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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리오시티'가 화성착륙한 날 '로봇과 프랭크'를 봤다.

[김재동의 틱, 택, 톡]

김재동의 틱, 택, 톡 머니투데이 김재동 기자 |입력 : 2012.08.0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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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봇과 프랭크'의 한장면.
영화 '로봇과 프랭크'의 한장면.

6일 공교롭게도 ‘로봇과 프랭크’란 수입영화의 기술시사를 볼 기회를 얻었다. 공교롭다는 것은 이 날이 바로 화성탐사로봇 ‘큐리오시티’가 화성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세계인을 환호하게 한 로봇이야기를 접한 날 ‘프랭크’란 한 개인과 연관 있을 로봇이야기를 본다는 생각이 공교롭게 느껴졌다.

영화는 치매 앓는 늙은 도둑과 도우미 로봇의 이야기를 다룬 코믹드라마였다. 제이크 슈레이더 감독이 연출했고 ‘나인스 게이트’ ‘컷스로트 아일랜드’등에 출연, 국내 팬과 친숙한 프랭크 란젤라와 ‘델마와 루이스’ 의 수전 서랜든, ‘슈퍼맨 리턴즈’의 제임스 마스던, ‘반지의 제왕’의 리브 타일러 등이 출연했다.

시점은 가까운 미래.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프랭크(프랭크 란젤라)는 전직 도둑이다. 치매증상이 있어 깜빡깜빡 하면서도 도벽만은 잊지않은채 무감동한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그런 프랭크에게 아들이 도우미 로봇을 가져온다. 프랭크는 마뜩찮지만 거부하면 요양원에 보낼것이란 아들의 협박에 로봇을 받아들이고 만다.

영화는 참견장이 로봇에 적응해 가는 프랭크를 코믹하게 보여준다. 로봇이 치워준 깔끔한 집에 익숙해지고 자명종처럼 보채는 기상시간과 아침산책에 익숙해졌으며 텃밭에서 키운 야채찜을 즐겨 먹게 된다. 프랭크의 변화에는 로봇의 숨겨진 재능도 한 몫 한다. 로봇은 뜻밖에도 빈집털이 비장의 기술인 자물쇠 따기에 ‘인부(人賦)의 소질’(?)이 있었다.

프랭크는 로봇을 설득(?)해 절도에 나서며 살아있음의 활력을 느낀다. 체험실로 개조되는 도서관에서 고전 ‘돈키호테’를 훔쳐내 어쩐지 끌리는 늙은 사서(수잔 서랜든)에 선물하려한다. 도서관을 없애고 체험실로 만들려는 ‘거지깽깽이’를 골탕먹이기 위해 보석을 훔쳐내기도 한다. 모두가 파트너 로봇의 도움을 얻어서다.

이 돈 안들인 영화는 집 3채와 숲길 등을 오가며 위트있는 웃음을 깔고 그렇게 흘러간다. 얼핏 평이할 수 있다. 하지만 메시지는 간단치않다.

우선 영화가 전제한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이란 질문이 던져질 법하다. 시사가 끝난 후 우연히 합석한 로봇제작업체 ㈜로보빌더의 김준섭이사는 “현재의 기술력이라면 이 자리의 우리가 극중 프랭크 나이가 될 때 쯤 프랭크처럼 로봇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가 휴대폰으로 보여준 혼다 개발 ‘아시모’란 휴머노이드 로봇과 KAIST가 개발한 ‘휴보’의 동영상은 여지없이 극중 프랭크의 로봇을 닮아있었다. 그는 현재 이 분야 저 분야에서 개발된 기술들만 접목시킨다면 영화속 로봇을 만들기는 금방이라고 말하면서 ‘심심이’라는 어플을 보여준다. 장난삼아 “너 지금 뭐하니?”하고 문자로 물어보니 심심이가 섬뜩하게 말한다 “너를 지켜보고있어”. 그 기술이 접목되면 바로 말하는 로봇을 만들 수 있단다.

김이사는 일본에서 이미 치매환자 치료용이나 외로운 독거노인들의 친구로 자리 잡았다는 ‘파로’란 이름의 로봇도 보여준다. 파로는 스킨십과 소리, 빛에 반응하는 바다표범 로봇이다. 이름을 부르면 바다표범 소리를 내는가 하면 쓰다듬으면 눈을 떴다 감았다하고 두 다리와 꼬리도 흔든다. 젖꼭지를 주둥이에 물리는 식으로 충전되는 이 로봇은 감성치료에 효과를 보고 있단다.

어쨌거나 극중 프랭크는 로봇대신 아버지를 돌보겠다고 찾아온 딸 리브 타일러를 거북스러워한다. 비록 딸이지만 사람인 관계로 감정을 주고받는 일이 피곤해 보인다. 배려가 불편하고 그래서 심통을 부렸더니 상처받은 딸이 또 안쓰럽다.

감정의 낭비가 필요 없다는 점에서 프랭크의 로봇도, 파로도, 심심이도 훌륭한 반려라 할만하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사람간의 피곤한 관계보다, 뒤처리 골치 아픈 반려동물보다 프로그램과의 일방적 교류에 의지할지 모르겠다.

여기서 영화는 또 하나의 메시지를 전한다. 대충 ‘존재한다는 건 기억한다는 것’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존재가 되고, 누군가는 나의 기억 속에서 존재가 된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한다. 이를 위해 감독은 프랭크의 치매와 로봇의 메모리를 활용한다.

경찰의 압박에 몰린 프랭크는 범죄현장의 기록이 내장된 로봇의 메모리를 삭제해야 될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그 순간은 허망하게 지나간다.

요양원에서 다시 되찾은 가족들과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프랭크의 눈에 이 사람 저 사람을 따라다니는 로봇들이 보인다. 리셋된 프랭크의 로봇도 끼어있을지 모른다. 프랭크의 입가에 설핏 씁쓸한 웃음이 스친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감독은 끝까지 프랭크의 로봇에 이름을 주지도 않았고 그 로봇이란 ‘프로그램’을 교감의 대상으로 격상시키지도 않았다.

사람사이에 부대끼는 일은 참 피곤한 일이다. 친구건 애인이건 가족이건. 그래서 피곤하지않은 프로그램들이 각광받는다. 그러다보니 사람간의 부대낌에 대한 스트레스는 더 커지고 프로그램에 대한 의존도는 따라 더 커진다. 그래서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로봇을 반려로 삼을지 모르겠다. 언제라도 리셋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동영상출처=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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