]법원, 기업 공익재단 설립에 제동거나

장학재단이 증여받은 주식에도 증여세를 물려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옴에 따라 기업의 공익재단 설립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주주가 재산을 출연해 비영리 법인을 설립한 경우 증여세를 물리도록 하고 있다. 기부 받은 주식이 기부한 기업 주식 총수의 5%를 넘을 때는 최고 60%까지 증여세를 물릴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이 공익재단 등을 통해 세금을 포탈하고 편법 증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기업이 세금포탈 및 경영권 편법승계와 무관하게 순수한 공익 목적으로 재단을 운영할 경우에는 증여세를 과세하지 않도록 법 적용에 예외를 뒀다. 이에 따라 법원은 그동안 성실한 공익법인에는 증여세를 물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려왔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지난주 이를 정면으로 뒤집는 판결을 내렸다. 재단이 공익사업을 한다고 해서 조세 부과를 예외로 한다면 법적 안정성과 입법권 침해의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다.

◇"성실공익법인이어도 증여세 내야…엄격잣대"
이 세금사건의 당사자는 생활정보지인 수원교차로를 설립한 황필상씨(64)다. 황씨는 장학재단을 만들었다가 이번 판결로 세금폭탄을 다시 맞게 되면서 장학재단을 존속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됐다.


그는 2002년 8월 수원교차로의 주식 90%(약 180억원 상당)와 현금 15억원을 기부해 구원장학재단을 만들었다. 구원장학재단은 지난해까지 1400여명의 대학생에게 22억원 넘는 장학금을 주고, 대학발전기금도 내는 등 80억여원을 장학사업에 썼다. 하지만 수원세무서는 2008년 황씨에게 증여세 140억원을 부과했다.

황씨는 이에 불복해 이듬해 소송을 냈고, 1심 재판부는 구원장학재단과 황씨의 손을 들어줬다. 순수한 장학사업을 위한 주식 증여를 증여세 부과의 예외로 인정한 것이다. 또 공익재단의 재원(財源)에 세금을 부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조세 정의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은 '법에 입각해 예외를 두지 않는 것이 조세 정의의 실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세금 때문에 장학재단에 출연된 주식 78%를 국가가 거둬 장학재단의 존속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매우 불합리한 면이 있을지언정 법 조항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공익사업을 성실하게 수행했더라도 출연자가 재단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경제력 승계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이같은 판결은 기업 주주들이 주식을 출연해 공익법인을 설립하는 움직임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공익재단에 세금폭탄, 국가에 기부하는 꼴"
국내 재벌기업들 대부분은 공익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범현대가 기업과 오너들은 5000억원을 출연해 사회복지재단인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구 한나라당 의원이 현금 300억원과 주식 1700억원 등 2000억원을 출연하고, 오너 가족 8명이 사재 240억원, 관계회사들이 법인 명의로 나머지 금액을 기부할 예정이다.

재벌의 공익재단에 대한 지분 출자는 오너 일가의 경영권 유지를 위한 수단이라는 사회적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법조계와 재계 안팎에서는 순수한 자선행위까지 막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기업인이 공익사업에 출연한 재산의 대부분을 국가가 가져가는 것이 과연 올바른 법 집행이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A변호사는 "황씨는 순수한 의도로 장학재단을 운영하다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며 "성실공익법인까지 지나치게 법 적용을 엄격하게 할 경우 공익법인의 설립 취지와 목적에 반하는 결과가 나올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 B씨 역시 "결국 기업이 국가에 기부를 하는 꼴"이라면서 "경영권 편법승계 제재를 위해 순수한 목적의 공익사업을 퇴색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