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120년 두산, '변신의 귀재' DNA 재확인

두산타워 전경/사진=머니투데이DB

두산의 생존 DNA가 다시 한번 꿈틀거리고 있다. 120년 역사의 기업 두산이 2000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재계 주변에서 중심으로 들어선 이후 다시 한번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두산의 한국중공업 인수는 중공업 주력 그룹으로 변신하게끔 하는 시금석 역할을 했다.

그로부터 5년 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까지 인수하면서 두산은 온전한 중공업 기업으로 변신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렇게 외부로 눈 돌릴 것 같지 않았던 두산이 면세점 사업에 손을 댔다. 키워드는 '생존의 모색'이다. 글로벌 경기에 밀접한 사업군 위주에서 내수로의 확장이다. 지난 10여년간 중공업 분야가 고전을 면치 못하자 새 캐시카우 잡기에 나선 결과다.

◇생존이 최우선 '정해진 체질은 없다'

두산은 M&A와 동시에 종전 식음료 관련 유통사업을 정리했다. 인수와 정리, 가차없는 주전 교체는 두산의 강점이다. 삼성그룹도 반도체로 삼성전자를 키웠지만 사업군 전체를 바꾼 적은 없었다.


두산은 96년 한국네슬레와 한국3M 매각을 시작으로 97년 코카콜라, 98년 두산씨그램, 2001년 OB맥주, 2006년 종가집김치, 2009년 처음처럼에 이어 지난해 KFC까지 중공업 아닌 사업을 모조리 팔아 치웠다.

사업구조 재편은 창업 100주년을 맞던 95년 소비재에서 중공업 중심으로 꾸리겠다고 선언한 이후 진행됐다. 창업 120년째인 올해, 두산은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밥캣 인수 여파로 두산인프라코어 현금 사정이 좋지 않고 이것이 그룹 신용 리스크로 번지면서 활로 모색이 간절했다. 여기에 2013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계기로 원전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두산중공업 원전사업은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조선시장 불황에 선박엔진을 만드는 두산엔진 실적도 빠르게 악화됐다.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건설, 두산중공업, 두산엔진의 회사채 및 기업어음 신용도, 등급전망을 일제히 끌어내렸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내년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두산그룹 계열사 회사채 물량이 875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신용평가사들은 두산의 현금창출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봤다.

◇동대문 상인과 연합, "해볼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면세점은 두산에 '오아시스'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두산은 동대문 면세점은 폭발적 잠재력을 품고 있다고 본다. 우선 강북권 시장 자체가 어마어마하다. 지난해 서울 시내 면세점 시장 규모는 5조4000억원. 매출액 기준 롯데 소동공점이 1조9763억원으로 점유율 45.4%를 차지했다. 여기에 신라면세점 1조1521억원(26.5%)과 동화면세점 2919억원(6.7%)을 더해 강북권 점유율은 78.6%에 달했다.

두산이 인용한 동대문관광특구협의회 통계를 보면 지난해 동대문 상권의 연간 매출액은 12조4000억원으로 2002년에 비해 32% 감소했다.

이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외국인 관광객 실태조사와는 상반된다. 동대문은 명동에 이어 '서울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한 지역' 2위였다. 1위 명동의 80%인 710만명이 지난해 동대문을 찾았지만 지출 규모는 명동의 30%에 불과했다.

두산은 면세점 효과로 앞으로 5년간 동대문에 새로 유입되는 관광객이 1300만명에 이르고 지역 내 지출 규모가 2020년에는 지금의 두 배 이상일 것으로 내다봤다. 동현수 두산 사장은 "동대문 상인에게 영광을 돌린다"며 "동대문을 서울 시내를 대표할 관광허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2조원대 자산매각으로 그룹 유동성 숨통

두산인프라코어가 매각을 추진 중인 공작기계 사업에서 2조원대 현금이 일시에 유입되면 그룹 유동성 사정은 한결 좋아질 것으로 전망이다.

IB(투자은행)업계는 국내 대형 상장기업 시가총액이 에비타의 9배 안팎인 점을 감안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 매각 가격이 많게는 2조2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본다. 이는 시장에서 예견된 49% 지분 매각시 최대 9000억원 가치를 크게 웃도는 규모다.

당초 공작기계 사업을 분사한 뒤 49% 지분을 9000억원대에 팔려던 계획은 투자자들의 요구에 통매각으로 전환됐다. 10%대 영업이익률에 연간 2000억원대 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에비타 마진)을 기반으로 매각 가격이 많게는 2조2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본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올해 밥캣홀딩스 유상감자와 프리IPO를 통해 7000억여원을 조달했다. 6월에는 프랑스 자회사 몽타베르를 1350억원에 매각하기도 했다.

두산 관계자는 "그룹 리스크 원인으로 지목되던 두산인프라코어가 연말까지 부채비율이 종전 280%에서 100%대 초반으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면세점 사업이 더해지면서 그룹 현금창출능력이 대폭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