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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라 트라비아타' 저축은행

박종면칼럼 머니투데이 박종면 더벨 대표 |입력 : 2011.09.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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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오페라를 꼽으라면 아마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일 것이다. ‘라 트라비아타’는 이탈리아어로 ‘버려진 여자’, ‘정도를 벗어난 여자’라는 뜻이다.

오페라의 여자 주인공 비올레타는 파리의 고급 매춘부 출신으로 부자 청년 알프레도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남자 아버지의 반대로 헤어지고, 결국은 가난과 병마 속에서 쓸쓸하게 죽어간다.

베르디는 18세기 당시 유럽의 도시들이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소외된 여성들이 매춘부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시대상황과 그들을 잔인하게 버리는 부르주아들의 비정함을 고발한다.

이달 말 금융감독원의 경영진단 결과 발표를 앞둔 저축은행 업계는 지금 엄동설한이다. 현재까지의 상황은 85개 저축은행 가운데 16개 저축은행이 ‘정도를 벗어난 경영’을 했고 그 결과 획기적인 자구노력이 없을 경우 ‘버려진 저축은행’으로 전락할 처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저축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은 지난 3월말에만 해도 평균치가 우량은행 기준인 10%를 넘었다.

그런데 지난 6월말 기준으로 경영진단을 해 보니까 무려 16개 저축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이 5%미만이거나, 부채가 자산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6개사 가운데 절반이상은 BIS비율이 마이너스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자산건전성 분류가 강화돼 대손충당금 적립부담이 아주 커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저축은행이 확보하고 있는 부동산 담보물건에 대한 평가를 공시지가로 하느냐 감정가격으로 하느냐에 따라 수 천 억원이 왔다 갔다 한다. 하다못해 신용대출을 취급하면서 모집인에게 지급하는 수수료를 일시에 반영하느냐, 아니면 분기별로 안분 처리하느냐에 따라서도 수 백 억원이 달라진다.

정부당국은 부실저축은행 처리에 대해 단호하다. 특히 부산저축은행 비리에 얽혀 큰 상처를 입은 금융감독원은 대형이든 중소형이든 가리지 않고 제2의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부실 은행은 모두 도려내겠다는 자세다. 금감원은 저축은행 대주주 및 최고 경영자들에 대한 계좌추적까지 벌였다.

정치권도 여야 가릴 것 없이 부산저축은행사태와 자신들의 무관함을 입증하려는 듯 엄정 대응만을 주장하고 있다. 예금인출 사태와 선의의 피해자 속출, 금융시장에서의 혼란 같은 엄청난 파장과 관계없이 저축은행 구조조정은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 돼 버렸다.

생사의 기로에 선 저축은행들은 정부당국의 경영진단과 후속의 구조조정에 대해 ‘저축은행 죽이기’라며 반발한다. 그동안의 기준과 관행을 완전 무시한 채 갑자기 가장 보수적인 지침과 잣대를 들이대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는 항변이다.

제1금융권의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중소기업 및 영세사업자, 저신용의 서민들과 거래하는 저축은행에 대해 은행권과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그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부실 금융기관으로 낙인찍는다면 어떻게 저축은행이 존립할 수 있겠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자구차원에서 자회사나 부동산을 매각하려 하지만 지금처럼 한꺼번에 매물이 쏟아지는 상황이라면 단기간에는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렇지만 저축은행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한 저축은행 CEO는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누구도 저축은행의 얘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으며, 아예 만남 자체를 거절한다고 토로한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 비올레타는 “이 버려진 여자의 무덤에는 꽃 한 송이도 뿌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탄식하면서 쓸쓸하게 죽어간다. 지금 저축은행 신세가 바로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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