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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雜s]폭풍우 속 100㎞ 울트라마라톤 뛰어보니…

50雜s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입력 : 2013.04.11 11:40|조회 : 1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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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제주 국제 울트라마라톤대회 100킬로미터 및 200킬러미터 부문 참가자들이 6일 새벽 6시 제주시 탑동광장을 출발하고 있다.  [사진제공=양성규 씨]
↑ 2013 제주 국제 울트라마라톤대회 100킬로미터 및 200킬러미터 부문 참가자들이 6일 새벽 6시 제주시 탑동광장을 출발하고 있다. [사진제공=양성규 씨]
4월6일 새벽 4시30분. 제주 탑동공원 앞 화이트비치 호텔.

'모닝 콜'이 울리기 전부터 사실 두 귀는 이미 깨 있었다. 차창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제주특산 울트라 파워 초강풍 소리와 유리창에 충돌하는 빗방울의 흐느낌...

'망했다.' 회사 반차 내고, 비행기 포인트 까고, 숙박비 들여가며 바다건너 왔건만, 첫 도전이 이렇게 허무하게....
'살았다.' 말이 100킬로미터(K)지, 주말에 조금 연습하고 3주전 서울국제 마라톤 풀코스 뛴 거 믿고 오긴 왔지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매몰비용'은 빨리 포기할수록 남는겨...

강풍경보에 호우경보가 내려진 제주. 아무리 '인간의 체력을 시험하는...'어쩌고 대회라지만, 이런 날씨에 바깥에서 뭘 한다는 건 제정신 가진 사람들로선 말이 안되는 거다. 사고라도 나면 주최측도 책임소재에서 자유롭지 못할 터이고, 대회는 취소되겠지...난, 뛰고 싶었지만 타의에 의해 못 뛰게 되는거야. 비겁하진 않았지, 암...

전날 잠들기 전, 바닥에 깔아둔 전투용품들('1041 김준형'이 적힌 배번을 달아둔 러닝복, 배낭, 보관용 가방)을 내려다보며 창밖으로 호텔 바로 앞 대회 출발지점을 쳐다봤더니...이런 된장, 이미 참가자들이 단체로 버스를 타고 와서 몸들을 풀고 있다.
어제 밤, "내일 새벽 날씨가 좋지 않을 터이니 개회식은 여기 호텔(뉴월드)로비에서 치르고, 내일 새벽엔 최대한 빨리 출발하겠습니다.."라고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부터 일찌감치 이 인간들은 '취소'라는 건 모르는 종자들이라는 걸 눈치챘어야 했다.

'장7기3', 자고로 겨울 운동은 장비가 70, 기술이 30이랬는데, 체감온도는 영하권이련만, 일기예보상의 '최저 12도 최고 14도' 숫자만 보고 반바지 타이즈에 반팔하나 딸랑 가져온 이 한심한 화상아. 그나마 몇달 전에 후배가 모임에서 만들었다면서 하나 상납한 방수 바람막이를 가져온 게 다행이었다.
'지피지기', 제주도 비바람이 이렇다는 건 좀 알고 왔어야 하는데, '4월'을 믿은 게 패착이었다.

어쨌든, 지금 이런저런 생각할 시간이 없다.
일단 나가자. 그래도 너무 무대책인거 같아서 몸에 '방수처리'를 하기로 했다. 어제 약국에서 샀던 바세린 한통을 온몸에 쳐 발랐다. 수십 킬로미터를 몇 시간 뛰다보면 예기치 않았던 곳에서 치명적이 고통이 찾아온다. 젖꼭지가 웃옷에 쓸려서 양 꼭지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뛰는 엽기도 생기고, 겨드랑이가 쓸리고, 배낭을 맬 땐 쇄골과 엉덩이 가죽이 닳아서 피가 난다. 심지어, 익숙지 않은 옷을 입고 좀 더 오래 뛰면 두 가죽이 맞부딪히는 똥고까지 탈이 난다.
바세린은 그런 곳에 바르려고 샀는데, 임시방변으로 방수와 방한용으로 써야 하다니...
몸에 두껍게 바세린을 쳐바르고 거울을 보니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게 제법 몸짱 포스가 풍겨나오네.(배는 빼고). 바쁜데 헛생각은...후다닥 짐 챙겨서 행사장으로 뛰쳐나갔다.

이미 출발 10분전.
주최측인 한국울트라마라톤연맹(KUMF)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에게 짐가방을 떠안기듯 맡기고 출발선에 섰다. 바로 옆 방파제에선 파도가 금방이라도 넘쳐올듯 하는데, 이 인간들, 정말 제정신인가 싶다. 아무도 "이런 날 대회를 할 수 있나요?" 라든지 "기왕 왔으니까 10킬로정도만 몸풀고 가죠, 아쉽지만..." 이런 소리를 하지 않는다. 1회용 비닐옷들 걸치고 나타나선 웃고 난리다. 국회의원 출신중에 유일하게 울트라를 뛰었다는 유준상씨를 비롯, 두어 명이 간단히 몇마디 하더니 5,4,3,2,1...'출발'이다.

일단 출발했으니, 50킬로미터까지는 가봐야겠다. 집에서도 나들이 삼아 동두천까지 70킬로미터 정도는 쉬엄쉬엄 가봤고, 2주전엔 60킬로미터 LSD(오래 천천히 멀리 뛰기) 해봤으니, 아무리 날씨가 험악해도 그정도는 갈수 있을테니..어차피 50킬로미터까지는 중간에 포기해도 곧바로 돌아올수도 없다. 회수차가 50킬로미터 지점에서 한꺼번에 사람들을 서귀포까지 실어간다니..

1~2킬로미터까지는 물웅덩이도 피해 가며 최대한 발을 보호하려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포기했다. 어차피 철퍼덕 거리는거 막을 방법이 없다면 차라리 맘 편하게 뛰는게 낫다. 다행히 바람막이가 명품 브랜드도 아니고 새로 출시한 국산 옷인데 나노 소재로 만들어서인지 가볍고 방수가 잘된다(김**한테 꼭 고맙다고 이야기해야겠다). 드러난 맨살도 바세린 효과가 조금은 있는 것 같다.(물론 나중에 보니, 나노도 바세린도 한계가 있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견딜만 했다. 10K 20K 30K 40K...달릴때 속도는 일정하게 시속 9~9.5km를 유지했다. 바람이 너무 강해 CP(Check Point) 텐트를 세우지 못해 길가 가게집 처마 아래에 자원봉사자들이 식탁을 펴고 물과 음식을 준비해뒀다. 그러다보니 거리도 10K 간격이 아니고 들쭉날쭉이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제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는 자원봉사 아줌마들(아마 대부분 아저씨 잘 못 만나서 달리기의 구렁텅이로 휩쓸려 들어왔을..) 아저씨들한테 미안하고, 또 고맙다.

드디어 50K 지점, 버스들이 모여있고, 트로피도 몇개 있고, 웅성웅성 거리는게 보인다.
물도 마시고, 다리도 풀면서 '더 갈까, 그만 갈까'를 고민할 기회가 있을줄 알았더니, 진행요원이 "50K 통과, 쭉~ 직진하세요.."라고 외친다. 날씨때문에 50K지점에 CP를 안만들고 50K 대회 참가자들만 시상식하고 되돌아가는 거였다. 쭉~ 가라는데, '난 못가요'라고 외칠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젠 정말로 100K까지 쭉 가야했다.

55K 지점 왼쪽에 식당이 보였고, 러너들이 빨려 들어가듯 그 집으로 직행했다. 대회 사이트 게시판에서 읽었던 그 밥집이었다.
진짜로 이렇게 뛰다가 밥들도 먹고 그러는구나. 풀코스 뛸땐 출발 두어시간 전에 된장국에 3분의1공기 정도 밥 말아먹거나, 바나나 한개 정도 먹고 마는데.
식당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집, 1년에 한번 제주울트라 있는 날은 '대박'이다. 100K 주자 307명, 200K 주자 167명중 절반은 이집에서 밥을 먹고 가는 것 같다. 더구나 오늘처럼 비바람 부는날, 특별한 관광지도 아닌 시골 식당에 하루 수백그릇 점심 매출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인지 밥 한공기 더 달라는 말에 “마라톤 하는 아저씨가 저렇게 밥을 많이 먹고 어떻게 뛰남”하고 혼잣말로 궁시렁대는 주인집 딸의 얼굴에 싫은 기색이 없다. (근데, 그 집 딸 말마따나, 어떻게 저렇게 먹고 뛰나 싶을 정도로 밥을 맛있게 두 그릇 뚝딱 비우고 뛰러 나가는 아저씨 보니 신기하다.)
여섯시간을 비바람 속에 달려와 먹는 순두부찌개, 그 맛을 알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절반 먹고 숟가락을 놓기가 너무너무 아쉬웠다.

그러고 보니 제주시가 지역민방 같은데랑 손잡고, 제주울트라 대회를 매년 중계하면서 코스 곳곳에 있는 관광명소 소개하고, 각 동네 스토리도 전달하는 특집편성을 하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울트라 마라톤을 하루중일 중계할 수는 없으니, 출발때 잠깐 비추고, 정규방송 중간중간 매시간마다 5~10분정도 주자들 잠깐 보여주고 “지금 지나고 있는 대정마을은 일찌기….주요 관광지로는…지금 오시면 할인혜택은….”이런식으로 소개를 하면 제주울트라가 뉴욕마라톤이나 보스톤마라톤처럼 제주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고 관광객을 불러모을수 있을텐데…그렇게 독특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지역 언론이 살아남을수 있는데…
직업병이다. 지 몸뚱아리 하나 못 가누는 상황에서 콘텐츠니 지역언론이니 하는 남걱정이나 하고 있고.

준비해둔 여벌 양말을 갈아신었다. 풀코스 이상 장거리엔 발가락 양말이 최고다. 특히 숙달되지 않은 러너라면 발가락양말 절대 강추다. 평상시 신고 다니다가 방바닥에 앉는 식당같은데 가면 영 품위가 망가지는 느낌이지만, 대통령도 신던 양말인데 어떤가, 더구나 달리기할 때 누가 보는 것도 아니고.

옮기기 싫은 발걸음을 다시 옮기는데,이빨이 덜덜거릴정도로 춥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몸뚱아리 시동을 한번 껐다가 다시 가열하는건 고통스런 일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퍼지지 않고 걸어가면서 물도 먹고 간식도 먹는게 좋지만, 100K에선 그말도 말짱 꽝이다. ‘선수급’이 아니라면 배도 채워야 하고, 10킬로미터마다 서서 바나나 초콜릿 토마토 이런거 먹어둬야 뱃심으로 달릴 수 있다.

망할 비바람은 더 거세진다. 어떻게 하루종일 이럴수가 있나.
아무리 제주도라지만. 아니, 그냥 ‘계속’ 그러는게 아니고 더 심해진다. 저절로 욕이 나온다. 어차피 듣는 사람도 없으니 CB CB 18 18이 절로난다.
손에 차고 있는 GPS에 따르면 밥먹었던 식당이 55K 지점이었다. 그런데, 4K가까이 뛴 다음에 나타난 CP의 자원봉사자가 “여기가 55K 지점”이라고 한다.
“이게 뭔 소리여” 작년 큰 맘 먹고 마련한 간지 나는 '나이키 GPS'가 실제 거리와 4K나 차이가 나다니. 차고 뛰는 사람 기분 좋으라고 실제 뛴거리보다 멀게 나타내주는 배려? 믿고 있던 거리보다 4킬로미터를 덜 뛰었다는 사실이 주는 절망감은 말할 수도 없다.
망할놈의 시계…이 녀석은 결국 70킬로미터 인가를 지나면서 ‘삐릭삐릭’ 비명소리를 내고 ‘LOW BATTERY’라는 유서를 깜빡거리더니 전사하고 만다.
100K는 사람에게만 ‘한계초과’가 아니고, 나이키 GPS도 감당하기 힘든 거리였다. 어제 밤새 빵빵히 충전했는데, ‘9시간 정도 지속된다’는 사용후기를 본 적이 있는데 거짓이 아니었다. 배터리기술의 한계다. 삼성SDS제품일까 LG화학 제품? 아니면 중국산?
회사에 알려주고 싶다. GPS가 필요한 러너라면, 최소한 컷오프 시간인 15시간은 지속돼야 상품성이 있는 거라고.
↑ 2013 제주국제울트라 마라톤 참가자들이 비바람을 뚫고 역주하고 있다. [사진제공=양성규 씨]
↑ 2013 제주국제울트라 마라톤 참가자들이 비바람을 뚫고 역주하고 있다. [사진제공=양성규 씨]

10K쯤 더 뛰었을까…밥을 먹고 났더니 아랫배가 묵직해진다. 사람 생활에서 먹는 것 만큼 중요한게 싸는거다. 어느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준 삶의 지혜 하나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화장실 가는걸 습관으로 해두면 망신당할 일이 없다”. 얼마나 공감가는 말인가.
반기문 총장 스케줄에 이런 게 있다. ‘SG TIME’
SECRETARY GENERAL TIME의 약자다. 뭐냐고? 화장실 가는 시간이다. 세계 대통령이 좀 바쁜가. 하루종일 쉴 틈없이 스케줄을 소화하다보면 화장실 갈 시간이 없다. 집무실에서 손님 맞는 것보다 바깥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더 그렇다. 그래서 몇분간의 여유를 스케줄에서 비워서 화장실을 갈수 있게 하고, 동선상의 화장실도 미리미리 파악해두라고 반총장이 직접 ‘SG TIME’이라는 '암호'를 만들어 스케줄 표에 넣도록 했다.(이건 뉴욕에 있을때 반총장에게 직접 들은 말이니 100% 사실이다)

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뛰기전에 속칭 '1번' '2번'을 처리해두지 않으면 낭패본다. 달리다가 주로상에서 화장실 찾기도 쉽지 않고, 주유소 같은데 가서 줄서서 일보다 보면 천금 같은 몇 분이 날아간다.
몇 년전 하이서울 청계고가 철거 기념 마라톤때도 도로 한가운데에 누군가가 기념비를 쌓아둔 걸 본적이 있다. 엘리트선수도 예외가 아니다. 88올림픽땐 아프리카 어느나라 선수가 달리면서 고구마를 출산한 적이 있다.
인터넷에도 달리다가 설*한 마라토너 사진이 떠돌아다니는데, 우리 딸네미가 한때 이걸 집PC배경화면으로 한참동안 사용해서 집사람을 기겁하게 하기도 했다.

지저분한 이야기 쓰려다보니 사전변명이 필요해서 구구절절 길어진다.
‘이러다가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라는 생각에, 시선이 전면의 도로보다는 길가로 자꾸 돌려지는데, 거짓말 처럼 길 옆에 공중화장실이 보인다. ‘한국남부발전 풍력센터’인가 하는 건물 근처에 풍력발전용 풍차들이 여럿 서 있는데, 아마 그거 보러 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화장실인 듯 했다. 실내도 쾌적하고 깨끗했다. 정말 대한민국 화장실 만세다. 제주시 공무원들 댕큐다. 비록 휴지는 없었지만…
후배에게 얻은 바람막이 점퍼, 바세린과 더불어 이번 대회 준비물의 ‘3대 하이라이트’는 휴지였다. 울트라대회 참가자나 장거리 달리기 하는 사람들이 배낭을 짊어지고 뛰어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비상시’에 필요한게 있기 때문이다.
(출발할 때 끼고 있던 장갑이나 양말이 사라진 채 골인하는 아저씨들이 가끔 있다 ㅎㅎ)

이제 70K..울트라는 70K이후 부터가 진짜라고 그러더니, 정말로 70K 가까이 오면서부터 페이스가 급속도로 떨어진다. 1K라는 물리적 거리는 똑같은데, 심리적 거리감은 몇배로 늘어난다. 70K CP에 도착할때쯤, 다시 ‘포기’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옆에 씩씩하게 달려가던 양반이 “난 이제 그만 접을까 생각중입니다”라고 한다. ‘아, 남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달리고 있구나, 겉으론 다들 고수들이고, 나만 흔들리는 갈대인줄 알았더니’. 사방은 온통 논밭이다.
“아니, 지금 그만두면 어떻게 가시려구요?” “택시 부르든지 해야죠”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실은 나도 지금 포기하면 어떻게 돌아갈까 하는게 궁금하기도 해서 물어본 말이었다. 이 분, 그 뒤론 다시 보지 못했다.

한경읍 고산면 해안도로, 바람이 정말 장난 아니다. 나중에 뉴스를 검색해보니, 이날 이 동네 최대풍속이 초속 31.5미터, 초강력 태풍 볼라벤 수준이었다.
풀코스를 열 댓번 겪어 봤고, 2월 동장군 추위에 금강산 칼바람 맞으면서 바람보다 더 싸늘한 인민군들 경계아래 철조망 사이에서 105리를 뛰어보기도 했지만, 거짓말 좀 보태서 45도로 뛰는 마라톤은 처음이다.
서쪽 해안에서 몰아치는 강풍때문에 앞으로 똑바로 나가기 위해 우측 45도로 뛰어야 하고, 맞바람을 맞을땐 전진하기 위해 몸을 45도 앞으로 숙여야 하고, 도로 방향이 바뀌어 뒷바람 불땐 본의아니게 초스피드로 날려가지 않기 위해 뒤로 몸을 45도 젖혀야 하는..,’45도 마라톤’.

앞서 가던 늘씬한 아줌마가 결국 선두와 후미를 오가며 에스코트를 하던 대회진행차량을 불러세우더니 그 속으로 사라졌다. 읍내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한 아저씨는 ‘파이팅, 저는 버스타고 갑니다’하고 시내버스에 올라탄다. ‘난 왜 저런 용기가 없을까’

70K CP가 가까워 오면서 나란히 뛰게 된 ‘아저씨’. “젊은 사람이 뭐하러 이런데 와. 젊을땐 사업하고 직장나가고, 돈벌어야지…이런건 나처럼 늙어서 힘없을 때 건강관리하고 테스트 해보려고 하는거지…”
이러신다. "이번 뛰고나면 '108번뇌 울트라 대회'(불교 조계종 주최)도 하고, '성지순례 울트라'(천주교 주최)도 할거지?" 그야말로 종교와 지역을 초월(울트라)한 달림이다.

연세를 여쭈니 67세…나보다 스무살 위다. 나도 이젠 ‘젊다’는 말 들으면 반가운 나이인데, 그러고 보니 이 대회 참가자들 중엔 한눈에 봐도 내가 한참 영계다. 어제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보니 하나같이 50대는 넘어 보였다. 풀코스 마라톤 대회를 가 봐도 40대후반에서 50대가 주류를 이루지만, 울트라는 고령화 정도가 더 심하다. 살이 너무 빠져 실제 나이보다 더 쭈그러져 보이는 마라톤의 최대 부작용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10K, 하프, 풀 거쳐서 울트라 도전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때문에 그런 건지, 삶의 무게가 그 정도는 쌓여야 울트라를 뛸 자격이 있는건지, 길거리 말고는 405060들이 이렇게 오랜시간 눈치 안보고 싸돌아다닐 곳이 없어서 그런건지…

산방산 한참 못미쳐 있는70K CP.
미용실 앞에 물과 방울토마토가 마련돼 있었지만, 온기가 그리운 러너들은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가 아예 소파까지 차지하고 진을 치고 있었다.
전형적인 '뽀글이 파마' 하면서 우주인 헬멧 같은 미용기계를 머리에 덮어쓰고 있는 할머니가 좋은 구경 났다는 표정으로 거울을 통해 시선을 던진다. 그 손님에게 신경써야 할 미장원 사장 아줌마는 본분도 잊은채 ‘제 정신들이 아닌’ 달림이들에게 커피를 공짜로 연신 타주고 있다.
소파에 퍼져 있는 얼굴, 낯이 익다. 고등학교 동창 안**. 참가자 명단에 ‘광주 안**’가 있을적부터 그일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제주도 시골 미장원에서, 졸업후 30년이 근 다 돼서 이렇게 만나다니. 세상 참. 이미 울트라도 여러 번 뛰고 국토종횡단까지 다 치른 베테랑인 그 친구와 대회 끝난뒤 술이라도 한잔 하자고 인사를 나누고 먼저 발길을 재촉했다.(결국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70~90K는 죽음이었다. 다른 울트라 러너들도 그렇다고들 한다.
혹자는 100K를 열너덧 시간에 들어오면 평균 시속 6.5킬로미터라는건데, 풀코스를 4시간 안에 들어오는게 더 힘들지 않냐고 한다.
물론 엘리트선수나, '서브3'(풀코스 3시간 이내 기록)러너처럼 풀코스를 ‘단거리’처럼 속도를 내는 주자들은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어지간한 아마추어 러너들은 아무리 페이스조절하고 뛰어도70K가 되면 육체와 정신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작심하고 뛰는 풀코스 대회에서 35K정도면 나타나는 현상과 비슷한 것 같다). 처음부터 시속 6.5킬로미터 속도로 한번도 안 쉬고 100K 걸을 자신이 있으면 그렇게 하겠는데, 그건 100% 불가능이다.

90K가 넘어가면서 ‘이젠 억울해서 포기못한다’는 생각에 그제서야 완주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이미 어둠이 내린 서귀포 시내.
배낭에 후면 경고등 깜빡이를 켜고, 걷는지 뛰는지 모를 발걸음을 옮기는 주자들을 시민들이 힐끗힐끗 바라본다. ‘쯧, 이 날씨에 뭔 짓들인지 원’ 하는 표정들이 읽힌다.
이미 GPS시계는 죽었다. 시계는 없는게 차라리 편했다. 어차피 시계를 본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는 거 같았기에.
앞사람들이 걷는다. 이정도면 걸어도 제한시간(15시간)내에 들어가나보다 하고 나도 뛰는 시간보다 걷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길바닥을 보니 95K라고 씌여 있는데, 시간은 얼추 밤 9시가 다 돼 가는 것 같다. 앞에 가던 커플이 뛰기 시작한다. 정신이 번쩍 든다. 아직도 내 몸에 에너지가 남아 있었다니…(기껏 시속 7~8k정도 속도였겠지만) ‘바람처럼’ 내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뛰었다. 멀리 깜빡이는 빨간색 점멸등, 그 밑에 희미하게 보이는 기둥과 하얀 지붕. 내 평생 본 운동경기장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은 단연코 서귀포 경기장이다.

14시간 49분…내 뒤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제한시간 15시간내 완주자 중에선 거의 문닫고 들어온 듯 했다. (뒤에 확인한 공식기록상 100K 참가자 307명 중 44%인 136명이 완주했고, 완주자 가운데 나는 119번째로 들어왔다)

비바람을 피해 화장실 한켠에 마련된 간이 식당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건네주는 설렁탕을 먹으며 ‘미친 짓’의 막을 내렸다. 옆 사람이 옷을 갈아 입는데, 평상복이 아니라 또 러닝복이다. ‘후반부’ 100k를 뛰기 위해 준비하는 ‘더 미친 사람’이다.
200k에 출전한 167명, 이들이야말로 진짜 ‘골수’들인데,이들도 오늘 같은 날씨엔 초죽음이 됐다. 서귀포 경기장에서 다시 제주를 향해 성산 일출봉 방향으로 출발한 사람들은 30여명, 밤엔 눈까지 온다는데 몇 명이 제주 탑동공원에 골인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진심으로 말리고 싶었지만, 어쩌랴….자신이 선택한 길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다시 강풍 속으로 떠난 그들이 맘에 걸렸다.

“살아는 있수?” 하는 와이프. “왜 할아버지가 하지 말라는 짓을 자꾸 하고 그래, 내가 말 안듣는건 순전히 아빠 한테 물려받은거야,”하는 딸, “힘들었겠다”하는 아들, 그리고 "몸 조심해라잉,,뭔 넘의 그런 마라톤이 있다냐.."하시는 아버지…그 목소리들을 수화기 너머로 들으며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집에 돌아와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다 보니 언젯적 일인지 아득하다.
낮에 장모 생신자리에서 소주도 마시고, 걸어다니는데 큰 문제가 없을만큼 다른데는 멀쩡한데 황당하게 복숭아뼈가 퉁퉁 부어 있다. 해안쪽에서 불어오는 강풍으로 오른쪽 발이 똑바로 앞으로 뻗지 못하고 자꾸 옆으로 날아가 10여시간을 왼쪽 발목을 치는 바람에 이 지경이 된 것이다. 참 별놈의 부상도 다 당해본다.

덧붙이자면, (아마 이름 있는 소설가중에 울트라를 뛰어본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때...'라는 책에서 울트라를 뛰고 나니 팔이 욱신거렸다고 했다. 발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때 팔의 반동을 이용해 나가다보니 그랬다는거다. 나는 팔을 아무리 휘 저어도 앞으로 잘 안나가던데, 역시 하루키가 달기기도 한 수 위다.

여하튼, 장거리를 뛰고나면 별 희한한 데가 아파오긴 한다. 하기야, 100K를 가는데, '백마고지에 낮잠 자는 근육'이 있을 수 없다.
복숭아뼈 말고 황당하게 욱신거리는 또 다른 곳이 양손 검지손가락이다. 손이 하도 시려워서(비바람 앞에선 장갑이고 뭐고 소용없다), 바람막이 소매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손이 밖으로 노출되지 않게, 열 몇시간을 소매 끝을 꼭 부여잡고 있었더니 손가락 끝이 저리는 거다. 지금도 약간 감각이 덜 돌아왔다.

↑ 출발이후 17.5킬로미터 지점의 필자.[사진제공=양승규씨]
↑ 출발이후 17.5킬로미터 지점의 필자.[사진제공=양승규씨]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 한 김에...많은 사람들이 풀코스나 울트라를 달릴때, 그 오랜 시간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한다. 사색할 시간이 많아서 철학자 되겠다느니, 아이디어가 마구마구 솟겠다느니, 소설한권 쓰겠다느니...
실제로 풀코스 한번 뛸때마다 그날의 주제를 한 아이템씩 정해서 생각을 정리한다는 '초절정 고수' 이야기도 들어봤지만 '내 경험으론' 말짱 황이다.
내 경험만 이야기하면 믿지 않을테니,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렇다고 했다.
달리기와 걷기의 차이는 그거다. 풀코스나 울트라 달릴땐 시간이 갈수록 아무 '잡'생각도 할 수 없다. 그저 달리는것, 내 몸이라는 '기계'가 잘 작동하도록 하는 것, 그래서 목표지점까지 목표시간내에 들어가는것...그것만이 목표다.

몇시간동안 동물적 본능에 충실할 수 있는 것,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 머리를 비우는 것, 그리하여 마음도 내려놓는것...요즘 말끝마다 달라붙는 '힐링'이 바로 그런거 아니겠는가.
'내가 미쳤지'를 수도 없이 되뇌이고선, 다음날이 되면 다음 주로를 머릿속에 그려 보는...그게 달리기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주절주절 적다보니 '완주기'도 울트라가 돼 버렸다. 당초 페이스북에 썼던 글이지만, 인내심을 갖고 읽은 몇몇 '독자'의 응원에 못이기는 척 개인 칼럼 이름을 빌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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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로그인method888  | 2013.04.12 10:07

정말 재밋게 잘 읽었습니다.대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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