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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크릿' 화려한 캣워크 뒤엔 이런 비극이

[김신회의 터닝포인트]<51>'빅토리아 시크릿' 창업자 '男心' 잡으려다가 역풍...끝내 자살

김신회의 터닝포인트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입력 : 2014.12.08 07:40|조회 : 18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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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세계적인 기업들이 겪은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일종의 '케이스스터디'라고 해도 좋겠네요. 위기를 황금 같은 기회로 만드는 재주를 가진 글로벌 기업들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는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사진=블룸버그
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는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사진=블룸버그
남자들에게 여성 속옷가게에 가는 것만큼 민망한 일이 또 있을까. 남자라면 란제리 가게에 가느니 차라리 전쟁터로 향하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란제리 매장에서 남자들은 어떻게든 자신이 '변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아내의 속옷을 사러 백화점 란제리 매장을 찾은 로이 레이먼드도 마음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남자들이 눈치 안 보고 갈 수 있는 란제리 매장을 고민하다 1977년에 직접 가게를 차렸다. 세계적인 란제리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Victoria's Secret)의 시작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그의 나이 30살 때였다.

첫 매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의 한 쇼핑몰에 들어섰다. 지금은 슈퍼갑부를 쏟아내는 IT(정보기술) 메카 실리콘밸리의 심장부가 됐지만 그때만 해도 캘리포니아의 한적한 교외였다. 매장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규방처럼 꾸몄다. 어두운 색의 목재와 빨강 벨벳 소파, 실크 커튼 등으로 장식한 매장은 번쩍번쩍한 기존의 백화점 란제리 매장과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엄격한 빅토리아 시대상 이면의 '비밀'(시크릿)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은행과 친지들로부터 8만달러를 빌려 시작한 사업은 첫해 50만달러를 벌어들이는 성공을 거뒀다. 인터넷이 없었던 시기에 카탈로그 우편주문 사업을 시작한 것도 매출을 늘리는 데 큰 몫을 했다.

하지만 1982년께 레이먼드의 파산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결국 같은 해 미국 의류회사 '더 리미티드' 창업자인 레슬리 웩스너에게 회사를 100만달러에 넘겼다. 당시 빅토리아 시크릿은 6개 매장과 42페이지의 카탈로그로 연매출 600만달러를 올리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레이먼드가 남성을 위한 마케팅에만 집중한 게 패착이 됐다고 지적한다. 여성들의 속옷 서랍장 대부분을 채우는 것은 결국 여성 자신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남성이 여자의 속옷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지금도 불가능에 가깝다. 어쨌든 남성이 여성용품의 주요고객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웩스너는 재빨리 레이먼드의 실수를 바로잡았다. 그는 카탈로그가 남성들의 눈을 사로잡았던 만큼 여성들의 관심을 살 수 있도록 수위를 조절했다. 매장 분위기도 더 밝고 가볍게 바꿨다. 다만 미국 상류층이 동경하는 영국 분위기는 그대로 뒀다. 회사 본사가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데도 빅토리아 시크릿의 주소를 영국 런던의 '마가리트가 10번지'라고 했을 정도다. 미국 주류계층의 주목을 받기 위한 전략이었다.

일련의 노력 덕분에 1990년대 초 빅토리아 시크릿은 미국 최대 란제리 브랜드가 됐다. 매장은 350개로 늘었고 연매출은 10억달러가 넘었다. 하지만 저가 브랜드의 공세로 웩스너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1995년 당시 톱모델이었던 타이라 뱅크스를 전면에 내세운 첫 패션쇼를 시작하면서 빅토리아 시크릿은 미국 란제리 시장의 35%를 차지하게 됐다. 매출은 지난해 66억달러, 회사 가치는 19억달러로 불어났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이제 미국을 벗어나려고 힘쓰고 있다. 지난주엔 영국 런던에서 첫 패션쇼를 열었다. 미국 밖에서 패션쇼를 개최한 것은 2000년 프랑스 파리에 이어 두 번째다. 올해는 중국에도 진출했다.

불행하게도 레이먼드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성공을 공유하지 못했다. 회사를 매각한 후 1년간 사장으로 있다가 독립한 그는 1984년 아동복 브랜드 및 카탈로그 사업을 시작했지만 2년 만에 파산하고 막대한 빚을 떠안았다. 집과 자동차를 모두 잃었다. 어린이용 책 사업으로 재기를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그는 1993년에 이혼했고 같은 해 8월에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몸을 던져 46세의 생을 마감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는 최근 런던에서 열린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를 계기로 레이먼드의 삶을 조명하며 그가 웩스너만한 사업 수완은 없었지만 전설은 아직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레이먼드 덕분에 전 세계 1000만명에 달하는 시청자들이 세계 최고 모델들이 나오는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를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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