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인사권 뺏는 유례없는 주주제안…금융권 전전긍긍

　오는 20일 개최되는 KB금융그룹 임시 주주총회에 금융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 연임과 허 인 KB국민은행장 내정자의 선임이 확정되는 중요한 이벤트가 있기도 하지만 KB금융그룹 노동조합협의회(KB노협)의 주주제안이 안건으로 올라 표결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주 대표이사(회장)의 사외이사 추천권은 물론 계열사 인사권마저 박탈하는 유례없는 안건이라 금융권은 노조의 과도한 주장이 주총 안건으로 무분별하게 오르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표결 결과가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가결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다른 금융사에도 노동조합의 경영참여를 독려하는 전례로 남을 수 있다. 유독 금융사에는 주주제안권 행사의 문턱이 낮다는 지적과 함께 일반주주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경영진이 소수주주 제안에 찬반을 밝힐 수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노협은 주주제안을 통해 대표이사를 이사회 내 6개 소위원회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정관변경 안건을 주총 안건으로 올렸다. 계열사 CEO(최고경영자)를 추천하는 지배구조위원회,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등도 대상이다.

　노조의 주주제안 안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적절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지주사 대표이사의 핵심권한인 계열사 인사권 박탈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들다는 평가다. 이시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내이사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한 감사위원회에서 대표이사를 배제하는 것까지는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고 해도 계열사 CEO 추천마저 못하게 하는 것은 대표이사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사 발전방안으로 인사권을 포함한 지주사 권한 강화를 고민 중인데 이와도 배치된다”고 덧붙였다.


　지난 8월 ‘최근 6년간 주주제안 부결안건 분석’ 보고서를 통해 2011~2016년 국내 주주제안을 모두 조사한 유고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 역시 “KB금융의 안건과 비슷한 사례는 없었다”며 “정관이란 회사의 헌법과 같은 것으로 일반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조항으로 구성해야 하는데 대표이사를 이사회 내 소위에서 배제하는 안건이 적절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례적인 안건이 주총에서 논의되는 이유는 국내 주주제안제도의 도입 취지가 소수주주의 주주권 행사를 장려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주주제안과 관련한 비용을 제안한 주주가 직접 부담하게 하는 등 주주제안의 문턱이 높은 반면 국내에선 대통령령으로 지정한 일부의 경우, 현행법상 문제가 되는 경우 등이 아니면 주주제안은 무조건 주총 안건으로 올려야 한다.

특히 상법에 따라 일반 상장회사는 의결권 지분 3% 이상을 보유해야 주주제안이 가능하지만 금융사는 지난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서 특례로 지분 요건이 0.1%로 완화됐다. KB노협은 0.18%, 우리은행 우리사주조합은 5.6%, 하나금융지주 우리사주조합은 0.9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어떤 안건이든 주총에 올릴 수 있다.

반면 사측에서는 상정된 주총 안건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주주제안이 다양한 주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수단인만큼 모든 주주에게 이롭지는 않을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표결에 참여할 일반 주주들로서는 안건을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권 노조가 KB노협처럼 경영권을 위협하는 부적절한 주주제안을 남발해 노사협상의 지렛대로 삼을 우려가 있다”며 “소수주주의 목소리를 보장하고 경영진을 견제하는 주주제안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무분별한 제안으로 경영 안정성을 제한하지 못하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